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회복 없이는 재난예방 어렵다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또 한번 참사가 될 뻔했던 잼버리 외국정부와 외신 비판 나오니 그제서야 국내 정치·언론의 정부 비판과 견제 약화돼 윤석열 정부, 사고책임에 수용적 태도 가져야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례적인 “행사 중단” 결정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새만금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7일 개최지에서 조기 철수하게 됐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이 대통령실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언론에 알렸고,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에 대한 검토 사실을 밝혔다. 행사 중단 필요성이 이미 3일부터 제기됐고, 5일 예정됐던 프로그램 143개 중에서 140개가 이미 중단된 상태였다. 오늘부터 수만 명이 일시에 이동하고 새로운 숙소를 확보해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지난 6일간 참가 청소년들이 겪은 불편과 위험, 그리고 예보되는 태풍을 생각하면 이 행사의 사실상 중단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지난 4일의 ‘행사진행에 대한 중앙정부 책임 선언’과 7일의 ‘행사장 철수 결정’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윤 정부는 지금까지 정부책임론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기존 조치를 변경한 사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사안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또 정부의 책임은 행사준비 부실이 아니라 추후 행사진행에 대한 것이었으며, 예고된 태풍 대비라는 명분까지 제시했다. 그렇지만 정부의 철수 결정은 계획했던 새만금 잼버리를 중도 포기한 것이고, 관광이 중심이 될 대체 프로그램은 자연 속 캠핑을 통한 교류라는 본래 취지를 상실한 것이어서 사실상 실패를 의미한다.
윤 대통령은 이 행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기 스카우트 대원 출신이라고 밝히기도 했고, 지난 3월 한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로 추대되었으며, 이번 행사에 대해서 전폭 지지를 약속했다. 실제로 집행위원장인 전북도지사의 예산추가 지원 요청에 적극적인 지원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또 이 행사 조직위원장으로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여했다. 이중에서 여성가족부는 주관부처를 맡았다. 세계 잼버리 역사상 정부 주도로 처음 준비되는 사례라는 소개도 있었다.

우려와 보완 목소리 외면하다가
그러나 대통령의 관심에다 정부가 주도한 행사임에도 폭염에 그늘 없는 갯벌에서 158개국 4만3천여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한 행사로는 준비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난 2일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개영식 직후 1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두통을 호소한 사람은 800명이 넘었다. 3일까지 조직위원회가 파악한 환자가 1,757명에 달했고, 쓰러지는 사람이 많아 현장의 구급대원은 타지역 구급대까지 급하게 추가 배치됐다. 4일 코로나 환자도 28명이 발생했으며, 소방당국은 환자이송을 위해 행사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쾌한 잔치라는 의미의 청소년 캠핑행사 잼버리가 행사 시작 단계부터 거의 생존위기 체험이 되었던 셈이다.
준비기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예정된 사전준비 행사인 프레잼버리 대회마저 코로나 확산 우려로 취소된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 그때부터 준비했더라도 1년 이상 기간이 있었다. 그때 3개월 후 열린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행사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김현숙 장관에게 준비 부족 우려와 보완 요구가 제기되었다. 올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안전문제 보완 목적으로 예산지원 요구가 있었고, 6월 초 조직위원회는 배수 시설 보완 목적으로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이들 요청이나 우려 중 어떤 것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일 행사가 시작된 직후 전라북도의사회가 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자원봉사 인력을 다급하게 꾸렸지만, 집행위원회는 12일까지 상시 활동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행사주최측은 이때까지도 보완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3일에는 이미 행사의 대폭 축소나 조기 종료 이외에 부분적 일시적 보완 수준으로는 상황을 관리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참여자 부모, 야당, 언론보도 등으로 행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행사 담당자들은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았다.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개영식 K팝 행사때 체력 소진을 환자 발생 원인으로 인식했고, 집행위원장인 전북지사는 불만이라는 것은 제기하면 끝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영식을 포함한 준비 및 진행 방식의 문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하지만 행사 참여자들은 개영식에서 대통령 참석으로 예상치 못한 불편과 고통을 겪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외국정부와 외신 비판 나오자 “철수” 수용
정부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4일이었다. 중앙정부가 행사를 직접 주관한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앞서 3일부터 BBC, 가디언, 로이터, AP, UPI, ABC,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이 잼버리 상황의 문제점을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영국, 미국, 그리스, 아일랜드 등이 정부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게 우려 또는 불만을 담은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4일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새만금 잼버리 조기 종료를 제안했으며, 5일에는 영국과 미국 팀이 조기 퇴영 입장을 밝혔다. 행사주최측이 적극적인 보완책을 제시하고, 윤석열 정부가 책임과 주도를 선언하고, 새만금 철수를 결정한 것은 이러한 외국 정부의 압력과 해외 언론의 비판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 같다.
이 행사가 국내 행사이거나 외국인이 참여하더라도 할로윈 축제처럼 정부의 공식 행사가 아닌 경우 윤석열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행사 일정을 변경했을까? 최근 양평 고속도로 문제나 작년 이태원 참사 등을 생각해보면 윤석열 정부가 이번처럼 대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양평문제는 대통령 가족 및 친인척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고, 이태원 참사의 원인도 사고 당일 용산경찰서 정보관이 대통령실 주변 집회 관리에 투입된 것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들 사건에 대해 대통령실이나 정부·여당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건을 바로잡는 방향의 결정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
정부가 책임에 수용적이고, 언론 비판이 자유로울 때
정부가 계획했던 잼버리 행사 일정을 포기했지만, 이제 큰 사고로 악화될 가능성은 적어졌다. 양평 고속도로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례도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적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 차이는 정부의 책임성 여부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국내의 정부 비판과 견제에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있다. 이미 언론과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대한 순응성이 커졌다. 8월 3일 이후 이번 행사의 준비부족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이전부터 제기되었다는 것이 보도되었지만, 8월 2일까지 언론보도에서 이러한 내용을 찾기 힘들다. 문제제기나 우려가 일회성으로 그치고, 공론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체계화, 담당자들의 숙련, 시민들의 의식 등이 안전사고 예방과 대응에 중요하지만, 재난이나 참사 등을 돌아보면 기본적인 지침, 요구, 조짐을 외면한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안전에 대한 무책임성으로 담당자들이 이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거나,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비판이나 요구를 외면하거나, 아예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난해 6월 원전 관련업체를 찾은 자리에서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정부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 문제다. 또 행정부, 국회, 언론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현재 한국 정치, 경제, 사회의 기본 문제는 정부와 집권당이 야당과 언론에 대한 견제와 비판에 주력하면서 국정 책임성이 약화된 데에 있다. 때문에 위기관리 강화의 기본적인 대안은 야당의 정부 견제, 언론의 정부 비판 기능이 회복되고, 정부의 국정 책임성이 강화되는 민주주의 회복에 있다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