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금융, 나치를 배신하고 얻은 번영
[김영주의 ‘유럽에 대한 코리안의 오해’] 크레딧스위스 은행의 몰락을 계기로 본 스위스 금융산업은 어떻게 발달했나 오랜기간 ‘유럽의 검은 돈’ 세탁소 역할 나치에 붙었다가 전후에 나치 금괴 빼돌려
나무에서 떨어진 ‘돈세탁 원숭이’
돈세탁 천국, 스위스에 비상이 걸렸다. 며칠 전 UBS에 이은 스위스 2위의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 주가가 장중 30.8%까지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위스 중앙은행이 나서고 UBS가 32억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진정되는 듯하다. 스위스는 금융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을 정도로 금융산업이 활성화된 나라이다. 명목상 GDP가 우리의 40%를 조금 넘는 수준임에도 GDP내 금융산업의 점유율이 두 배가 넘는 기형적인 산업 구조의 국가가 바로 스위스다.
크레디트스위스도 스위스 은행답게 검은 돈을 맡아주고 얻는 막대한 이자와 유동성 수익, 그리고 고수익에 투자하는 금융도박사들과의 관계로 수익 규모를 차별화해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에 9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2021년에 영국 금융도박사 그린실캐피털과 아케고스캐피털에 고수익 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크레디트스위스에 급전을 빌려주며 급한 불을 껐던 최대주주 사우디국립은행(NCB)이 이번엔 투자 중단을 선언하면서 유럽 증시가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부패에 기생해서 일군 ‘태평천하’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언제부터 ‘돈세탁 천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스위스가 시계붙이들을 팔아 선진국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위스 산업의 젖줄은 수백 년 동안 맡아온 ‘검은 돈’의 유동성이었고, 이는 스위스 산업에 화수분 같은 자본 조달의 역할을 해왔다.
스위스 은행들한테는 산밑 세상에서 범죄·부패와의 전쟁으로 예금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실상 인출되지 않는 유동성이 반영구적으로 예치되기도 했다. 덧붙여 프랜시스 베이컨이 ‘시장의 우상’을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낙수효과가 존재한다면, 스위스만큼 검은 돈의 낙수효과를 장기간 넉넉히 누리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위스는 1934년 은행 및 저축 은행에 관한 연방법(Bundesgesetz über die Banken und Sparkassen)을 제정, 계좌 소유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면서 18세기부터 내려온 업계 관행을 아예 법제화했다. 알프스 산골에 있던 스위스는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18세기까지 스위스인들은 용병으로 알프스산 아래로 내려가서 돈을 벌어와야 했다. 스위스 은행들은 고객들이 용병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산 아래에서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업 수완으로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켜준 것이다. 유럽의 봉건 영주들과 부르주아들은 용병뿐만 아니라 비밀은행계좌도 스위스에서 찾기 시작했다.

화양연화, 나치 독일의 만능잡이 시절
스위스가 본격적으로 최고의 돈 세탁기가 된 것은 나치 독일에 대한 부역 때문이었다. 본디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던 이 보수적인 산골 나라는 대륙에 퍼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1933년 총선으로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스위스 조야는 안도하고 기뻐했고, 1937년에 히틀러는 불가침을 보장했다. 그리고 스위스 산업과 금융업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스위스의 중립성은 매우 상대적이었다. 스위스의 대독 수출은 1938년 총수출의 15%에서 1942년에는 41%로 증가했다. 스위스는 전쟁 기간 동안 연합국보다 독일에 40배 더 많은 전략 군수물자를 수출했다.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 간신히 국경에 도착한 유대인 난민들은 스위스의 충성스런 송환 정책 탓에 독일이 운영하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스위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 장 지글러(Jean Ziegler)의 말대로, 히틀러는 미치광이였지만 자신의 은행가를 공격할 정도로 미치광이는 아니었다. 나치 독일은 연합국의 잇단 경제제재로 군수산업의 주요 원재료였던 포르투갈산 텅스텐을 사올 수 없었다. 루르와 슐레지엔의 공업단지를 돌려야했던 나치 독일이 스위스를 합병해 버리는 것보다 마르크화를 스위스프랑으로 헹궈서 국제거래 대금결제를 하는 경리직원으로 살려두는 것이 더 이롭다고 판단한 것은 당연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스위스는 나치가 맡긴 막대한 금괴에 대한 증거를 인멸했다. 이를 위해 2천만 개가 넘는 금화를 주조했고, 재빨리 미국에 붙었다. 전후 모든 나라들이 직면했던 재앙적인 상황에 비하면 스위스는 나치가 허락했던 특권들로 국부를 지켜냈고 나치가 패망하자 다시 말을 갈아탔다. 국가 경영전략의 승리를 증명해냈다.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히틀러 의전차량이라는 후광으로 전후에 메르세데스 벤츠가 최고급 차로 등극했듯이, 스위스도 독재자와 탈세자들을 위한 ‘근엄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산 아래 나라들은 스위스의 비루한 은행 정책에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미국 세무당국의 압박이 아니면 스위스는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스위스 의회에서 자금세탁규칙을 고쳤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비영리단체들은 스위스 치즈보다 더 많은 구멍이 있는 부적절한 소규모 개정판이라며 비난한다.
사실 스위스 국회의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의 역사적 특권을 놓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여전히 세계인들은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조성된 스위스의 낭만 속에서 돈을 써보기 원한다. 프랑스와 독일 같은 유럽의 강국들과 고위층들은 돈을 헹굴 아웃소싱 업체가 언제나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스위스나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모나코 같은 돈세탁업자들이 대륙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결정적인 까닭이기도 하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프랑스와 독일의 초고위층들의 탈세와 절세 추문들은 여전히 산 밑의 나라들이 광장에서 투명성을 외친다할지라도 스위스 경제는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독일에서 이들을 부르는 말인 ‘난쟁이나라(Zwergstaat)’는 고상한 척 하는 유럽에 꼭 필요한 숨통인 셈이다.

검은 돈이 선사한 준기축통화국의 영광
외화를 빌려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국제경제에서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스위스는 산 아래 세상의 범죄와 부정의에 편승해 이런 특권을 가장 오래 누려온 나라다. 수차례 경제공황과 국제적인 금융위기에도 스위스 금융과 산업이 상대적인 견고함을 가졌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럽이 국제적 영향력을 잃고 오일머니가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스위스 은행들은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의 아랍과 중국을 상대로 영업을 뛰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기적에 종합상사들이 있었다면, 스위스가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된 데엔 은행들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쮜리히가 낳은 독일어권 희곡의 거장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안도라’는 조국에 대한 야윈 문학적 백서이다. 그는 작중 안도라 사람들이 ‘검은 나라(Schwarzen)’의 침공을 받기 전과 받은 뒤에 보여주는 사회적 조현증으로, 조국의 가족주의적인 속물근성을 고발하고 있다. 하필이면 제목이 왜 안도라냐는 질문에, 그는 단지 모델(Modell)이라며 넘어갔지만, 많은 스위스 학자들처럼 나치 독일에 열심히 협력했던 조국의 비루한 자부심을 비판하기 위해 대륙 정세의 소용돌이와 격리된 산골짜기 나라를 차용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다보스 포럼(WEF)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청렴도를 평가하는 모욕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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