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서울역 회군 책임자” 진상규명하자

영화 ‘서울의 봄’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 5.18 광주를 고립시킨 ‘서울역 회군’의 진상 누가 어떤 조직이 결정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총선 공약으로 “청문회 개최” 내걸면 어떨까?

사진=KBS유튜브 갈무리
사진=KBS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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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관객의 시대정신은

다사다난했던 2023년 계묘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는 경기 침체, 전세사기 피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새만금 잼버리 파행,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죽음, 부산엑스포 유치실패 등으로 힘들고 어두운 한 해였다. 여러모로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우선 소모적 정쟁과 민생정치 실종으로 국민께 실망을 안긴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

2024년 4월 10일에는 제22대 총선이 있는 만큼, 정치권은 혁신과 쇄신의 몸부림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힘을 쓰는 게 마땅하다. 정치권은 국민에게 새 국회의 과제로 진영논리와 정치양극화를 타파하고 민생국회와 국민통합국회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올해는 어두운 면도 많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기쁜 일도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점이다. 12·12는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광주시민들은 오랫동안 고통과 슬픔의 세월을 감내해야만 했다.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광주 시민들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이번 기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숫자다. 2012년 대선을 제외하고 1997년 제15대 대선 이후 역대 대통령 당선자들은 1000만이 조금 넘는 유권자 표를 얻어 승리했다. 그 숫자의 힘을 생각할 때, 이른바 ‘1000만 영화’의 의미 역시 가볍지 않다. 영화 자체가 한국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반영하는 정치문화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1000만 영화’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면 현실 재현의 성격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영화의 복선으로 흐르고 있는 ‘민주 대(對) 반민주’ 혹은 ‘진보 대(對) 보수’의 구도는 영화 개봉 당시 논쟁을 부르는 대립축이며, 현실 정치에도 반영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2024년 새해에는 총선이 있는 만큼, ‘1000만 영화’가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를 정치권이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을 보고 분노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있다면, 그가 무엇을 해야 할까? 새 국회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5·15 서울역 회군 책임자 진상규명 청문회 개최>를 공약하면 어떨까?

회군하지 않았다면 ‘서울의 봄’은 실현됐다

보통 ‘5·15 서울역 회군’이란 1980년 5월 15일 서울 지역 30개 대학 15만명 이상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계엄철폐와 신군부 퇴진 등 민주화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서 시위를 이어가다 군부대 투입 및 유혈사태 우려를 들어 스스로 해산한 사건을 말한다.

<20년의 위기>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저를 남긴 영국의 국제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E. H. 카(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역사와 관계되는 정치의 과제는 과거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대면하면서 과거를 극복해 보기 위해 이해당사자들과 치열하게 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이해당사자들이 과거사의 비극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며 화해할 때, 비로소 이 비극이 복수를 위한 ‘응보적 정의’가 아니라 화해를 위한 ‘회복적 정의’로 온전하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5·18 민주화운동을 피의 학살로 만든 전두환 신군부 일당과 싸우지 않고, 싸우겠다고 모인 15만명의 대학생과 시민을 속수무책으로 흩어지게 만든 5·15 서울역 회군을 결정한 운동권 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급하다. 제22대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는 ‘서울역 회군 진상조사위’를 구성하여 ‘청문회 개최’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1980년 5월15일 서울역 광장 시위. 출처= 민주화기념사업회
1980년 5월15일 서울역 광장 시위. 출처= 민주화기념사업회

서울역 회군을 결정했던 당시 지도부와 연관이 있는 운동단체에서 1984년에 발행한 <민주화의 길 10호>은 서울역 회군의 ‘전술적 오류’를 인정했다. 본문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하나의 과오가 있다. 밀어붙여야 할 상황에서 후퇴를 결행했다는 전술상의 과오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책임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소상히 밝히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울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회군을 결정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시 현장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볼 때, 총학생회장단 회의는 개최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당시 전민노련·전민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서울대생 이선근씨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역 앞 집회 현장이 한눈에 보이는 대우빌딩 21층 국제경제연구원에서 ‘운동권 비합지도부’가 비민주적으로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통보하였다는 의견도 있다.

문재인 “사즉생의 각오로 군에 맞서자”

5·15 서울역 회군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김부겸, 신계륜 등 많은 정치인들이 이미 간접적으로 진상규명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바 있다. 2020년 5월 1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집회 때 자신은 군(軍)에 ‘사즉생’ 각오로 맞서자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의 ‘서울역 대회군’ 결정으로 5.18 광주가 외롭게 싸우고 희생자가 발생한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전대통령은 서울역 회군과 관련 “그때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는데, 나뿐 아니라 대체로 복학생 그룹들은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국제사회가 주시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가혹한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2020년 5월 17일 “서울역 회군은 결정됐고, 시위를 풀어야 했다”면서 “광주의 비극은 서울역 회군에서 시작됐다.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나는 그래서 부끄럽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물러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희생이 불가피하더라도 여기서 버티고 싸워야 한다. 아무리 신군부라 해도 쉽게 총부리를 국민에게 들이대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고 회고했다.

2020년 5월 24일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신계륜 전 의원은 “시위가 정점에 달하던 시점에 갑자기 해산결정 소식을 들었다”며 “그 결정은 정말 황당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서울역 회군 철수 결정에 대해서는 당시 서울대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당시 지도부의 한 축인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이었다면서, 신 전 의원은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내에서의 의견도 철수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과거를 치유하려면 과거에 맞서야 한다

2019년 5월 8일에는 ‘서울역 회군’을 둘러싸고 심재철 전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전 이사장이 진실공방을 벌인 적도 있다. 당시 유시민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은 “자신은 시위해산에 반대했고,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시위해산을 결정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심재철 전 의원은 유 전 이사장이 1980년 6월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의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 내용 일부를 공개하면서 반론한 바 있다. 심 전 의원은 “유 이사장은 진술서에서 5월 15일 서울역으로 진출하기 직전 교내시위 때 자신은 ‘중립을 지켰다’고 진술한 바 있다”며 “그랬던 유 이사장이 학생들에게 ‘해산불가’를 선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정치권에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는 광주학살 책임자 진상규명이고, 둘째는 15만명이 모인 서울역 시민과 학생을 퇴각시켜 광주시민군이 고립된 최후를 맞게 한 서울역 회군에 대한 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혁신과 쇄신을 요구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이 앞장서서 ‘서울역 회군 책임자 진상규명 조사위 구성’과 ‘청문회 개최’를 공약하면 어떨까? 그것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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