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은 왜 이럴까?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어두워지는 존립과 평화·번영의 믿음 미국에 ‘전적인 신뢰’에서 ‘조건부 신뢰’로 우크라 전쟁 패배를 두려워하고 있을까

독일 전차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원할 지를 놓고 고민했던 올라프 슐츠총리. 사진출처= dw.de
독일 전차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원할 지를 놓고 고민했던 올라프 슐츠총리. 사진출처= dw.de

‘독일이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민심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파독간호사 분이 요즘 독일이 너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자녀 분들이 모두 독일대안당(AfD) 지지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해, 매우 당황한 적이 있다. AfD는 극우보수당으로 평가받는다. 그 분이 독일 국내정치에 대해 해왔던 말씀과 그 자녀 분들이 한동안 다녔던 코로나 반정부 데모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평범한 독일인 같았던 그런 분들이 뭔가 독일 정부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구나 싶었다. 최근 난민 반대와 외국인 혐오, 그리고 친러시아적 성향이 뭉쳐져 독일만의 앞날을 생각하는 정치집단은 극우정당인 AfD 밖에 없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추측을 하게 되었다.

독일이 너무나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AfD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8일 전 독일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국시민(Reichbürger)의 쿠데타 시도를 위한 모임”도 국내 정치 불만 세력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모임이다. 과거 왕족이라는 자를 중심으로 판사, 경찰, 전직 군인, 무기매매상까지 낀 이들 조직들은 지금의 헌법체계와 민주주의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내적으로 불안한 경제 상황과 대외적인 주변국 교전상황은 독일내 정치 불만세력을 확장시키는데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 된다.

제국시민 모임의 수장이자 극우주의자 헨리 13세가 체포됐다, 사진출처= dw.de
제국시민 모임의 수장이자 극우주의자 헨리 13세가 체포됐다, 사진출처= dw.de

얼마 전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의 교착상태로 인해 나토의 전차지원 문제를 놓고 시름했던 독일은 많은 유럽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왜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냐는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독일 연정내에서도 사민당만 우유부단하지 다른 정치세력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입장이 명확하다면서, 집권여당인 사민당과 올라프 슐츠 총리가 문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 11월 숄츠 총리는 중국의 제20차 공산당대회가 끝나자마자 베이징으로 달려간 최초의 유럽정상이 되었다. 그때 양국 지도자들은 여전히 독일과 중국의 관계는 탄탄하다고 공언하였다. 독일은 자국내 5G 통신시설사업 참여자입찰에서 화훼이를 배제하지 않은 유일한 서방국가였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요구를 대놓고 무시하면서 친러행보를 취하고, 중국에게도 여전히 친중국적인 자세로 가져가는 독일을 보면서 도대체 독일은 왜 그럴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최근의 전차지원 사업을 두고 막판 궁지에 몰린 가운데에도 전차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독일을 보면 과연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할 수 밖에 없다. 독일은 미국이 최신 전차를 지원하지 않으면 절대 지원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럽의 중심’으로 감당하기 힘든 부담들

필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10년째 살고 있지만 지금처럼 독일이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2013년 독일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유럽의 중심은 프랑스 파리였고 독일의 베를린은 무언의 자금줄일 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15~16년 유럽재정위기와 시리아 난민문제가 발생하면서 독일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 이후 독일은 경제적으로 프랑스나 영국이 추격할 수 없는 지위에 올랐다. 유럽의 모든 결정은 브뤼셀이 아닌 베를린이 최종 동의를 해줘야만 이행될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독일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난민문제를 대놓고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괜히 얘기했다가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는 후진적 사고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 때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서유럽 최대강국이었고 평화가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대유행이 유럽을 휩쓸고 연이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상은 달라져버렸다. 적어도 독일인들에게는 확실히 가혹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폴란드를 비롯해 미국까지 극도로 반대했던 ‘노르트-스트림2(Nord-Stream2)’ 사업을 강행하면서 에너지 다원화를 무시한 책임은 분명 독일의 몫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된 독일 시민들은 ‘내탓이오’보다는 외부의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한다. 이런 태도가 독일 국민 다수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가스값이 폭등하면서 러시아와 어떻게든 재협상하라는 데모대가 거리에 넘쳐났고 그 곳에 AfD가 함께 하고 있었다. ‘대가를 치르는 대상이 왜 독일이어야 하나’하는 외부를 향한 적개심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데모에 나간 지인이 내 주변에 꽤 있었다. 이들은 베를린으로 들어오는 데모대의 접근을 제지한 베를린 시정부를 엄청나게 비난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제3진영의 전쟁인 듯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거나 굴복시킨다면 그 다음 당사자는 바로 나토이겠지만, 그 피해는 폴란드에 발생할 일이지 독일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전쟁의 격전지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는 인식과 에너지 가격의 충격적 인상 책임을 남탓으로 돌리려는 군중의 심리가 뒤섞이면서, 피해 보고 싶어하지 않는 국가적 이기심이 시민들 사이에도 팽배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싶지만 외국인인 나의 눈에 지금의 ‘베를린살이’가 점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슐츠 총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러시아의 “버티기”가 아닐까 싶다. 만약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다시 도발할 힘을 모을 것이며, 유럽은 또다시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도래할 것 같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러시아를 너무 자극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간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독일은 러시아의 힘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 불곰을 자극하여 파국으로 이끌기보다는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거친 후 미국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아진 면도 뚜렷하다. 언제든 트럼프 대통령 같은 미 대통령이 나타나 유럽을 협박하고 독일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대며, 미국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내놓으라 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전적인 신뢰’보다는 ‘조건적인 신뢰’관계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지원 허가를 요청하였을 때에도 독일이 절대 포기하지 않은 것이 바로 미국과의 쌍방보장이었다. 미국이 최신전차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독일이 러시아의 눈총을 맞아가며 전차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독일의 고집은 통했다.

만약 전쟁이 길어지고 유럽의 막대한 전차지원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3월 우크라이나의 동부전선이 뚫리지 않는다면 과연 서방세계가 버틸 수 있을까? 무기고가 바닥나고 새로운 무기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 독려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경제사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유럽은 우크라이나에게 종전협상을 종용할 것이다. 이는 서유럽과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동부전선에서 버틴다면 그 자체로 러시아의 승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상처 뿐인 승리일지 몰라도 러시아의 완패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이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적 위치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독일은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반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입장표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에서도 국가생존을 위한 전략을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세계질서가 미국과 서유럽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그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자국의 존립과 안전’이다. 독일의 존립을 고민해야 하는 숄츠 총리의 고민이 이 부분에 있지 않을까?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파도를 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보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일 것이다. 민주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국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용인될 수 있을까? ‘너무나 사려 깊어 너무나 우유부단하다’는 숄츠 총리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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