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립형 비례제’가 더 바람직하다
병립형 비례제로 선회한 이재명 대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학자 입장에서 보면 이 대표의 선회는 일리가 있어...다만 명분을 제시해야 내각제 아닌, 대통령제에 맞는 선거제를
선거법 개정 놓고 혼란만
여야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4개월 남겨놓고도 ‘위성정당’의 등장을 초래한 현행 선거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를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12월 12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일이 시작됨에도 선거법 개정이 늦어져 총선에 적용할 기본적인 선거구 획정과 규칙조차 정하지 못했다. 이런 선거법 늑장처리는 후보자와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훼손하고 실무적으로 불편을 주고 있는 만큼,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최근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배분방식과 관련하여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병립형 비례제로 개정한다는 당론을 정했으나,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제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병립형 비례제로 개정할 것인지를 정하지 못하고 당내 논란만 키우고 있어 유감스럽다. 이탄희 의원은 “연동형 비례제 수호와 위성정당 금지를 약속해 왔다. 이제 이재명이 앞장 설 시간”이라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지, 국민의힘과의 야합을 할 것인지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것에 대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엄혹하다”며 병립형 비례제에 힘을 싣는 발언으로 응수했다. 이러자 당내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은 입장문을 통해 “말 바꾸고 약속 뒤집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놓고 거꾸로 갈 작정이냐”며 “역사와 국민 앞에 부끄러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나”라고 이 대표를 비판했다.
반면 친명계는 이 대표의 발언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인 김영진 의원은 “잘못된 것이 있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여야가 합의해서 가자라는 정신을 살리고 논의해야 한다”며 병립형 논의에 힘을 실었다. 진성준 의원도 “민주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들이 다당제가 지고지선이라고 자꾸 주장하면서 ‘민주당의 의석을 헐어가지고 다른 소수 정당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게 하자’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 자기모순 아니냐”며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짚어야 할 몇가지 대목들
이왕 벌어진 선거법 논쟁이니 만큼, 이번 기회에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토론해서 결론을 내보면 좋을 것이다. 첫째,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비례제’로 선회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다. 둘째, 연동형 비례제와 병립형 비례제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셋째, 이 대표가 무원칙하게 기회주의적 태도에 따라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만큼, 이후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이 대표는 친명계냐 비명계냐를 떠나 과거의 기준이 잘못 설정되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새로운 기준에 따른 원칙을 제시하고 이것을 초당파적으로 설득할 필요도 있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그동안 비례대표 배분방식과 관련해서 ‘다당제는 선, 양당제는 악, 연동형은 선, 병립형은 악, 내각제는 선, 대통령제는 악’과 같이, 잘못된 기준설정의 오류를 반성하고 그 대안으로 ‘정부형태와 정당체제간 그리고 정부형태와 선거제도간 제도적 부합성 원칙’에 따라 대통령 정부 형태와 친화적인 정당체제, 아울러 그러한 정당체제에 부합하는 선거제도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잠정적 결론으로 이 대표가 대통령제 정부형태는 집권당과 반대당으로 나누어져 경쟁하는 ‘온건한 양당제’와 친화적인 만큼, 여기에 부합하는 선거제도는 극단적인 다당제를 부르는 ‘연동형 비례제’보다는 ‘소선거구제’나 소선거구제의 다수대표제를 보완하는 ‘병립형 비례제’가 더 적절하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민주당 ‘패배’
이상과 같이, 세 개의 주제에 대해 좀 더 부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대선공약을 번복하며 ‘병립형 비례제’로 선회한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대표가 명분보다 생존을 앞세우는 자신의 스타일상 본능적으로 두 가지를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연동형 비례제를 민주당이 다수결로 밀어붙일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어 결국 종전대로 준연동형비례제 선거법으로 총선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명분상 만들 수 없어, 의석수 효과 시뮬레이션 상 여당에게 20석 정도로 뒤지는 총선패배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이재명 대표 자신이 총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검토했을 것이다.
더욱이 음모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재명 대표는 비명계와 다른 의원들이 연동형 비례제 도입으로 총선패배를 유도하여 당 지도부 책임론을 물을 경우, 자신의 미래가 어둡다고 보고 이런 음모에 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세웠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33%, 민주당이 34%가 나온 지난 11월 30일 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를 대입하여 ‘의석수 효과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민주당의 총선패배를 어느 정도 추산할 수 있다. 병립형 비례제로 회귀할 경우, 비례대표 47석을 정당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면 국민의힘 15석, 민주당 16석으로 비슷하게 추산된다. 하지만 비례의석 47석 중 30석에 캡을 씌우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로 할 경우,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21석 가량 얻는다. 반면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시, 6석 정도를 획득하고 나머지 20석은 다른 소수정당에게 넘어가게 되어 총선패배를 피할 수 없다.
과연, 이 대표는 자신이 총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사퇴하게 되는 상황이 예측되는 속에서도 준연동형비례제를 선택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어렵다고 보인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이 대표가 병립형 비례제로 선회하도록 강제하는 엄혹한 현실의 문제 즉, ‘총선패배 후 당대표 사퇴의 두려움’을 해소해 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은 비명계를 포함한 국회의원 전원 그리고 당원전체 결의로 총선을 패배해도 당대표를 계속 보장해주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제에 맞는 건 ‘온건한 양당제’
물론 이런 결의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도의상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계파논리를 떠나 기존의 원칙이 잘못 설정되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새로운 기준에 따른 원칙을 제시하는 일이다. 선거법 설계는 당리당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벽한 정답은 없다. 다만 제도의 설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권력구조의 핵심인 ‘정부형태와의 제도적 부합성’을 찾는 일이다.
흔히 정당의 목적을 ‘권력획득’이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획득하고자 하는 한국의 권력구조가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선거제도를 설계하는 게 큰 문제다. 학술적으로 정치학자 메이워링의 명제(다당제는 대통령제의 아킬레스건이다)와 정치학자 뒤베르제의 명제(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양당제를 낳고, 결선투표가 허용되는 다수제와 비례제는 다당제를 낳는 경향이 있다)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분단 속 대통령 직선제’에 부합하는 선거제도가 무엇일까? 군소정당의 난립과 분열을 부르는 ‘연동형 비례제’의 함정을 피한다면 온건한 양당제나 온건한 다당제를 만드는 ‘병립형 비례제’가 적절할 것이다.
아울러 연동형 비례제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동형 비례제가 대통령제의 국정불안정과 관련있는 여소야대의 다당제로 내각제에 부합성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다당제는 분단 상황에 처한 우리 실정, 즉 다양성만큼이나 국정안정이 중요한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부합하지 않아 국정불안정과 정치불안을 초래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실정에는 ‘국정안정성’(governability)이 더 많이 고려 돼야한다는 점에서, 극단적 다당제나 극단적 양당제 보다는 ‘온건한 양당제’나 온건한 양당제를 비례대표로 보완하는 ‘병립형 비례제’가 적실하다. 특히, 준연동형 비례제는 내각제 정부형태와 제도적 부합성이 커서 온건 양당제와 친화적인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즉, 준연동형 비례제는 극단적 목소리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다당제와 제도적 부합성이 크다.
이런 만큼, 정치양극화와 진영논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책임을 지는 제1당과 대통령의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2당의 역할이 큰 온건 양당제와 친화적인 ‘병립형 비례제’가 적절하다.
군소정당의 난립은 문제가 안될까
현행 준연동형 선거법을 개선하지 않고 총선을 치룬 다면 이준석 신당설, 조국 신당설, 송영길 신당설 같이, 비례대표를 사냥하는 떴다방 같은 소수정당들이 난립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렇게 ‘위성정당’이나 ‘참칭정당’의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군소정당들이 난립할 경우,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공선에 도달해야 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안정성과 중심성이 타격을 받아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이 뻔하다.
따라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병립형 비례제도로 개정하는 것을 정치후퇴나 선거법 개악이라는 시각에서 보지 말고 당초부터 잘못 설정된 기준을 바로잡아 되돌리겠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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