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 ‘한옥’은 어떤 건축물일까
[최성호의 사람 사는 건축]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어진 한옥 생활 초가집, 양옥 이어 등장한 ‘한옥’ 이름 언젠가 아파트를 한옥이라 부를지도
한옥이 전통건축일까? 한옥을 공부한 이래로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주제다. 전통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옥에서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최근에 지어진 것이 아닌 오래 전에 지어진 한옥은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로 지정된 집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요새 짓는 한옥은 새로 짓는 건물 중 1%도 안 될 것이다. 이것이 한옥의 현실이다.
사라지고 있는 ‘한옥’
다른 관점에서 한옥을 살펴보자. 우리는 우리의 전통건축물을 ‘한옥(韓屋)’이라 부른다. 왜 한옥이라 부를까?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말은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단어와 단어는 서로 갈등하고 계속 변화해간다. 새로운 개념이 생기면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 생기고, 기존에 있던 말과 싸우며 자웅을 겨룬다. 새로운 말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말의 변화를 보면 삶의 변화, 문화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역사 이래로 말과 글은 계속 변화했다. 새로운 문물과 종교가 들어오면 말과 글도 변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야단법석(野壇法席)’,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말은 불교용어다. 유교에서 유래된 것도 많다. 무엇보다 제사에 쓰는 어휘는 대부분 유교에서 나온 것이다. 어찌됐든 이런 단어들은 우리 토착어와 겨뤄서 이긴 끝에 우리말이 된 것이다. 이런 말 중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뜻이 담긴 것도 있다. ‘당(唐)’. ‘호(胡)’, ‘왜(倭)’, ‘양(洋)’이 앞에 붙으면 중국, 일본, 서양에서 들어왔음을 뜻한다. 당면, 호떡, 왜간장, 양복, 양배추, 양식 등이 그런 예다. 그런데 가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경우가 있다. ‘왜간장’이 이젠 어엿한 ‘간장’이란 이름을 얻었고 우리간장은 ‘조선간장’, ‘국간장’으로 격하됐다.
한복이나 한옥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을 때 서양에서 들어온 남자 옷은 ‘양복’으로 여자 옷은 ‘양장’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젠 우리 전통 옷을 ‘한복’으로 부르고 있다. 즉 서양에서 들어온 옷이 이제 우리가 일상에서 입는 옷이 됐고, 이제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다. 필자가 결혼할 때만 해도 명절에는 남자도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런데 이젠 남자는 한복을 입지 않는다. 한복은 이제 여자들이 결혼식 때만 입는 예복이 된 것이다.
‘양옥’은 사라졌다
집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4~50년 전까지만 해도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은 집을 서양에서 들어온 집이라 해서 ‘양옥(洋屋)’이라 불렀다. ‘새마을 노래’ 2절 가사를 보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고 되어 있는데, 1970년대 만해도 시골집들은 대부분 초가였다. 농촌 집들이 초가에서 슬레트 지붕으로 바뀐 것이 박정희 전대통령이 펼친 새마을운동 때였으니 그리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는 한옥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구분한다면 기와집, 초가집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한옥이라는 말로 우리 전통가옥 그것도 기와집만을 지칭하게 됐으며, ‘양옥’이란 말은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옷인 한복과 전통 주거형식인 한옥이라는 풍습이 사라져간다는 뜻일 것이다. 글 머리에서 전통을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 했는데, 지금 한옥과 한복이 이 정의에 어울리는 것일까?
얼마 전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때 한옥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지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한 명도 없었다. 한옥에서 생활해 본 학생은 딱 한 명 있었다. 이미 한옥과 단절된 게 아닐까.
경험이 다르면 정서도 다르다
어떤 형태의 집에서 살았는지가 중요한 까닭은 삶의 경험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집에서 산 경험은 자기 일부가 되기 마련이다. 한옥에서 느끼는 정서는 아파트에서 느끼는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지금 아파트 난방은 한옥과 같은 바닥 난방으로 ‘패널히팅’이라 부른다. 같은 바닥 난방이지만 과거 한옥의 온돌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 한옥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식이라 같은 방이지만 위치에 따라 바닥의 온도차가 크다. 그래서 ‘아랫목’과 ‘윗목’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예전 필자 아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부르던 노래 가사 중에 “아랫목에 앉아라 아이 뜨거워, 윗목에 앉아라 아이 차가워”가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태어나서 아파트 생활만 했기에 그 의미를 모르고 불렀다. 한옥은 처마가 있는 집이기에 낙수소리가 들린다. 낙수소리가 다양하고 아름답다면서 시인들은 낙수소리를 주제로 한 시도 많이 지었다. 그리고 창호지에 떨어지는 달그림자의 아름다움도 유리로 된 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다.
이는 지금 아파트에서만 산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한옥과 아파트는 근본적인 생활 환경이 다르니, 한옥에서 살았던 사람과 아파트에서 살아온 사람 사이에 정서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엔 아파트가 한옥으로 불릴까
어쨌든 한옥이란 전통은 단절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옥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 전통도 새롭게 만들어진다. 한복을 보자. ‘마고자’라는 옷은 1887년 흥선대원군이 만주 유폐에서 풀려 귀국할 때 입고 온 ‘마괘’가 변한 것이다. 선비들이 입던 ‘학창의(鶴氅衣)’란 옷은 유교가 들어오면서 생긴 옷이다.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초기 옷은 색깔이 다양했다. 왕이 입던 곤룡포도 고려시대는 청색이었던 것이, 조선시대에 명에서 옷감을 보내주면서 적색으로 바뀌었다.
한옥도 마찬가지다. 온돌은 우리 주거 변화에 큰 영향을 준 난방시설이다. 고려시대, 아니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온돌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상류사회에서는 온돌 문화보다는 의자를 놓고 생활하는 입식생활이 기본이었다. 서긍이 쓴 <고려도경>을 보면 온돌은 서민들이 주로 사용했다. 그런 것이 점점 상류사회로 확산되면서 방 모두에 온돌을 들였다. 온돌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자 가구도 바뀌었다. 좌식생활로 바뀌면서 탁자와 의자가 사라지고, 책상은 낮아졌으며 방석이 중요한 깔개가 됐다. 가구 높이도 낮아졌다. 그러면서 건물 층고도 낮아졌다. 이렇게 변화된 한옥이 지금 우리가 아는 한옥이다.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면 기존 문화와 갈등을 겪은 후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진다. 고려시대 불교국가에서 조선시대 유교 국가로 바뀌면서 다양한 문화적 갈등이 나타났고 이어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전통은 19세기 말 근대국가가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말에 우리말, 외래어, 외국어가 있다. 외국어는 아직 통용되지 않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고,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서 통용돼 우리말로 정착된 말이다. 한자어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종교에도 그런 것이 있다. 무속이 우리말과 같은 것이라면, 불교나 유교문화가 외래어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50년 남짓된 기독교는 어엿하게 외래어 반열에 올랐다. 그러니 우리 생활도 기독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는 이젠 우리 문화가 됐다.
이제 우리는 과거 한옥 생활로 돌아가자고 해도 돌아갈 수 없다. 어쩌면 다음 세대가 한옥을 언급한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불교용어에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은 같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전통을 보는 관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전통은 없다. 다만 계속 변화하는 전통 즉 ‘전통무상(傳統無常)’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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