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대남과 개딸들이 문제일까(2)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학력위계·능력주의, 민주시민교육 방해 윤석열 당선, 시민교육 방기한 민주당 업보 미국도 반성중...’민주시민교육협의회’ 만들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선출 결과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선출 결과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1)에 이어 계속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거대한 백래쉬

이런 상황이 걱정이 되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일부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과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그런 요청을 얼마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냥 시늉일 뿐이었다. 기껏해야 그냥 변죽만 울리는 식으로 민주시민교육을 되뇌었다.

필요한 것은 단순히 민주주의의 제도나 원리에 대한 지식 교육만이 아니라(이것도 한참 부족했지만), 자라나는 세대가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내면화하고 일상 속에서 민주적 참여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로 의견이 다른 상대방도 존중하면서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최대한 합리적 근거를 들어 비판하고 반박하되,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에도 끝까지 ‘시민적 예의’를 잃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이대남과 개딸들 현상은 우리 교육이 이런 민주적 시민성의 함양이라는 과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했는지를 너무도 뚜렷하게 방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선거권 연령까지 하향했지만, 그건 그저 ‘개 발에 편자’를 다는 일일 뿐이었다.

물론 우리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학력위계주의적이고 능력주의적인 패러다임 자체가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 그런 민주시민교육을 방해해 온 게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우리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괴물’(오찬호)이나 ‘파시스트’(김누리)로 만들 뿐이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부와 사회의 여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드러내는 반민주적이고 반공동체적인 언행들을 보면, 그런 진단은 결코 과해보이지 않는다.

자라나는 세대만큼은 더 이상 그런 교육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이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닌 것만큼은 틀림없다. 사실 절대 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저런 교육을 지지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래도 수많은 교사들과 관련자들이 미래 세대가 어떻게든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신적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런 노력이 이토록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나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적어도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자임한 문재인 정부 때는 이런 상황이 최소한 얼마간은 개선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사정이 나아진 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말로는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실상 방기해 버렸던 민주당 정부의 업보인지도 모른다.

놀라운 건 정작 이렇게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은 시작도 못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거대한 백래쉬의 물결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교육부와 진보적 혁신교육의 선봉에 서 있던 경기도를 비롯해 보수를 표방한 교육감들이 당선되자마자 아예 ‘민주시민교육과’를 없애버렸다. 특히 이들 교육감들은 선거 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은 편향된 이념교육이고 좌파교육이라며 색깔 공세마저 펼쳤더랬는데, 이제 무슨 ‘인성교육’이나 ‘AI교육’으로 그 자리를 메우겠단다.

지난 2월7일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는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 폐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을 규탄했다. 앞서 대전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대전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 폐지 조례안을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7일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는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 폐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을 규탄했다. 앞서 대전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대전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조례 폐지 조례안을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사회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민주적 시민단체들을 무슨 ‘공공의 적’이라도 되는 양 취급하며 그동안 있었던 눈곱만큼의 정부 지원마저 끊고 외려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경남 같은 데서는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도록 한 조례를 아예 없애 버렸고, 서울을 비롯한 많은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도 예산 삭감 등의 극한적 조치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은 제대로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이제 아예 싹조차 말라버릴 지경이다.

시민운동으로서의 민주시민교육

어쨌든 우리 교육계는 이런 참담한 상황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깊은 성찰부터 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시절을 보내며 많은 이들이 그런 결과를 낳은 미국 교육의 실패를 자각하고,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을 하자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지 않고 함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적 불화’의 방식과 ‘시민적 우애’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민(civics)’과 ‘역사’ 교과의 교육과정을 재정비하고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런 과목들을 수강하게 하고 관련 교사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식의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나는 조심스럽게 이제 우리 교육계가 그동안 이상적인 전범으로 생각하며 따라가려고 노력해 왔던 ‘독일 모델’을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독일에서는 ‘연방정치교육원’을 필두로 모든 주가 ‘주정치교육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식의 중고등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 곧 ‘정치교육’을 필수 교과로 삼고 있다. ‘다시는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독일 사회의 다짐이 이런 민주시민교육 체계를 만들어 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런 독일을 모범으로 삼아 열성적인 노력을 해왔다. 나도 이 모델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러나 역시 한국은 독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여 우리 나름의 모델을 찾아가야 하는 거였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은 결국 하나의 ‘(교육)시민운동’으로 일단 자리를 잡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처럼 모든 정치세력이 합의한 상태에서 국가적 과제로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제일 좋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 자체를 불편해 하는 세력의 힘이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청이나 광역 및 기초 자치 단체를 포함한 광의의 정부와 함께 하는 거버넌스 자체를 포기하지 않더라도, (학교를 포함한) 시민사회 수준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자율적인 연구 및 실천 조직부터 제대로 정비하는 게 일차적인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나는 가칭 ‘한국민주시민교육협의회’ 같은 네트워크 조직부터 만들자고 제안한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학교의 민주시민교육과 시민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이 서로 별다른 대화나 소통 없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부터 해결하면서, 그런 조직을 통해 민주시민교육 관련 학자와 연구자, 교사, 활동가 등이 모두 참여하여 학교에서든 시민사회 수준에서든 더 나은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필요한 정책과 내용과 방법 등을 연구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관련 의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마련해 보자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치는 일만큼이나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지혜와 열정이 필요한 때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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