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발언 정치인, 공천 배제하라

혐오·증오 부추긴 정치인 사라지게 해야 정치양극화, 정치인이 시작..언론이 동조 정치, 극단주의 대신 중도수렴 전략 취해야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유튜브에 빠진 시민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쓰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엲바뉴스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유튜브에 빠진 시민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쓰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엲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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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충격에 빠진 정치

2024년 새해가 밝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충격적인 정치테러사건으로 마음이 무겁다. 여러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권의 극단적인 진영대결과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유튜브 채널이 ‘내 편만 옳다’는 확증편향과 혐오·증오정치를 심화시켜 정치테러를 불러온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피의자 김모(67) 씨는 평소 사람들 앞에서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었지만 ‘정치 유튜브 방송’에 빠져 술을 마시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정치 과몰입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직간접적으로 극단적인 진영정치와 정치양극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치권 스스로 뿌린 혐오와 증오의 선동정치가 씨앗이 되어 정치테러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최악의 혐오발언 국회’라는 오명을 쓴 21대 국회의 책임도 짚어봐야 한다. 21대 국회 들어 모욕·욕설·인신공격·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제출된 국회의원 징계안 건수는 작년 말 기준 27건으로, 17대(16건), 18대(15건), 19대(23건), 20대(21건)에 비해 역대 최다 기록이다. 21대에선 역대 여느 국회보다 많은 막말과 혐오 발언이 오갔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대표적인 헤이트 스피치(혐오 표현)인 증오발언은 극단적인 정치양극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이번 ‘이재명 피습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4월 총선 공천 때 혐오를 부추기는 언행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며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증오를 유발하는 방식의 발언이나 그런 정치는 대한민국 사회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시민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며 공천 과정에서 ‘페널티’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도 “증오 정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극단적 발언을 하는 자는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공천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4선의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 극단적 증오 발언을 한 사람은 선출직으로 기용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맺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천 심사 ‘페널티’를 도입하자

이번 기회에 정치권이 두 가지 대책을 마련하여 국민에게 약속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는 혐오표현과 증오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을 퇴출시키기 위한 ‘공천배제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관건은 증오와 혐오의 언어를 어떤 식으로 객관화·계량화해 공천 심사에서 페널티를 줄 것이냐이다.

아직껏 증오·혐오 발언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제재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표현 수위와 사회적 물의의 범위를 놓고도 경계가 애매하다. 그러나 상식적이고 합리적 수준의 잣대를 마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회 의사록이나 언론에 공개된 막말 등의 횟수나 빈도를 계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는 증오와 혐오 정치가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인 정치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돈벌이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혐오·증오 발언을 악용하는 극단적 유튜브 채널이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제법을 정비해야 한다.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NetzDG)’이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혐오·증오정치의 구조적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양극화에 대한 개념과 원인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처방으로 ‘전략적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중도수렴 전략’을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정치양극화가 왜 생겨났을까

이번 사건을 왜 구조적인 차원의 정치양극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그것은 이재명 대표를 백주대낮에 습격한 사건은 단순히 일부 맹신자들의 일탈행동 차원을 넘어 진영대결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표현되는 정치양극화가 빚어낸 구조적 모순의 결과이고, 이런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전략적 접근’을 선택하지 않으면 정치테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양극화란 단순히 정당간의 이념이 진보와 보수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중도의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진보는 더욱더 극진보쪽으로, 보수는 더욱더 극보수쪽으로 분극화되면서 쏠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진영 내부의 차이와 이견 및 다양성을 억압해 하나의 동질성으로 결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외부의 상대진영을 타도하고 괴멸해야 할 적대세력 및 증오·혐오세력으로 둔갑시키기에 상대진영과의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치양극화는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가 하나로 결집하는 폐쇄적인 위계서열의 조직문화와 감정공동체를 갖기 때문에, 비민주적이고 반정치적인 규범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양극화’는 이념적 양극화(ideological polarization)와 당파적 양극화(partisan polarization) 및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치양극화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범이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극복방안은 결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치양극화에 대한 개념정의, 본질 그리고 원인진단과 처방에 대해 사람들마다 인식차이가 커서 합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그 원인진단에서부터 공감대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보다 정치양극화를 시작한 미국의 경험과 학계의 논의를 참조해 볼 때, 양극화 원인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 가지 시각이 경쟁하고 있다.

정치권이 먼저 양극화를 시작했다

첫째 시각은, 정치양극화 원인은 정치권이 먼저 양극화를 시작하여 차례로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을 진영대결로 끌어들이고 동원하면서 국민들까지 전염시켜 정치양극화를 확산시켰다는 관점이다. 정치엘리트의 양극화가 원인이 되어 국민들의 양극화를 만들었다는 관점이다.

둘째 시각은, 정치양극화 원인은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빠진 국민들의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권에 전달되어서 엘리트 수준에서도 정치양극화가 발생했다는 관점이다. 즉,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양극화가 원인이 되어 정치엘리트의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위 두 가지 시각 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 정치양극화 원인을 설명하는 데 적절할까? 많은 여론조사에서 ‘양당 모두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30%대의 무당파 비율의 존재, 그리고 40%대의 중도성향 비율 존재를 볼 때, 첫째 시각이 더 적절해 보인다.

즉, 정치엘리트가 정치양극화를 부추겨 국민전체로 전염시켰다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왜냐하면 둘째 시각대로 국민들이 먼저 양극화되었다면 많은 무당파와 중도성향 비율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둘째 시각대로라면 정치양극화는 민의의 자연스런 반영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첫째 시각의 원인진단은 지금까지 정치권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반대로 갈등을 더욱 조장하고 증폭시켜 강성지치층을 결집하고 동원하기 위한 ‘전략적 극단주의’를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첫째 시각이 양극화의 본질이라면 정치양극화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정치권, 언론, 미디어매체, 지식인, 시민단체가 강성지지층의 분노에 호소하여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전략적 극단주의’를 멈추고, 국민 다수의 중도층을 대변하기 위해 ‘중도수렴 전략’으로 돌아가서 중심과 균형을 잡는 것이 해법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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