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재난관리시스템으론 안된다

중앙정부, 재난예방 주도할 능력 있나 이순신 장군 ‘현장중시’· 日 주민자치 대응 주민자치회 중심의 재난예방시스템 필요

제방이 붕괴된 미호강의 물이 유입되면서 침수된 오송 궁평2지하차도. 14명의 시민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연합뉴스
제방이 붕괴된 미호강의 물이 유입되면서 침수된 오송 궁평2지하차도. 14명의 시민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연합뉴스

책임회피 공무원과 정쟁 일삼는 정치인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인재(人災)가 올해도 발생했다. 극한호우로 41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고 1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참담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겠는가.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는데도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1차적 책임이 있는 국가와 지자체 및 정치권에 이번 재난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하차도와 같은 저지대에서 침수 사고가 반복되면서 오송읍 지하도 참사는 사실상 ‘관재(官災)’라고 비판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사고 후에 해당 공무원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수해 원인에 대한 책임을 놓고 벌이는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은 한심하다. 피해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두 번 할퀴는 행태이다. 여야는 입으로는 정쟁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여당은 수해 재난의 원인으로 전 정부의 책임을 거론, 야당은 현 정부의 ‘대응 부실’을 지적하며 공방을 벌였다.

한마디로 이번 수해 원인을 놓고 정치권이 벌이는 책임공방은 몰염치한 책임회피성 정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주민자치가 작동하지 않는 관재(官災)형 국가재난시스템’의 부실을 만든 데에는 여야의 책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책임회피성 정쟁을 멈추고 국난을 이겨낸 이순신 장군처럼 애민과 선공후사의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순신 장군이 위기를 막은 방법

1592년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사색당파와 당쟁보다 바다의 지형지물과 어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장에서 답을 찾는 ‘현장 리더십’을 발휘하여 조선을 구했다.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바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승리 요인의 핵심에는 한양에 있는 선조의 간섭과 사색당파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남해 바다의 지형을 잘 알고 철저히 대비했던 이순신 장군과 어민들의 협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사회와 같은 ‘위험사회’와 ‘기후위기의 사회’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순신 장군과 어민과 같은 역할은 누가 해야 하는 것일까? 이참에 바람직한 재난예방시스템은 무엇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1차적 재난대응 누가 할 것인가

최근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기후위기와 재난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무총리 직속으로 ‘민관합동 상설기구’를 새로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까지 참여시켜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키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 벌어지는 재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각종 신고와 공익 제보로 위험 경고를 보내는 주민들이 빠져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

특히, 재난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민관협력 조직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사후 처리’보다는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다면 당연히 ‘보조성의 원칙(subsidiarity principle)’이 지켜지는 것이 중요한 데 그런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보조성의 원칙은 지역에서 주민들 스스로 자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그것의 힘이 모자랄 경우 그 위 상급단체가 보조적으로 지원하는 게 고비용 저효율의 관료주의를 막는 데 바람직하다는 원리이다.

재난이 발생하는 곳은 지역이고, 피해자가 주민들이라는 점에서 지역의 문제와 사정은 주민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상식이라면, 이런 보조성의 원칙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지역주민 스스로가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해서 안전한 지역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지역주민과 지방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할 때, 국가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절차를 밟는 게 다음 수순일 것이다.

중앙 부처는 민관합동 상설기구를 중심으로 모든 유형의 재난에 대해 직접 대응하겠다고 선포하고 직접 진두지휘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조직으로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분권과 자치 및 민관협력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중앙부처가 대한민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난에 직접 개입하여 대응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2020년 7월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본 일본 구마모토현인 주민들이 공터에 '쌀·물·SOS'라는 문자를 크게 써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7월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본 일본 구마모토현인 주민들이 공터에 ‘쌀·물·SOS’라는 문자를 크게 써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구마모토현의 지혜는

그렇다면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가장 빨리 대응해야 하는 기관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자치회 조직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국민의 가장 가까이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가장 작은 정부이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이다. 주민자치회와 같은 주민자치조직은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자발적 결사체를 지향하고 있다.

평소 통 단위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태원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오송 지하도 참사 때도 리 단위 주민자치회가 작동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여러 차례 사고의 징후를 알고 경찰서와 소방서 등 관계당국에 위험신호를 알렸지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그 이유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자치경찰위원회 등이 지역주민과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중앙정부의 지휘와 명령을 기다리는 관료주의에 길들여져서 복지부동에 익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방당국에 만연한 관료주의를 타파하지 않은 채, 그 위에 재난관련 상설기구를 만든다면 과거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뻔하다.

재난이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앙정부기관의 능력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자치회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의 경우 주민자치조직인 정내회(町內會)가 자발적인 방재활동이나 재해대응에 지방자치단체와 파트너십 형태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정내회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재단 예방·대처는 주민자치회가 하도록

윤석열 정부가 구상하는 민관합동 기구가 성공적으로 설계되어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현장에 있는 주민자치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청회가 필요하다. 주민자치 전문가인 전상직 (사)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은 “현재 재난의 의무와 권리는 모두 관에게만 있다. 독재를 하고 있으면서 예방도 대처도 못하고 있다. 관(官)중심의 재난 대처를 민주화하자”고 강조한다. 그는 “관은 어차피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무겁게 지고 있는 재난의 짐을 내려서 주민들에게도 의무와 권리로 지워주고 주민들이 재난에 예방·대처할 수 있는 자치역량과 체계를 갖추도록 하자”며 “주민자치회를 실질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이 ‘관’에서 ‘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장을 잘 아는 지역 주민들(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고 퇴직한 베테랑들, 지역대학, 설계사, 시공회사와 함께)이 참여하는 ‘재난안전 주민행동조직’을 전국 240여개 시·군·구 및 3000여개 읍·면·동 단위로 모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일이든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졸속으로 할 수는 없다. 우선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이 관주도에서 주민주도로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는 게 급선무다. 전국의 3500개 읍면동에 설치되어 있는 주민자치회를 실질화하여 ‘내 고장의 재난은 내가 지킨다’는 자치결사와 보조성의 원칙이 살아나도록 권한과 책임 및 예산 사용을 주민자치회에 부여하는 게 급선무다.

이제는 ‘주민자치가 작동하지 않는 관재(官災)형 국가재난시스템’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현장에서 답을 찾았듯이, 지역현장의 주민들이 참여해서 문제를 풀도록 주민자치회가 정부의 민관합동시스템과 연계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주민자치회 중심의 재난예방시스템이 필요하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서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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