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미 ‘디지털 신냉전’으로 진입했다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21세기 냉전, 20세기때와 어떻게 다를까 디지털전쟁, “첨단기술 접근에서 배제” 유럽은 냉전수행 역량없어...한국은? 미·중 아닌 ‘디지털 우방국’ 구축해야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재발된 ‘냉전’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략했을 당시만 해도 이 전쟁이 해를 넘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조치로 러시아는 2022년 5월 국제결제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 후 달러결제시스템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러시아의 독단적 군사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런데 2022년 10월 13일 유엔총회에서 실시된 “러시아 침략 규탄 결의안”에 대한 결과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143개국은 찬성했지만 5개국은 반대, 35개국은 기권했다. 즉 세계의 38개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 모든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러시아를 제재하기에 충분한 숫자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세계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정권은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대표격이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지 않는 38개국들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치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공산권과 비공산권의 분열처럼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다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다시 냉전시대와 같은 진영간 갈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새로운 형태의 냉전: 디지털 냉전
과연 21세기의 민주와 비민주 세력간의 대립이 20세기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할 때 가장 큰 신규변수로 등장한 요인은 바로 “디지털화”이다. 디지털화는 세계의 산업과 문화의 평준화를 가져왔으며 물리적 거리를 단축시켜 초연결사회를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디지털화는 민주주의의 옷을 입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든 권위주의 국가든 디지털산업에 의존한 성장에 목을 메지 않는 국가는 없다. 이제 디지털없는 아날로그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디지털은 21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헤게모니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20세기 냉전이 군비경쟁을 통한 정치체제의 경쟁이었다면, 21세기 신냉전은 디지털 기술경쟁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의 경쟁이 될 것이다. 이 가운데 상대에 대한 “배제”는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 배제”가 관건이 될 것이다.
2022년 10월 22일 게재된 라나 니자르 박사의 “디지털 냉전시대의 도래”를 통해 향후 진행될 21세기 신냉전 시대의 방향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다. 그는 21세기를 “컴퓨터화된 헤게모니”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경쟁은 인공지능과 통신기술의 혁신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는 2022년 하반기에도 디지털 냉전의 도래와 함께 미-중간 갈등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중국이 현명하게 갈등을 잘 피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첨단기술경쟁, 화합할 수 없는 진영간 갈등
과연 그럴까? 2023년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중국과 밀착하고 있고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무기들을 가능한 한 모두 우크라이나로 밀어넣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의 무기지원을 받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은 어느 때보다 분명하며 중국은 서방세계와 멀어지고 있다.

디지털 냉전시대 도래의 기본적인 전제는 민주국가 진영에서 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이전 금지”에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기술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이 2022년 8월 채택한 인플레이션감축법(일명 IRA법)과 반도체법은 매우 파괴적이다. 이들 법들은 최첨단 기술의 중국 유출 방지를 실질적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이미 일본과 네덜란드가 협력하기로 한 상태이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하면서 중국시장을 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지금 태평양에서는 기술전쟁이 빠르게 진행 되고 있다.
디지털냉전에 취약한 유럽의 현주소
그러면 서유럽은 디지털 냉전시대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2020년 9월 런던정경대에서 발표된 “유럽과 디지털냉전”에서는 유럽의 디지털기술의 취약성이 매우 적나라하게 지적됐다. 저자인 드미트리 릴코프는 “미중간 기술경쟁이 불러올 디지털냉전에서 유럽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며 유럽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고 있다.
결국 디지털권력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는 데이터 독점을 통해 현실세계와 인터넷세계를 연결하는 문지기 역할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중국은 자국의 디지털권위주의를 통해 자국민 감시체제를 아시아, 아프리카, 더 나아가 유럽으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외 국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특히 유럽은 지금의 세계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력과 달리 디지털 냉전시대 기술경쟁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적이다. 그들이 가진 디지털경쟁력 중 세계적 지배력에 도달한 것이 없다. 즉, 릴코프는 디지털 냉전시대 유럽은 “디지털 피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다양한 유럽 내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디지털 인프라, 기술혁신, 테크기업의 역량 강화 등 그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디지털 냉전시태는 보이지 않는 “사이버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누구는 진입을 막을 것이고, 누구는 그 진입을 뚫기 위해 불법을 끊임없이 자행할 것이다. 마치 지금 중국이 넷플릭스의 시장진입도 허용하지 않은 채 자국민들이 불법으로 보도록 손놓고 있는 것과 같은 양태의 합법과 불법의 경쟁 또는 침입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성코드가 뿌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쟁행위를 규제하는 제네바협정이 사이버 상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중간 피할 수 없는 기술전쟁...한국의 딜레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향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새로운 진영간 대결인 “디지털 냉전시대”에 대해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는가? 물론 한국의 경우 반도체와 다양한 자동화 기술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냉전에 있어 “뒤처지고 있는” 유럽의 상황이 한국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될 위험은 없는가?
유럽은 블록경제로 공동대응할 수 있는 국가가 27개국이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동일한 입장에 있는” 우방국이 가까이에 없다. 기술혁신과 함께 “사이버 전쟁”에 대한 정책적 전략 구축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도 아닌, 중국도 아닌 자국의 생존을 위해 디지털 세상을 이용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동류국가(like-minded States)”간 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국가들이 양측의 디지털 냉전에 동조해야 하는 분위기 자체가 서로에 대해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냉전시대에 벌어졌던 정치경제적 이념 경쟁이 실물세계와 가상세계 모두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가상세계를 통한 인류의 진보가 “냉전”이라는 장벽에 갇히게 될 것이다. 디지털 냉전에 대비한 국가의 안보울타리를 서둘러 점검하여야 할 시기이다. 가지고 있는 기술적 우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디지털 냉전 시대 우리의 우방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