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논쟁,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윤대통령, “독립운동은 건국과정”으로 정리 다시한번 정치권에서 건국절 논쟁 제기돼 ‘바람직한 방안은 뭘까’ 고민하는 계기로 정치권 개입 말고, 삼일독립기념일=건국일로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 관련 퍼포먼스가 열렸다. 사진= 연합뉴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 관련 퍼포먼스가 열렸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제기한 ‘건국 과정론’

광복절을 전후로 세간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 언제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일 독립유공자·유족과의 오찬에서도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발언의 메시지는 윤 대통령이 ‘건국 과정론’을 제기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는 보수진영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건국시점을 특정시점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독립운동 전체 과정을 건국의 로드맵으로 본 점은 이전 정권과 다른 점이다. 그동안 보수 진영은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려는 ‘1948년 건국설’을 제기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려는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의 관점에 도전하면서 양 진영간에 논쟁을 만든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도전의 예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한 ‘1948년 건국설’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박에 부딪혔다. 역대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시점을 두고 광복절 때마다 입장을 번복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했고,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며 건국 시점을 다시 정의했다.

최근에는 이종찬 광복회장과 그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회나 언론 기고 등을 통해 “1948년 건국설 주장은 일제강점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동안 정치권이 벌여왔던 건국절 논쟁은 일장일단이 있지만 소모적인 측면이 많다.

정치권이 건국절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 방안

이 논쟁은 폭발성이 강하고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논쟁인 만큼, 정치권이 이번 기회에 차분하게 건국절 논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그 바람직한 방법의 지침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첫째 안’과 ‘현실적인 둘째 안’을 고려하여 판단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 안은 정치권이 역사와 거리를 두는 방안이고, 둘째 안은 미국의 사례를 우리와 비교하면서 논쟁에 개입하는 방안이다.

우선, 정치권이 첫째 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권의 역사해석과 개입이 번번히 역사전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만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생을 챙겨야 할 정치권이 책임있게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견해이다. 역사(학)는 실용적 처방을 강조하는 정치(학)와 달리 일정한 관점과 원리(즉 사관이라는 체계)에 따라 재구성되는 준 메타피직스(유사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부분적인 타협이나 절충을 하는 다양한 해석이 불가능하고 어렵다. 종교적 원리주의와 같이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전체 체계(사관)를 수용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정통이냐 이단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교리가 아닌 현장과 상황에 맞게 실용적 정치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정치권이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역사전쟁에 빠지게 되면, 대화와 타협의 부재로 국정은 마비되고 민생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치권이 건국절 논쟁을 피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책무이다.

첫째 안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리버럴(자유주의자) 성향의 정치가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문화전쟁(종교, 도덕, 역사 이슈)에 대해 국가와 정치권의 직접 개입보다는 시민 각자와 언론 등 시민사회의 자율적 논쟁에 맡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치권과 정부도 좌우 성향에 관계없이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역사와 정치를 분리해서, 문화전쟁(역사교과서 국가검정, 과거사, 건국절 논쟁 등)과 관련된 일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자율적 논쟁에 맡기거나 위임해 충분한 합의도출이나 공론형성이 있을 때까지 지켜보는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아픈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건강한 미래와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용서하고 화해하며 망각하는 것’의 균형적 시각이 필요하다. 대신 정치권과 국가 공무원의 에너지를 역사와 도덕 갈등이 아닌, 당면한 양극화 극복, 서민경제 회복 등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성조기 디자인의 옷을 입은 시민들이 도로변 벽 위에서 건국일을 기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성조기 디자인의 옷을 입은 시민들이 도로변 벽 위에서 건국일을 기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처럼 건국절보다 ‘건국일’을 정하는 방안

다음으로, 정치권이 차선으로 둘째 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정치권이 역사논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면, 독립과 건국의 선진국인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 개입하는 방안을 찾는 게 차선일 수 있다. 이왕 시작한 건국절 논쟁이 바람직하게 진행되려면 독립전쟁을 통해 건국혁명으로 이어진 민주공화국 건설의 세계적 모범사례인 미국의 건국경험을 참조해 보면 좋을 것이다.

미국의 건국과정은 독립선언 채택, 독립전쟁 승리, 헌법제정회의, 헌법안 비준, 정부수립 등 헌법제정권력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학술적으로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는 미국의 독립전쟁과 헌법제정회의에서 만들어진 연방헌법안과 그 비준과정에서 드러난 논쟁 등을 통해 자유와 열정을 가진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의 힘이 어떻게 미국 헌법의 권위와 민주공화국의 건국을 탄생시켰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함으로써 미국 건국모델에 형성된 ‘독특한 공화국의 혁명정신’을 설명한다.

독립전쟁에서부터 헌법제정권력의 형성을 통해 공화주의혁명을 이루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한 미국은 연방헌법 서명이 완료돼 공표된 1787년 9월 17일이 아니라 1776년 7월 6일 대륙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영국과의 전쟁 속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한 날을 ‘Independence Day’로 정하고, 이날을 일종의 ‘건국일’로 기념한다.

이처럼 미국은 건국절이 따로 없고 독립기념일을 건국일로 공유하고 있다. 미국의 선례가 이렇다면 우리 역시도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건국절을 구태여 따로 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도 소모적 논쟁과 역사전쟁을 그만하고,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을 ‘Independence Day’로 보고, 현재 ‘삼일절’을 ‘삼일 독립기념일’로 승격하여 이날을 건국일로 대신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서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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