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슈룹’, 웰메이드로 논란 잠재웠다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자칫 ‘중국색’ 논란에 빠질 뻔한 드라마 빼어난 연기·각본·문제의식으로 극복 김혜수 맡은 중전役, 새 ‘국모’상 제시

드라마 '슈롭'의 포스터. 사진= tvN
드라마 '슈롭'의 포스터. 사진= tvN

‘중국색’ 논란을 넘어서려면

지난 4일 종영한 <슈룹>은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아주 오랜만에 성사된 김혜수의 사극 연기에 대한 높은 기대감 때문이다. 사극의 배역 때문에 귀도 뚫지 않았다는 김혜수의 일화는 이미 유명한데, 그 만큼 사극, 연기에 진심인 김혜수의 중전 연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조선판 <SKY 캐슬>이라는 홍보 전략에 따라 조선 왕실의 교육 전쟁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라는 추측에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슈룹>은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중국색 논란 때문이다. <철의 여인>, <조선구마사> 등으로 중국색에 대한 반감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드라마계에 또다시 중국색 논란이 고개를 든 것이다.

<슈룹>에서 문제로 지적된 것은 몇 가지 된다. 먼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왕위 정통성과 관련해 적통 승계가 아닌, 왕비 소생의 대군들과 후궁 소생의 군(君)들이 세자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는 설정이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궁중 암투물은 중국 인기 역사극 <보보경심>, <후궁 견환전- 옹정황제의 여인> 등에서 주로 활용되는 소재라는 점이다. 이밖에도 조선 궁궐에 “태화전”이 있고, 중전 스스로를 “본궁”으로 칭하는 점 등 중국색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비교적 많았다. 이를 두고 작가의 이력과 가족에 대한 근거없는 선동이 이루어져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역사 드라마, 그 중에서도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역사 고증에 대한 잡음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퓨전 사극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역사 고증의 오류는 드라마라는 예술이 펼쳐야 할 창작의 자유가 넘어야 할 장벽이다. 물론 역사 고증의 오류와 의도적 색깔 입히기는 엄연히 다른 요소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선구마사>의 실패가 재현되지 않으려면, 실수를 가장한 의도로 오해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문제까지 짚어보다

<슈룹>이 초반 중국색 논란을 쉬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연기, 각본, 사회문제 제시 등 웰메이드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을 충분히 갖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슈룹>은 조선시대를 시대 배경으로 했음에도 지금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전면에 다뤘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시각, 삐뚤어진 자식 교육이 비추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 등이 그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갑론을박이 뜨거운 다양한 문제를 조선시대에 비추어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조선시대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장을 하는 남성, 더 나아가 여성이 되고 싶은 대군의 일화는 현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도 오버랩됐다. 여성이 되고 싶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여장을 하며 마음의 안식을 찾는 ‘계성대군’의 모습은 궁중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중전은 혼자 오열하며 가슴 아파했지만, 그 누구보다 계성대군의 마음에 공감한 것은 물론,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그를 위로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소외 받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집중 조명하였는데, 특히 천대받는 노비, 천민 여성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예를 들어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 자신의 금비녀를 팔려고 내놓자, 장사꾼은 이를 헐값에 구매하려 한다. 그 이유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정 탄 여자의 물건’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두고 예비 빈궁과 중전이 직접 나서, 여성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의 부당성, 더 나아가서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삼불거’에 대한 지침까지 상기시키며 사회적 약자로서 소외받는 여성에 대한 보호와 그 권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중전 화령은 백성의 마음을 두루 살피는 국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드라마 '슈롭' 제5화 스틸 컷. 사진=tvN
드라마 ‘슈롭’ 제5화 스틸 컷. 사진=tvN

빛나는 ‘국모’ 연기...참 어머니 모습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드라마에서 중전의 모습이 그려졌지만, 정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슈룹>속 중전 화령은 능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중전 캐릭터로 김혜수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때로는 자식들 교육에 현명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때는 해결사와 같은 모습으로, 또 왕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함께 논의하는 파트너의 모습 등 완전히 새로운 중전 캐릭터를 완성하였다.

‘슈룹’이 순 우리말로 ‘우산’이라 했던가. 중전 화령은 자식들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처럼 늘 굳건히 그들 옆에 자리했다. 하지만 슈룹이라는 제목이 더욱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는 그녀의 우산이 대군들의 안위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백성들의 국모로서, 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의성군까지 고루 챙기는 참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조선시대라는 제약된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주체적 여성 캐릭터,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다양한 시선까지 고루 조명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슈룹>은 중국풍 논란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글쓴이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이현민은 대중문화평론가, 한중 콘텐츠 연구자로 로앤컬쳐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북경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 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입체적 한중 대중문화>가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