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교육,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한국정치, 적과 아군만 있는 전쟁터 독·프·영국은 정규 공교육내 정치 가르쳐 언제까지 교육안된 국민 대표 뽑을 것인가

독일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하고 있는 교실내 모습. 동영상캡쳐=한국선거방송/중앙선거관리위원회
독일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하고 있는 교실내 모습. 동영상캡쳐=한국선거방송/중앙선거관리위원회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총제적 위기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정당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희극을 상연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여당 의원들은 찬양 또는 침묵으로 공천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야당 또한 공천을 앞두고 당내 갈등을 키워가며 주인인 국민을 뒷전으로 한 채 그들만의 리그에 서 있다.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야당의 밀어붙이기와 대통령의 무조건적 거부권 행사 예고 등은 우리 정치에 대결만 남은 듯이 보이게 한다. 협치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되도록 야당 지도부와 한 마디의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았다. 4·19 기념사에서 나타났듯이,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에게 야당 대표와 야당 인사들은 처벌해야 할 ‘사기꾼’이다. 다수당인 야당과의 대치는 국민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정부를 만들 뿐이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보인다.

경상수지 적자는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금리인상과 함께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 되어 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복합 위기와 미국의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으로 우리 경제에 예상을 뛰어넘는 타격이 오고 있다. 서민들은 급기야 전세사기 앞에서 생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대결과 공천의 정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생은 더 이상 정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을 약화시킬 것이 확실해 보이는 미국의 정책에 제대로 대응해 보지도 못한 채 한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도 포기하고, 일본의 사과도 포기하고, 그 결과 우리의 자존심도 포기하고 말이다. 바로 옆의 거대한 군사대국들을 적으로 돌리고, 핵무기로 시도 때도 없이 위협하는 북한까지 자극하면서 말이다.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대통령은 지지율이 1%로 떨어져도 자신의 뜻을 강행하겠다고 말한다.

멈춰버린 정치

정치, 경제, 안보의 총체적 위기 앞에서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오히려 정부 여당은 위기의 원인을 노동조합으로 규정하고 노조혐오에 기대어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 문제의 원인을 국민에게 돌리기 바쁜 것이다. 순한 양이 되어 정부에 어떠한 책임도 추궁하지 않는 대다수 언론 덕분에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을 조폭으로 규정하는 막말까지 내뱉고도 무사하다.

경제는 끝없이 하락하고 안보불안은 하루하루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멈췄다. 위기 앞에서 승자독식의 정치를 개선하고자 정치권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도 논의되고 있다. 제도 개혁이 변화를 위한 우선적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시민의 성숙한 정치의식과 참여, 정치 지도자의 민주적 통치 능력과 협치의 기술 없이 정치는 발전하기 힘들다.

지난 20대 대선이 편가르기와 혐오의 과정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역대 최소 득표차로 선출된 정치 초년생 대통령은 정치적 경쟁자들과 협치도, 소통도 하지 않는다. 기존 정치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적 통치와 합의의 정치는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런데 원인 제공자가 누구였든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 시민이다. 정치가 멈춘 곳에서 시민들 또한 편가르기를 일상화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약자에 대한 관용을 잃어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민주적 공동체적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우리는 정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하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합의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 정치는 적과 아군만 남아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전쟁이 되어 버렸다.

‘시민적 덕성’을 기르는 시민정치교육

삶의 어떤 영역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현대사회다. 따라서 정치의 원칙과 기술을 이해하고 익히는 과정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갈등적 가치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융합시킬 수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 건전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시민으로서, 또 정치 지도자로서 기본 소양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학자인 파울 뢸만은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치교육이 모든 조치의 처음이자 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교육으로서의 정치교육은 정치제도나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정치적 관용,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인권과 자유에 대한 태도와 인식 등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 교육이다.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 정보의 홍수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 등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독일의 경우, 보수-진보 세력 간 치열한 논쟁 끝에 1976년 정치교육의 목표와 근거 및 내용과 방법에 합의했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정치교육은 정규 교과과정 내에서 의무화되어 있으며, ‘연방정치교육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일관되고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진다. 학교 내의 정치교육은 주 헌법에 따라 제도화되어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의회 활동을 통해 현장성을 더한다.

프랑스에서도 시민교육이 초중고 전 교육 과정의 필수 교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의 시민교육은 타인에 대한 존중, 공화국 가치에 대한 이해와 공유, 그리고 시민문화 습득 등을 목표로 구성되며, 비판적 사고와 다양성을 수용하는 토론 능력 함양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랑스는 특히 최근의 사회문제를 시민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시민교육법을 개정하고 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앞의 두 나라보다는 늦었지만 영국도 정치적 무관심과 사회적 문제들을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2002년부터 시민교육을 공교육 내에서 진행해 오고 있다. 중학교에서는 필수교과로, 초등과정에서는 가장 일반화된 교과목으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영국의 시민교육은 ‘정치적 문해력’을 갖추어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시민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시민성>이라는 과목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1999년 프랑스 교육부는 “시민은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이다. 이는 이성적인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하며, 대중의 토론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발표하였다. 독일, 프랑스, 영국 세 나라의 시민정치교육은 바로 이러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 시민적 덕성과 시민으로서의 능력 함양을 목표로 정규 교육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서울시 교육감 등 지방자치교육단체장이 토론자로 나서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사진=2019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지난 2019년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서울시 교육감 등 지방자치교육단체장이 토론자로 나서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사진=2019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시민정치교육을 심각하게 돌아볼 때다. 교육도, 연습도 없이 국민의 대표라는 자리에 앉아 대결만을 일삼는 정치인들과, 이를 부추기는 정파적인 언론, 양극화된 세계 속에서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정치를 종교적 신념의 세계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관용은 어림도 없고, 타협적 갈등 해결은 요원하다.

현재 한국정치의 모습이 다음 세대까지도 계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늦기 전에 시민정치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합의된 원칙에 따라 시민정치교육이 의무화되지 않으면 민주적 통치 능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배출할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 내의 변화와 더불어 서둘러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정당이 스스로 정치교육 주체로서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지구당을 부활하여 풀뿌리 단위에서 정치 지망생들과 시민들을 교육하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치 공간과 정치적 대상에 대한 이해, 시민과의 소통, 다양한 정치적 의견의 수용과 조율, 정치적 가치의 정립 등은 미래의 정치인들이 정치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배워가고 학습해야 하는 핵심적인 역량이다.

우리 시민들은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잘 교육받은 시민들이 질 높은 정치인을 선택하여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기대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나은 좋은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게 하려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글쓴이

이소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이소영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텍사스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유권자들의 정보량의 차이가 공간투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및 사회학과에서 정치학과 정치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선거학회 및 한국정당학회 부회장,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노무현 재단 ‘민주주의 리더십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과정과 정치커뮤니케이션이 주된 관심 영역이며, 주요 저서로는 <대변동의 미국정치, 한국정치 (변화와 투영)>(공저), <대통령 노무현, 한국정치에 무엇을 남겼나>(공저), <한국 정당의 미래를 말한다>(공저)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선거에서의 미디어 매개 효과”, “대중이 이야기할 때: 숙의민주주의와 대중의 협의”, “미국 유권자의 당파적 정체성과 정치적 부족주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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