가스관 폭발後 다급한 독일, 유럽의 분열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누가 가스관 파괴했을까...아직 못밝혀 에너지 위기에 독일내부 분열과 갈등 다급한 독일 “에너지산업 보조하겠다” EU “유럽 공동체 와해시킬 것” 반발
지난달 26일 덴마크 영해 바깥쪽에 위치한 러시아~독일간 노르트스트림 1, 2 가스관 2곳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9일 1곳에 추가로 다른 지점에서 가스 누출이 발견되었다. 해저 70미터(m) 아래에 있는 수송관에 폭약이 설치돼 정확히 영해 바깥 수역인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폭발하도록 한 이 사건을 두고 사보타주(고의적 파괴 행위)라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는 없다. 누군가가 어느 정부의 사주를 받고 이 가스관들을 파괴했을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수많은 해양 사고에서는 가해를 가한 선박의 판명이 어느 정도 명확한데 반해, 이번 파이프라인 파괴 사건은 어느 정부가 지원했는지 알 수 없는 사보타주라는 초유의 사태이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면전을 선포하지 않은 가운데 특수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력 침공을 한 상태에서, 이들 국가와 전혀 관계없는 발틱해에서 해저 파이프라인이 파괴되었다. 1954년 최초의 상업적 파이프라인이 멕시코만 해저에 설치된 이래로 파이프라인 파괴 행위로는 이번이 최초이다.

파괴 범행국은 누구인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느 나라가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알 수 없기에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큰 이익을 보는 나라가 저질렀을 것이라는 심정적 추측에 따라 몇 명 나라가 범행 지원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나라는 당연히 ‘러시아’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소유권은 러시아 국영 기업인 가즈프롬에게 있지만 러시아의 산업 지배구조상 중앙정부의 필요에 따라 사기업의 시설이 사용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즉, 러시아 정부가 유럽에 겨울철 에너지 공급을 협박하기 위해, 또 유럽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사보타주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지난 10월 12일 러시아가 중단했던 가스 공급을 ‘노르트스트림2’를 통해 재개해 줄 수 있다는 제안을 독일에 해왔다. 독일은 단칼에 거절했다. 사용 승인을 위한 행정 절차도 거치지 않은 노르트스트림 2에 대해 결국 중단됐던 행정 절차를 이행시켜주면 가스를 주겠다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입장을 매우 굴욕적으로 만드는 제안이었다.
독일은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공급 재개라면 고려해 볼 수 있으나 노르트스트림2를 통한 공급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 러시아 제재 차원에서 폐기해버린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재개하라고 유혹하니 러시아는 당연히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지목되는 범행국가들은, 러시아가 지목한 ‘앵글로색슨 국가’들이다. 영국과 미국을 의미한다. 영국과 미국이 해저에서 케이블을 도청했다고 폭로한 2013년 스노든 사건을 고려해 보면, 이들 국가들이 해저 파이프라인을 파괴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미국의 경우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얼마나 반대를 했던가? 그리고 상당 기간 복구가 어려워 유럽은 미국의 세일가스 대규모 구매에 의존하게 된다. 미국의 이익이 눈앞에 보인다. 미국은 메르켈 총리 시절부터 오늘날 숄츠 총리 시기까지 비협조적인 독일을 길들이기 위해서 파이프라인을 파괴했을까?

극우 메시지로 혼란에 빠진 독일
독일과 덴마크의 공동 조사단도 아직 명확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독일과 유럽이 매우 심각하게 분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끊긴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불만에 차 거리로 쏟아져 나온 독일 시민들은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포기하고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빨리 천연가스를 들여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던 독일인들이 에너지 대란 앞에 자기 계산이 더 급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26일 기민당(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당수는 빌트-TV(Bild-TV)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독일 사회보장제도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며 그들이 ‘사회보장관광(Sozialturismus)’을 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 이 발언이 한동안 독일 정치계를 난타했고 결국 많은 동료 정치인들의 비난을 받은 메르츠가 “잘못된 단어 선택이었다”이었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던 독일인들의 극우적 성향을 이용한 친러시아 성향 언론의 언론플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9월 10일 텔레그램을 통해 ‘사회보장관광’이라는 비난이 오스트리아 극우매체와 극우주의자들에게 수백 번 재인용되다가 끝내 독일 정치인이 근거가 불명확한 이런 주장을 사실인양 공론화시켰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사이에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싶어하는 친러시아 성향 소식통들은 지금도 온갖 극우적 메시지를 퍼트리며 언론전을 펼치고 있다.
한편 10월 8일 독일대안당(AfD)이 베를린에서 개최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반대 시위도 러시아가 반가워할 만했다. 이들은 ‘러시아 가스 도입을 위한 제재해제’라는 주장을 골자로 했으며 ‘조국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 집회의 참가 규모는 8천 여명 정도였으나, 그날 베를린발 철도 고장을 이유로 도착하지 못한 주변 지역인들을 고려한다면 1만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도 있다. 러-우 전쟁전 독일인들은 독일 대안당을 단순한 ‘장외 정치단체’수준으로 대했는데, 지금은 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주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건 놀라운 변화다. 이날은 대안당의 시위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 시위가 계획됐으나 참여 규모가 14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에너지 위기를 기화로 독일의 우경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유럽의 분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직접 도입이 전면 차단된 지금, 독일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상품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다. 싼 천연가스가 가격 경쟁력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급하게 오른 가스값을 내지 못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9월 26일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8월 중소기업 718개 기업이 도산 위험에 있으며, 이는 2021년에 동기에 비해 26%나 증가했다. 또 10월에는 31%대로 증가할 것으로 우려됐다.
독일 재무부와 법무부 장관은 파산법을 개정해서라도 그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장기적인 에너지 위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내에서는 에너지 위기가 2023년까지 계속될 것이며, 지난 8월 기준 138% 이상 상승한 에너지 추가비용을 감내할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처럼 러시아의 서유럽 에너지 개입 정치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 해결을 위해 매달 열리고 있는 EU 에너지 장관 회의는 지난 10월 6일에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3가지 조치에 합의했다. 첫째는 오는 12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에너지 수요가 급등하는 시기에 최대 에너지 사용 시간을 강제로 5% 줄여 전체 에너지 사용을 10% 줄이는데 합의했다. 둘째, 전기 생산 기업의 수익이 메가와트(㎿)당 180유로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데 합의했다. 즉 그 이상의 수익은 정부가 강제 징수해 재생 에너지분야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초과 수익을 역내 에너지 수출국과 수입국 간에 공유하도록 해 이 정책에 많은 회원국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에너지 기업들로부터 역내 연대 기여금을 출연하도록 강제해 2022년 1회기부터 또는 늦어도 2023년부터 연대기금이 설치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에너지 대책이 마련되긴 했지만, 독일의 에너지 대책을 둘러싼 EU의 내분은 재현됐다. 독일은 현시점에서 가장 많은 EU 분담금을 내는 국가(2020년 기본 분담금을 포함해 거의 200억 유로, 한화 28조6천억원)로 프랑스의 두 배다. 그런 독일이 9월말 이번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적인 자국내 대책으로 2천억 유로(한화 약 280조원)의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하자 EU 회원국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전총리는 총리직을 떠나기 직전, 독일의 에너지산업 보조 정책이 EU 공동체 정신을 해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의 INSEAD 경제학 교수인 안토니오 파타스도 독일의 에너지기업 보조 정책은 분명히 회원국사이에 개별산업 보조 정책시행으로 문제가 옮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회원국간 경제 정책의 불공정성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다른 회원국들은 많은 에너지산업 보조금이 EU내 공동 에너지 정책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독일은 EU 전체의 가스 가격 상한선 설정을 통해 공동 대응하자는 회원국들의 주장을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이같은 공동대응은 독일의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EU 시장을 상대로 가장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독일이 자국민만을 위해 추가적인 보조정책을 쓰는 것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독일이 이번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자국 주요 에너지 기업을 국유화하고, 기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결국 다른 회원국 출신 기업의 독일 시장 진출 기회를 막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나아가 독일이 계속 일방적인 자국 중심의 경제 정책을 채택한다면 이는 EU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EU가 공동 시장으로 존재하고 공동의 미래 목표를 설정해야 할 심리적 정당성인 ‘연대의식(solidality)’이 사라진다면 개별 국가로 존재하는 것이 생존에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러-우전쟁이 EU에 던지는 가장 큰 문제의식은, EU의 단일성과 응집력에 관한 근본적인 존재 가치일 것이다.
다른 회원국의 입장에서, 독일과 EU가 미래까지 함께 해야 할 파트너이자 공동체라는 전제가 희미해진다면 유럽은 또다시 2차 세계대전 전의 분열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할 지 모른다. 이것보다 더 명확한 것은 조만간 들이닥칠 전(全) 유럽의 경기 침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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