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천국 태국 ‘여행객의 발’ 택시, 요금 딜레마
31년간 택시 기본요금 불변..주행요금만 인상 생계비 못미치는 요금구조, 불친철의 온상 ‘저비용 관광천국’’ 유지 위한 당국의 고육책

버스와 전철 등 미흡한 대중교통 인프라를 저가 택시로 메우고 있는 관광국가 태국이 8년 만에 택시요금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태국 교통당국이 바라던 택시비 인상에 대한 기대효과는 미미할 뿐 다방면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택시 운전자들은 당초 태국의 4개 택시조합 차원에서 요구하던 46.49% 수준의 큰 인상폭과는 거리가 먼 불과 7.34% 인상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열악한 대중 교통수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 일반서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에 택시비 마저 인상됐다며 택시이용을 줄이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다시 일일 5만 명 이상 몰려들기 시작한 외국인 여행객들은 “택시비는 오르지만 택시 운전자들의 바가지 상혼은 여전하다”며 입을 내밀곤 한다.

관광국가 명성(?) 유지를 위한 ‘꼼수’ 인상안
당국의 인상 발표에는 택시비 인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일반택시의 기본요금’은 없었고, 주행요금만 소폭 인상되는 내용만 담겼다. 이와 함께 일반적으로 이용률이 현저히 낮은 대형 밴택시의 기본요금을 35바트에서 40바트로 올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태국 최대 영자신문 방콕포스트는 일반택시의 기본요금을 올리지 않는 건 언급치 않고, 승객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대형 밴택시 기본요금 인상만 떼내 “8년만의 택시비 대폭인상–기본요금 40 바트로 올라(Taxi fares hiked for first time in 8 years-Starting rate rises to 40 baht)”라는 제하의 기사를 냈다. 그 바람에 영자신문만 보는 수 많은 태국 주재 외국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일반택시의 실제 요금인상률은 주행요금에 국한해 구간별 평균 7% 수준이다.
‘미소의 나라(Land of Smile)’의 ‘이유있는 바가지’
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행객들이 다반사로 접하는 것 중 하나가 택시의 ‘승차거부’와 ‘바가지 요금’이다. 그 어처구니 없는 정경이 ‘어메이징 타일랜드(Amazing Thailand)’ 수준을 넘어, 가히 ‘테러블 타일랜드(Terrible Thailand)’ 지경이다. 예를 들면,
- 미터기를 사용치 않고 적당히 요금을 두어 배 이상 올려 부르거나, 거스름 돈을 지급할 생각조차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 행선지가 교통혼잡 우려가 있는 곳일 경우에는 손사래를 쳐대며 다짜고짜 ‘마이빠이 (안가요)’를 외치거나, 목적지를 듣자마자 ‘개스~ 못(LNG가스 부족해 운행 불가)’ 운운하고,
-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교통체증이 심하면 중간에 내리라고 요구하거나 추가비용을 달라며 투덜대거나,
- 심야유흥업소 앞에서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고 자신이 더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밑돈을 받는 업소로 가기를 강권하거나,
-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중, 납득되지 않는 이유를 대며 다른 택시로 환승할 것을 강요하는 등이다. 이처럼 온갖 불친절 위법 사례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태국 물가에 비해서도 낮은 방콕 택시요금
‘미소의 나라(Land of Smile)’를 상징했던 태국의 택시운전사들이 왜 이리도 불친절해졌을까. 사실 방콕의 택시요금은 가성비 있다고 소문난 태국의 일반 물가를 감안한다해도 저렴한 편이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그들의 ‘국민성’보다는 ‘경제적인 이유’ 탓이 크다.
무엇보다 최소 생계비를 현저히 밑도는 택시운전자들의 파행적 수입구조가 문제다. 택시운전자들의 수입이 공사판에 일하는 주변국 외국노동자 임금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러니 택시운전사들의 서비스 마인드가 양호할 리 만무다.
이는 일반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한 방콕에서 여행객과 시민들에게 저비용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태국정부가 자초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생계비 이하로 책정된 택시요금 체계, 그에 따른 택시운전사의 열악한 수입구조가 어우러져 방콕 택시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가 1970~80년대에 경공업 육성을 통한 수출주도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만들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저곡가 정책’을 폈던 것과 닮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가의 생산비용을 밑도는 가격수준으로 추곡을 수매하는 정책으로 수출공장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유지했다. 21세기에는 태국 같은 개발도상국가가 관광수입 증대를 위해 ‘저가 택시요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저곡가 정책의 볼모는 농민이었고, 현재 태국에서 외화벌이의 희생양은 택시운전사들인 셈이다.
태국 정부는 ‘저비용 관광국가’라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택시요금 시준점인 ‘일반택시 기본요금 액면가’를 31년 동안 고정시키고 있다. 1992년 방콕택시에 미터제가 시행된 이래 기본요금은 2008년에 단 한번의 변동이 있긴 했다. 그때도 기본요금 액면가는 바꾸지 않고 기본 주행 거리를 2km에서 1km로 축소했다. 일반 주행요금 역시 태국 택시에 미터기가 장착된 이래 단 몇 차례 미미한 수준의 요금 인상과 시간병산제가 채택 되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택시요금 인상도 방콕의 택시요금 구조는 1km 기본 주행의 기본요금 35바트(약 1310원)에, 이후 km당 6.5바트(약 240원, 1~10㎞ 기준)가 추가되는 식이 됐다.
다시 밀려드는 외국인 여행객
지나치게 값싼 것이 좋을리 만무하다. 저가 택시비와 저품질 대중교통체계가 만들어 낸 방콕 택시운전사 불친절이 관광대국 태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태국 정부의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이 더딘 상황에서 방콕의 승용차 수 또한 증가일로에 있다. 여기에 방콕의 대형 쇼핑센터와 백화점들은 동남아내 최고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존 방콕의 명물인 ‘사얌파라곤’, ‘아이콘사얌’, ‘엠쿼티어’ 같은 호화백화점들보다 더 한층 고급스럽고 거대한 규모의 ‘원 방콕’, ‘이께아 수쿰윗’, ‘엠스페어’ 같은 초대형 쇼핑몰이 올해 말까지 방콕 중심부에 추가로 들어설 예정인 만큼, 향후 쇼핑 천국으로 자리 잡을 방콕에서 택시를 포함한 대중교통수단의 확충이 시급해 보인다.

‘합리적 택시요금체계’부터 만들어야
단체패키지 여행객(Group Package Tour) 비중이 줄어들고 개별여행객(Foreign Independent Tour)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여행객이 입국하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태국의 얼굴이 공항 이민국 직원 다음으로 누구일지는 자명하다. 그건 다름 아닌 택시운전사일 공산이 크다. 관광객들이 방콕의 곳곳을 여행 다닐 때도 태국의 얼굴은 이들 택시운전사들이다.
이번에 미흡한 인상 폭을 반영하기 위해 6만 여대가 넘는 택시들이 하루 수천 대씩 방콕의 ‘방스 역’에 설치된 택시미터기 업그레이드 작업장에서 미터기를 순차적으로 2월말까지 튜닝하게 된다.
태국의 국민소득이 지금의 절반이하였던 1992년 이전만 해도 방콕의 택시는 미터기 자체가 없었다. 택시운전사와 승객이 택시문을 열고 서로 흥정하며 탑승을 결정했다. 물론, 당시에도 방콕의 교통혼잡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지만, 지금처럼 어처구니 없는 ‘묻지마 택시요금’ 횡포는 없었다.
방콕은 늘 변함없이 더웠고 도로는 막혔지만 사람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러시아워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갈증이 나면 중간에 잠깐 세워달라고 한 후, 편의점에 들려 음료수를 사서 나눠마시며 가던 길을 가기도 했다. 방콕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친절한 미소로 맞이하던 방콕의 택시운전사들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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