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예쁜 백인 여가수, 그녀의 음악성은?

[김효진의 팝, 그 빛과 그늘] 부모의 전폭 지원 덕에 스타반열에 스캔들까지 음악에...팬심 자극 비틀즈 작곡 공부했다지만 글쎄 ‘명반’ 내진 못했지만, 기대감 있어

프로필

- Taylor Alison Swift
- 1989년 펜실베이니아 웨스트 레딩 출신 싱어 송라이터


최근 나에게 연이어 충격을 안겨준 미국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Alison Swift). 대중 음악계에서 그녀가 이 정도로 굉장한 존재였던가에 일단 한번 놀랐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왜 통 모르고 있었을까. 나뿐 아니라 모두를 놀라게 한 그녀의 최근 투어 소식이 문화계가 아닌 경제계에서 화제라는 점이 그간 나의 무관심과 살짝 관련이 있긴 하다.

도대체 어쨌길래

테일러 스위프트의 아버지는 메릴린치의 재정 자문가, 어머니는 뮤추얼 펀드 마케팅 회사의 중역이었다. 경제와 경영 분야 전문가를 부모로 둔 그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신부터 ‘성골’ 연예인이라 할만하다.

컨트리 음악을 하겠다는 딸을 위해 온 가족이 테네시 주의 내슈빌(컨트리의 본고장)로 이사했는가 하면 빅 머신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아버지 스콧은 바로 주식을 사들여 레코드사의 주주 중 한 사람이 된다.

컨트리에서 팝으로 전향하며 테일러는 젊은 여성 팬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되는데 앨범 판매량, 투어와 팬덤 규모 등 어느 하나를 놓치지 않고 북미의 Top에 이른다. ‘Taylor Swift is the music industry’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10집까지 모든 정규 앨범이 빌보드 연말 차트 5위안에 들었으며 1집부터 8집까지 판매량은 각각 400만 장을 넘겼다. 특히 작사 능력이 인기의 큰 비결이랄 수 있는데 존 메이어, 제이크 질렌할, 해리 스타일스 등등 유명인들과의 연애 과정을 고스란히 가사에 담아내어 곡마다 화제를 일으킴과 동시에 젊은 여성들의 설렘 가득한 공감을 얻고 있다.

예컨대 3집 “Speak now”의 ‘Dear John’은 존 메이어와의 이별을 노래 한 곡으로, 곡 길이가 일반 팝치고 긴 편인 6분 44초인데, 알고 보니 마지막으로 존 메이어와 통화했던 시간이 6분 44초였다고. 게다가 ‘Dear John’은 원래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는 뜻을 지닌 속어이기도 하다.

스캔들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으론 그 세밀함이 과연 역대급이다. 젊은 팬들은 그 디테일들을 뒤져 찾아내는 데 꽤 몰두해 있는 모양으로 지난 곡들이 그런 식으로 재소환 되는 과정 속에 판매량 증가는 멈출 짬이 없다.

Dear John

유튜브 동영상=테일러 스위프트 ‘Dear John’

어쨌든 세계최고

10집 발표 후 올 3월부터 시작한 테일러의 글로벌 투어 예상 수익이 대충 19억 달러(약 2조 5047억 원)란다. 그녀가 공연하는 도시마다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이번 에라스 투어로 전 세계에서 50억 달러의 경제 부양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서는 예매를 시도하려는 사람만 1400만 명이었고 처음 계획보다 25회의 공연이 추가되었음에도 암표는 47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시애틀에서의 공연 중에는 환호하는 관중들로 인해 지진관측소에서 규모 2.3의 진동이 측정되었다고도 한다. 가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숫자를 적어보긴 처음이다. 사실 그러므로 이건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 내 두 번째 충격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앨범을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는데 비틀스의 작곡 방식을 공부한 싱어송라이터 운운할 곡이라고는 단 한 곡도 찾을 수 없었다.

아 뭐야 다 그게 그거 같잖아.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

뭔가 크게 속은 기분이었지만, 그녀의 평가들을 다시 돌아보니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20대 여성 아티스트’, ‘2010년대 가장 성공한 여성 음악가’ 이렇게 교묘한 칭찬들이네. 얄미운 평론가들 같으니라고.

내가 어릴 때 또래들이 열광했던 보이 조지나 듀란듀란도 대개의 어른들에겐 아마도 그게 그거 같았겠지. 어른들은 뭘 몰라 하고 무시하곤 했지만 이제 그 뭘 모르는 어른이 되어 젊은 팝에 접근하는 길을 잠깐 깜빡한 듯하다.

그녀의 앨범들이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사랑받는 ‘명반’에 이르지 못한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대단한 스타가 과연 음악적으론 실패한 것일까.

아니, 테일러의 음악은 대중문화의 본질이랄 수 있는 통속성을 정확히 추구하고 철저히 계산하고 있다. 열 개의 앨범 모두 넘쳐서 부담스럽거나 부족해서 격 떨어질 구석이 하나도 없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 역시 보수적인 빌보드로부터 사랑받기에 컨트리 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젊고 예쁜 백인 여성은 또 얼마나 무해한가.

그녀의 실제 연애담이 충실히 그려진 가사들은 실연의 슬픔조차 예쁘고 당당하다. 많은 여성 톱스타들이 그러듯, 과도하게 섹스 어필하거나 너무 열심히(?) 춤추느라 우아함을 잃을 순간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테일러의 음악과 이미지는 진하진 않지만 웬만한 땀방울론 끄덕도 않을 메이크업 같다. 인스타 시대의 ‘인싸’ 그 자체다.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The Eras Tour Nashville - May 6, 2023

유튜브 동영상= The Eras Tour Nashville - May 6, 2023

누가 뭐라 하겠나. 젊은이들이여 맘껏 즐기길. 머릿속에 숫자가 늘어가면서 이 환호가 어떤 이들의 주머니를 어떤 식으로 채워주고 있는지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기 전에.

가창력도 많이 좋아졌다든가, 실력이 없으면 마케팅 만으로 이만큼 떴겠느냐 등등 괜한 변명도 필요 없다. 대중문화는 어떤 평가로 남겨질 것이냐라는 논의와는 별개로 원래 그렇게 즐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비틀스가 어떻고, 21세기 최고의 여성 음악가니 하는 얘기는 그냥 못 들은 척 하려고.

결국 음악

테일러(혹은 테일러 팀?)가 기획한 음반은 잘 와닿지 않았지만 몇몇 영화 사운드트랙들에서 들려준 그녀의 감성은 꽤 아름답다.

여린 소녀의 애잔함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이 노래를 10년쯤 전에 들었을 땐 스물을 갓 넘은 이 예쁜 아이가 어떤 아티스트로 커갈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었다.

Safe & Sound feat. The Civil Wars(The Hunger Games)

유튜브 동영상= Safe & Sound feat. The Civil Wars (The Hunger Games)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쓰여진 노래는 한층 더 어둡다. 그녀의 중저음 보이스가 낮게 깔리는 현악들과 어울려 마음에 깊이 울려오지만 왠지 스위프티(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다.

그 많은 히트곡 다 두고 이런 곡들로 마무리라니 내가 좀 짓궂은 건가 모르겠지만.

Carolina(Where The Crawdads Sing)

유튜브 동영상= Taylor Swift - Carolina (From The Motion Picture “Where The Crawdads Sing”)
글쓴이

김효진 팝 칼럼니스트

김효진은 팝 칼럼니스트 입니다. 아직도 안 망했냐는 말을 4년 가까이 들으며 잠실에서 LP 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시집 한 권과 여기저기 써낸 음악 에세이가 자꾸 늘어가는 무명작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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