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년: 정치란 무엇인가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정치행위자인 대통령이 왜 이태원 추모식에 참석 못하겠다는 것인가? 정치는 다양성이자, 무수한 상대와의 창조적 대화이고, 대화로 귀결되는 갈등이다.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정치를 옹호한다
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 필자가 권하는 책은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이다. 하나의 학문으로 정치학에 입문하기에 앞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정치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혼란스러운 정치 현상을 과연 ‘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조적인 비판도 함께 전하기 위해서다. 오늘 이 글은 버나드 크릭의 시선을 빌려서, 이 책의 부제처럼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버나드 크릭이 전하고자 했던 정치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크릭이 말하는 정치의 본질은 사실 상당히 단순하다. 첫째는 정치는 정치다. 즉, 정치를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치란 행위다. 무엇보다 정치는 서로 상이한 이해관계들을 ‘조정’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정치를 정치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가? 정치를 본질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마치 협잡꾼의 권모술수로 바라보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것에서 나아가 정치를 혐오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행위자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열린 시민추모대회가 “추모식이 아니라 정치집회”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다. 추모식이 정치집회인가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대통령은 왜 정치집회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여기서 ‘정치’ 집회는 마치 바람직하지 못한 어떤 공간으로 매도되고 있다.
정치는 관용이다
우리는 정치를 서로 상이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생각을 좁혀나가는 타협의 과정으로 바라보는가? 크릭이 말한 대로 정치를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행위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회 내에 나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요구가 나름의 논리를 가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수많은 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공개적인 각축을 벌이고 있고, 그것이 결코 탄압의 대상이나 억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를 조정하는 행위로 바라보게 되면, 크릭이 말하는 대로 때로는 “정치란 지저분하고, 따분하며, 결론이 없고, 엉망으로 뒤엉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고, 다양한 공동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영혼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 즉, 정치야말로 이 정부가 그토록 열광하는 ‘자유’를 제공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정치는 통합을 저해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치를 바라보게 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는 정밀한 개념이다. 모든 유형의 정부가 다 정치적이지는 않다. 자유가 없는 정치체제에서도 정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는 정치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정치란 다양한 집단들이 서로를 만나서 개별적으로나 혹은 집단적으로나 함께 사회 내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에서 시작하게 되므로, 결국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개적인 공적 행위를 수반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개성 때문에, 전제주의적인 통치자에게 정치란 그저 “통합성을 저해하게 할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버나드 크릭의 책은 1960년대 냉전의 시대에 쓰여진 책이다.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를 헐뜯거나,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에 반감을 갖는 다양한 것으로부터 정치를 옹호하고자 한다. 정치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일정한 가치나 혹은 매력적인 해답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는 다양성이다
“정치란 기존 질서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이익을 보존한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적이다. 정치란 특정한 자유와 결합되어 있고 관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적이다. 정치란 여러 집단들이 공동체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공정한 기준을 확보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이다.”
이러한 다양한 언어가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 대화하며 목표를 만들어내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정치는 다양성이자, 무수한 상대와의 창조적 대화이고, 대화로 귀결되는 갈등이다. 의견이 교환되지 않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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