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눈부신 골프 열정

[김수인의 ‘귀에 쏙쏙’ 골프 이야기] 이병철 회장 홀인원 세 번,이건희는 싱글 수준 “골프 못치면 ‘머리 나쁘거나 열정 부족한 탓” 삼성 임원들, 새벽 골프 연습후 출근하기 일쑤

호암 이병철 회장.
호암 이병철 회장.

호암 이병철 회장의 애틋한 골프 사랑

삼성 그룹 임원(CEO 포함)들은 대체로 골프를 잘 칩니다. 다른 대기업 임원들보다 훨씬 잘 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삼성 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1910~1987)의 남다른 골프열정이 있습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이 언제 골프에 심취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골프 입문후 바쁜 사업 일정에도 골프 라운딩은 꼭 챙겼습니다.

그는 키가 167cm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였으므로 장타를 날리거나 스코어를 줄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난다 긴다’하는 프로들로부터 레슨을 받았지만 소원이던 ‘싱글 진입’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전에 세가지 이루기 힘든 일을 꼽았는데, 첫째는 조미료 사업(제일제당의 미풍이 미원에 밀려 늘 2위). 둘째는 장자 상속(결국 셋째 아들인 이건희회장이 경영권 승계) , 그리고 셋째는 골프 핸디캡 싱글 달성(81타 이하)이라고 주위에 종종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호암은 평생 소원인 싱글 핸디캐퍼가 되진 못했지만 골프를 열심히 친 결과, 홀인원을 세차례나 기록했습니다. 이 회장이 삼성 그룹을 경영할 당시인 1980년 전후에는 삼성 그룹 임직원이 3만명 정도 됐는데, 이 회장은 홀인원 기록할 때마다 기념 수건을 임직원 전원에게 돌렸습니다. 남들이 평생 한번 하기도 어려운 홀인원 기록을 세 번이나 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호암의 생애 마지막 라운딩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그는 1987년 10월 27일, 투병 중임에도 안양 컨트리클럽에 차를 마시러 갔다가 즉흥적으로 라운드에 나섰습니다. 오후 늦게 시작해 3번 홀을 마칠 때 땅거미가 내렸는데 골프장에서는 카트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모두 켜 페어웨이를 밝혔습니다. 호암은 6개 홀을 돌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곤 23일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인희, 이명희 회장도 아빠를 따라서

호암의 그늘 아래 삼성가(家)의 골프 사랑은 단단해졌습니다. 호암의 영향으로 삼성가 일원은 어릴 때 골프를 배웠고, 다들 골프를 좋아했답니다. 여자 프로가 생기기 전 호암의 딸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자 골프대회는 1976년 열린 부녀(婦女) 아마 선수권이었는데 호암의 딸인 이인희, 명희 자매가 주름잡았습니다.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2회 대회(1978년) 3위, 4회 2위, 5회 3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아시아 최고 코스를 목표로 강원도 원주에 오크밸리를 건설했습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호암을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경기도 여주에 럭셔리하기로 소문난 ‘트리니티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역시 골프를 좋아했고, 아프기 전에는 ‘싱글’에 가까운 핸디캡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재벌그룹 오너들이 다 그렇듯 이건희 회장도 한 가지 일을 성공시킬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었는데 크지 않은 체격임에도 200m를 훌쩍 넘는 드라이버샷 비거리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한장상 전 프로골프협회 회장은 “나보다 이 회장이 드라이버샷 거리가 더 나갈 때가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직원들, 특히 임원들에게는 ‘골프의 정신’을 늘 강조했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라운딩 모습
고 이건희 회장의 라운딩 모습

드라이버샷 200m 넘었던 이건희 회장

오너 일가가 이처럼 골프 마니아이니 그룹사 임원들이 골프에 매진한 것은 당연합니다. 호암이나 이건희 회장은 골프 못치는 임원들에게 “머리가 나쁘거나 열정이 없는거 아니냐”고 슬쩍 한마디 했답니다. 회장이야 지나가는 소리로 말한 거지만 듣는 임원들 입장에서는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임원 승진은 회장에게 달려 있으니 골프로 회장의 눈밖에 난다는 것은 있을수 없죠. 그래서 삼성 임원들은 매일 새벽 5시에 벌떡 일어나 연습장에서 한시간 훈련후 출근했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만사를 제치고 라운딩을 하니 기량이 일취월장할 수밖에 없죠.

임원들이 피나는 연습과 라운드로 골프를 잘 치게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접대 골프를 할 때가 문제였답니다. 김영란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삼성 그룹 임원들은 각계의 인사들과 교류하기 위해 회사의 지원으로 골프를 두루 많이 쳤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내기가 끼게 마련아닙니까. 내기를 한다고 골프 잘치는 삼성 임원들이 내기 돈을 다 가져가면 안되겠죠? 사교를 망치니까요.

그러면 삼성 임원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골프도 마음껏 잘 치고 접대도 잘하는 방법은? 일단 16번홀까지는 동반자들과 실력껏 내기를 붙는 답니다. 내기의 승자는 거의 삼성 임원이죠. 그리고, 17번홀. 삼성 임원은 방향을 약간 틀어 일부러 OB를 내고는 “허, 이것 참. 꼭 막판에 오면 OB를 낸다 말이야...”하면서 너스레를 떤답니다. 1번홀이 시작되기 전, 트리플 보기 이상을 저지르면 그동안 딴 돈을 모두 벌금으로 내놓기로 정했으니 OB를 낸 삼성 임원은 자신의 의도대로 트리플 보기를 저질러 무일푼이 됩니다.

그런데, 왜 18번홀이 아닌 17번홀에서 OB를 낼까요. 18번홀에서 OB를 내면 ‘억지 접대’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17번홀에서 실수를 하는 척 하는거죠. 물론 어떤 이는 한홀 앞당겨 16번홀에서 ‘고의성 짙은 실책’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건희 회장, 동반자 배려와 도전정신 늘 강조

그건 그렇고, 이건희 회장은 늘 골프의 정신 두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남(동반자)을 배려하는 거죠. 자신에게 룰을 엄격히 적용하더라도 상대방에겐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知己秋霜, 남에게는 봄바람같이 부드럽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입니다. 동반자의 로스트 볼을 함께 찾아주는 것도 일종의 배려입니다.

두 번째는 도전 정신입니다. 골프를 한 번 시작한 이상, 열정을 쏟아 ‘싱글 핸디캐퍼’라는 목표를 꼭 이뤄야 한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전 임원들에게 “골프를 못치는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다그쳤습니다.

삼성 패밀리의 골프 사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을 지낸 김기수(1939~1997)씨가 생각납니다. 그는 1996년 9월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좋아하던 골프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는 1997년 6월 2일 지인들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양CC 구코스에서 라운드를 했는데요. 앞 팀에 누가 휠체어를 타고 자치기를 하듯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닙니까? 캐디에게 물어보니 김기수 씨였습니다.

원래 카트는 페어웨이에 들어가지 못하는데다 휠체어는 더더욱 입장 금지인데, 정회원인 김기수씨가 워낙 졸라 골프장측에서 ‘휠체어 라운드’를 허용해줬다고 합니다. 그날로부터 8일 뒤인 6월 10일 그의 부음(訃音)을 접했으니 아마 ‘골프사랑’치고는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사례가 아닐까요.

이처럼 골프는 열정없이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칼럼의 독자들 중에는 나이가 50대 정도이거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고위직(CEO 포함)으로 있는 분도 꽤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접대 술자리가 있더라도 술 한잔을 덜하고 내일 새벽같이 연습장엘 가야겠죠? 골프 못쳐서 ‘머리 나쁘다’는 소리 들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열정 부족’이라는 핀잔을 들으면 승진에 걸림돌이 될지 모르니까요.

조만간 새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겠지만, ‘골프 열정’은 영하의 날씨를 충분히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골프 잘 쳐서 ‘머리좋고 열정도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으면 출세와 사업 운(運)이 훤히 열리지 않을까요?

글쓴이

김수인 골프 칼럼니스트

김수인 칼럼니스트는 매일경제,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에서 23년간 스포츠기자로 활동했다. 홍보회사 KPR 미디어본부장, PRN 부사장과 KT스포츠 커뮤니케이션 실장을 역임했다. 2013년 파이낸셜뉴스에 "김수인의 쏙쏙골프"를 시작으로 주간조선, 한국경제, 스타뉴스, 오피니언 타임스, 미디어빌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골프 자문위원으로 활동중. 저서는 "김수인의 쏙쏙골프"와 "파워 골프" 두 권이 있다. 생애 최저 74타(2013년 솔모로cc), 핸디캡은 11.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