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시즌...예능계는 ‘스포츠맨’ 전성시대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스포츠 예능은 왜 인기를 끌까 예능도 반가움과 반전, 각본없는 드라마 시청자 과몰입과 제작자 조작등 부작용도
최근 10~20대 젊은 층의 대세 예능이 ‘연애·사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라면, 40대 이상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대세가 된 예능 소재가 있다. 바로 ‘스포츠’이다. TV만 틀면 수많은 채널에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예능을 방영하고 있다. 종목과 형식, 주제와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축구, 야구, 농구 등 팀을 구성해서 뛰는 구기 종목부터 탁구, 골프, 씨름, 배드민턴 등 개인 종목은 물론 팔씨름이라는 스포츠와 게임의 경계가 모호한 종목까지 그 종류와 포맷도 각양각색이다. 경기 구성 형식이나 선수 구성도 다채롭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선수 구성은 타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거나, 은퇴 후 다시 자신의 종목에서 새로운 역량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스포츠 예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땀을 흘리며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의 장면들이 즉각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액 연봉의 스타였던 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하면서, “어? 이 선수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하는 반가운 마음에서 시선이 그 프로그램으로 향한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스포츠 예능을 통해 시청자들은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없었던 스포츠의 진정성을 마주할 수 있다. 잊혀진 스포츠 스타들, 갓 은퇴한 스타 스포츠맨들, 그리고 스포츠를 위해 새롭게 뭉친 연예인들까지 스포츠로 하나되어 그들은 ‘진심’으로 경기와 프로그램에 임한다.
또한 제작진들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는 있지만, ‘승부’를 조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부가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내면서 제작진과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까지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크게 높이는 것도 현재 스포츠 예능의 인기 요인 중 하나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에도 스포츠 예능은 많았다. <출발 드림팀>을 필두로 <우리 동네 예체능>, <날아라 슛돌이>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최근 몇 년간 직접 몸을 부딪히며 스포츠를 할 수 없었던 이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의 수요와 인기가 크게 증가했다. 또 2019년 안정환이 이끄는 <뭉쳐야 찬다>시리즈의 인기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프로그램이 보다 체계화· 다양화되면서 2000년대 초반 스포츠 예능과는 큰 차별화를 보였다.
예를 들어 시즌제 프로그램이 가능해지면서 계절을 활용하여 스포츠 종목의 다양화를 꾀하였다. 시즌제는 자연스레 장기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리그전, 토너먼트전도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SBS의 <골 때리는 그녀>는 레전드 태극전사들이 여자 연예인 선수들의 감독을 맡고, 각 팀은 리그전, 토너먼트전을 거쳐 우승팀을 가려내고 있다. 평균 시청률 5%로 상당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그녀들의 축구를 향한 진정성과 열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포테이너들의 활약, 서서히 피로감도
스포츠 프로그램들이 스포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레전드 스타들이 대거 포진한 프로그램들의 경우, 각 선수들의 스토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그들의 일명 ‘레전드썰’은 시청자들에게 과거 영광스러운 순간의 감동과 즐거움을 회상하게 하고, 선수들도 과거와 현재의 나를 마주하며 재미를 유발한다. 특히 자신의 종목에서는 완벽했던 선수들이 다른 종목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초보 예능인으로서의 허당끼를 마음껏 뽐내는데 이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큰 재미다.
강호동, 서장훈, 안정환 등은 스포테이너의 대표주자로 스포츠와는 별개의 예능과 MC로 이미 인정을 받았다. 후발 주자로 허재, 현주엽, 김병현 등도 스포츠와 예능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그외에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 예능이 범람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프로그램의 스포츠 편중 현상이 강하다보니 온통 스포츠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 나아가 스포츠 스타들의 2세를 대동한 스포츠 관찰 예능을 비롯해 스포츠 예능을 가장한 가족 예능까지 쏟아지고 있어 그 피로감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은퇴 선수 또는 아마추어 연예인 선수들에게 승부 결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비판 더 나아가 악플이 쏟아지는 등 문제점도 많다. 일례로 SBS <골 때리는 그녀>는 올해 초 편집으로 경기 순서를 조작하여 시청자들을 기만해 뭇매를 맞았다. 이를 방송한 제작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는 MC의 변명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문제의 재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스포츠가 가진 승부를 향한 열정과 시청자들의 과몰입이 또 다른 ‘조작’의 유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진과 시청자는 스포츠와 예능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통해 즐거움과 공정성 모두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치열한 승부가 ‘악마의 편집’으로 퇴색되지 않도록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