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제대로 반성한 적 없다
[김영주의 ‘유럽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 ‘반성의 아이콘’ 독일의 진실은 미국 비호아래 전후 배상 거의 안해 주변국 무마위해 ‘립서비스 사과’ 수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이 논란이다. 그 중에 유럽은 가해자와 피해자간 반성과 화해가 이뤄졌다는 인식도 엿보였다. 과연 그럴까. 가해자 역할을 가장 많이 했던 독일의 반성에 대해 피해자 유럽인들은 “그쯤 했으니 받아들인다”고 생각할까.
독일은 우리에게 건드릴 수 없는 ‘과거사 반성의 아이콘’이다. 철저하게 수탈당한 그리스와 동유럽 나라들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아무튼 독일은 완벽하게 유럽 밖에서의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 일본만 악이고 독일은 선이 되도록 전후처리를 설계한 미국의 의도였을까.
일본의 연속성과 독일의 완전한 단절
일본에게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서독에게 1953년 런던채무협정으로 전후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의 기준을 정해준 것은 미국이다. 손실보상이 상대적으로 당시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면, 손해배상은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일본과 서독은 세부사항들에서 가급적 손실보상 항목이 많아지길 원했고, 미국은 웬만하면 그들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일왕’이었다. 미국은 일왕이 일본인들에게 갖는 상징성을 인정했고, 맥아더 막부는 왕정을 존치시켰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일왕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하여 반성을 요구했다. 일본은 국가 정체의 연속성을 갖는 대신, 군국주의에 대한 책임에서 일왕을 배제한 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은 혼란스러워 하는 일본에게 손해배상 대상국들과 약 250억 달러에 달하는 세부사항까지 정해주었다.
반면에 미국은 서독에게는 탈나치화(Denazification)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정해주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와 달리, 미국은 서독에게 ‘나치’에 의한 피해만을 손해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이것을 나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미국은 인종정책을 중심으로 각각의 전쟁범죄들을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미국은 일본에서는 일왕과 군국주의를, 서독에서는 전쟁범죄 중에 나치의 소행만을 분리했다고 자평했다.

현대판 면죄부 ‘페어질샤인’
미국은 나치와 완벽하게 단절된 새로운 서독을 원했고, 이에 따라 서독에서는 나치 시대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진행됐다. 1945년 5월 8일은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했던 날이지만, 독일에서는 ‘해방일(Tag der Befreiung)’이라고 표현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1933년 3월 총선으로 독일인들이 직접 뽑은 합법적인 정부였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미국에 의해 갑자기 피해자가 되었고, 독일인들은 패전이 아니라 나치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미국은 서독 정치인들에게 지침을 주고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을 제정하게 했다. 1949년 서독의 초대 총리에 오른 콘라트 아데나워는 기본법 제131조에 의거해 15만 명에 달하는 나치 소속 공무원들 99%를 풀어주고, 결백증서(weiße Weste)를 발급했다. 나치로부터의 완벽한 단절이라던 명분과 달리, 관청에는 책상 앞에 결백증서를 부착한 공무원들이 여전히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결백증서를 세탁세제 페어질(Persil)에 빗대어 ‘페어질샤인(Persilschein)’이라며 비아냥댔다.
사과 없는 보상, 연방보상법
동시에 아데나워 총리는 서독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켜 동독 동쪽의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에게만이라도 서둘러 보상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1951년 12월 설문조사에서 서독인의 5%만이 유대인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어쨌든 연합국들이 만들었던 보상에 대한 지침을 바탕으로 오랜 진통 끝에 1956년 연방보상법(BEG)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가 하는 보상을 ‘비더굿마훙’(Wiedergutmachung; 우리말로 하자면 ‘보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방보상법은 1937년 히틀러 시대의 국경선 안에 살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인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더굿마훙’은 실제 생활에서 만나보기 쉬운 단어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바라는 참회의 무게감을 갖는 단어를 쓰려면 ‘페어차이훙’(Verzeihung; 종교적 용서)나 ‘페어게붕’(Vergebung; 종교적 면죄)처럼 종교적 의미까지 포함해야 한다. 1993년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부분적 인정이었다. 그리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는 말이라도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죄송함’이라는 표현을 썼다. 빈말이라도 이것은 독일이 결코 해본 적 없는 수준의 사과이도 하다.
독일이 보상한 구체적인 액수는 연방통계청에서 열람할 수 없다. 단지 중간배상·재외자산·포로보상·점령연합국배상·준배상 등으로 약 413억 달러를 배상한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이 중 약 60%는 자국민에게 보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우리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에게 2억 달러 독립축하금과 3억 달러 상당 생산물과 역무(서비스), 그리고 3억 달러 이상 민간차관을 받았다. 아무튼 일본과 독일을 통틀어 피해국가가 가해국에게 가장 많이 받아낸 보상액이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약 5%만 피해자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한 ‘잔머리’
우리는 1970년 12월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었던 장엄한 장면을 기억한다. 그러나 방문 목적은 당시 요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총리와 ‘바르사뱌 조약’(소련과 위성국가들이 맺은 바르샤바 조약과는 다르다)을 맺는 것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시 서독은 25년 전에 연합군에 의해 정해진 동독과 폴란드의 현행 국경인 오더-나이세 선(Oder-Neiße-Grenze)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브란트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동쪽의 잃어버린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비더굿마훙(보상)’ 액수를 줄여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브란트의 사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다.
서독의 비더굿마훙(보상)은 잃어버린 동쪽의 영토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서독의 조야(朝野)는 비더굿마훙(보상)을 발트해 연안과 슐레지엔을 되찾는 대가라고 여겼다. 목적은 결코 참회가 아니었으며, 최소 1200만 명의 실향민이 있던 서독에서 동방 거주지를 수복하고자 했던 당시 열망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끈질긴 야망과 거만함은 여전히 피해국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를 감지한 미국의 요구에 통일 독일은 급한대로 2000년에 연방정부와 전범 기업들이 절반씩 출연해 한국 돈 614억 원의 기금으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을 발족시켰다. 유럽에서도 벤츠·루프트한자·지멘스·아그파·BMW 같은 전범 기업들의 강제징용은 손해배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식적 배상은 런던채무협정 틀 안에서 끝났기 때문에 법적 책임 없는 도의적 기부 활동이었다. 독일 기업들은 연수입 20% 안에서 기금을 출연했고 당연히 소득공제혜택을 받았다. 미래 재단(EVZ)은 피해국 정부와의 동의 없이 2007년까지 약 166만 건에 대해 각 개인들에게 344만 원부터 1033만 원 사이의 기부금을 주고 문제를 털었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는 한국식 EVZ에 가깝다.
우리만 모르는 독일의 민낯
2015년 1월, 당시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내각은 2차대전 전쟁 피해액을 최소 3400억 유로(약 408조 원)라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내역까지 공개했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를 장악한 결과였던 그리스 금융재정위기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내각이 가차없이 행동하자, 연대를 위해 감수해왔던 일방적인 인내를 내팽개쳤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은 “그리스는 게으르고 독일은 부지런하다, 그리스가 복지에 돈 쓰다가 망했다”는 논조로 도배했지만, 그것은 일제가 우리를 세뇌한 식민지론과 같은 논리적 가짜뉴스였다.
2019년 9월 1일,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가 바르샤바의 피우수트스키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80주년 행사에서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비록 연방총리는 아니었지만, 독일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용서’라는 의미인 ‘페어게붕’(Vergebung)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물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에게 나토에 더 많은 지출을 하라고 압박하며 비난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지난 19일에 다시 폴란드를 방문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화해의 기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행동은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내각에서 전쟁 피해액을 6조 2200억 즐로티(약 1988조 원)로 추산한 영문 보고서를 발간한 직후였다. 독일 정치인들은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적절한 립서비스로 위기를 모면해왔는데, 당연히 추가적인 보상이나 배상은 없었다. 그리스도 폴란드도 전쟁배상을 요구하면서 독일이 유로체제에 더 많은 역할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이 ‘반성의 아이콘’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나라는 남한이 유일할 지 모른다.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사진만 보고, 독일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