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블랙핑크의 붐바야
[목성인과 칸트와 친절한 AI씨] ②편, 철학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를 알아보면 칸트 철학책과 블랙핑크 가사는 ‘동격’일 수도 개념이 뭐길래, ‘개념 없는 녀석’이 나왔을까 AI는 개념을 어떻게 정보로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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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부터 철학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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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성에 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표현은 생각보다 심했다. 더 어렵고 더 복잡하게 생각을 표현했다. 그들의 표현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그들에게 생각이란 있는 것일까 의심한 적이 있다. 난해와 복잡이 목성에 사는 사람들의 시민증이었다. 그들에게 앎이란 어려운 것이며 복잡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쉽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을 자처했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문법이란 타인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난해와 복잡을 치장하는 일이었다. 목성인들은 백 년을 넘게 공부한 다음 모두 기체가 되었다. 나는 이 이상한 행성을 헤매다 겨우 돌아왔다. 얼마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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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학교에서는 집합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배운다. 집합은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최신 지식 중 하나였다. 실지로 AI 기술에서 활용되는 기초 지식이기도 하고, 가장 철학적인 수학이기도 하다.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집합론을 탐구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간단한 집합 이야기를 해보자.

X1, X2, Xn은 집합 A의 원소이다. Y1, Y2, Ym은 집합 B의 원소이다. 이 세계가 집합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머릿속에 집합이 있다고 말하는 게 이치에 맞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정리한 이후로, 인류는 인간의 지식과 소통이 머릿속 집합을 통해 이루어짐을 어렴풋이 알았다. 원소의 개수가 늘어나는만큼 지식의 양도 늘어난다. 원소를 ‘알맞게’ 집합에 넣으면 ‘타당한’ 지식이 되고, ‘잘못’ 넣으면 오류가 된다.
예를 들어 집합 A는 {트와이스, 블랙핑크, 잇지, 에스파, 르세라핌, 뉴진스…}라고 하자. 집합 B는 {에스파, 르세라핌, 뉴진스, 아이브, 베이비몬스터…}라고 하자. 집합 A는 활동 중인 K-POP 걸그룹 집합이다. 집합 B는 2020년 이후 데뷔한 걸그룹 집합이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라는 집합 C는 블랙핑크 멤버 집합이다. 만약 당신이 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세 개의 집합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K-POP 걸그룹에 대해 ‘아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등장한 원소들을 모른다면, 적어도 이 지식 집합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세상의 이치가 다 이러하다. 집합은 무수히 많고,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공통되기도 한다.
한편 집합 A와 집합 B는 교집합이 있고, 그러므로 이들 지식 모음 사이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집합 C와 집합 B는 교집합이 없고, 이런 관계에서 소통은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이들이 집합 C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화제를 바꾸려는 계기도 없이, 다른 걸그룹 ‘뉴진스’를 말하면서 대화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소통이 아니다. 지식과 소통은 집합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AI가 하는 일도 인간의 머릿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에서 적절한 집합을 만들고, 그 집합에서 최선의 원소 혹은 원소들의 연결을 뽑아내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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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고 한다. 그 까닭은 철학이 개념의 학문이기 때문이며, 개념이란 고도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관념이어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체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개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철학이 말하는 개념(concept)이란 그저 ‘의미를 가진 단어’를 뜻한다. 의미없는 감탄사를 제외하면 단어는 모두 개념이다. 길거리에 떨어진 단어를 주울 수 없고, 감각을 통해 단어를 목격할 수 없다. 단어는 오직 머릿속에 있다. 그러므로 ‘머릿속에 있는 단어’가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에 있는 단어는 어딘가로 숨거나 증발한다. 인류의 역사는 저 운명적인 망각과 싸워 온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은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기록하면서 맞섰다. 가장 많은 단어가 기록된 것을 일컬어 ‘사전’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전에 수록된 단어만큼의 개념이 있다고 간편하게 이해해도 좋다.
추상적인 단어는 개념이다. 구체적인 단어도 당연히 개념이다. ‘자유’니 ‘정의’니 ‘진리’니 하는 보편적인 관념을 표현하는 단어도 개념이지만, 걸그룹의 명칭도 개념이다. 개념이란 이처럼 ‘의미를 가진 단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철학에 관한 지식과 걸그룹에 관한 지식이 ‘개념으로 이루어진 지식’이라는 점에서 동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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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념의 역할에서 철학과 걸그룹은 동격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블랙핑크의 <붐바야>를 동격으로 놓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순수이성비판>에 수록된 어휘량과 <붐바야>의 노래 가사에 수록된 단어의 양에서 양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이든 <붐바야>든 거기에는 개념(단어)이 있고, 그 개념이 <순수이성비판>이든 <붐바야>든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것이 양자의 고유한 지식이 될 뿐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개념은 ‘의미가 있는 단어’를 뜻한다. 의미가 있다면 일단 개념이다.
다만 ‘용어’와 ‘개념’의 차이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용어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모두 개념이다. 국어 사전에 이런 예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칸트 철학의 주요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칸트 철학에 수록된 모든 단어를 쉽게 설명한다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중요한 단어, 주요 개념, 즉 철학 용어를 쉽게 설명한다는 뜻이다. ‘철학 용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공부하면 아는 것이 용어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음악 용어, 마케팅 용어, 소프트웨어 용어, 자동차 기술 용어도 마찬가지이며, 공부하면 아는 것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어렵다. <순수이성비판>이 <붐바야>보다 어려운 까닭은, 붐바야는 4분 안에 다 들을 수 있는데(게다가 흥겹게), 순수이성비판은 40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게다가 지루하게). 제대로 완독하려면 400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단지 그런 정도의 차이다. 수록된 단어와 문장의 난해함과 복잡함은 일단 논외로 하자. 우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고 넘어가자.
철학 용어는 개념과 동의어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철학 용어는 개념의 부분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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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은 무수히 많다. 무수히 많은 단어가 우리들 머릿속에 머물면서 생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본 단어를 모두 다 기억하지는 못하고 상당수가 어딘가로 휘발된다. 인공지능은 무수히 많은 단어를 수집해서 휘발되지 못하도록 꽉 붙들어둘 수 있다. 그것을 일컬어 ‘빅데이터’라 한다. 거기에 알고리즘을 적용함으로써 ‘정보’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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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없는 녀석’이라거나, ‘개념을 모르는 놈’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

위와 같은 집합을 어려움 없이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K-POP 걸그룹에 대해 개념이 있는 것이다. 만약 집합 A에 BTS 혹은 조용필을 넣으면 개념이 없는 것이다. 집합 C에 블랙핑크의 멤버가 아닌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나 윈터를 넣으면 마찬가지로 개념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개념을 공부하거나 경험하면서 머릿속에 보관한다. 인간의 머리는 잘 까먹기 때문에 ‘머릿속에 새겨둔다’고도 말한다. 아기로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육체적 성장뿐 아니라, 이 세계에서 ‘무사히 살아가도록’ 다양한 개념을 머릿속에 넣어둔다. 예를 들어 ‘돈의 사용’이라는 머릿속 집합에는, 예컨대 {노동, 일, 소득, 월급, 돈, 소비, 저축, 빚, 절약, 생존, 빈곤, 질병, 죽음…}처럼, 많은 단어가 들어있다. 대체로 성인이 되면 이런 단어들이 누구에게나 머릿속 집합으로 있다고, ‘상식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300만 원을 버는 사오정이, 통장에는 207만 원밖에 없음에도 특별한 이유와 계획 없이, 200만 원의 현금을 지불하면서 휴대폰을 샀다. 이제 통장에는 7만 원만 있을 뿐이다. 이런 소비를 하는 사오정을 일컬어 돈에 관해 개념이 없는 녀석이라고 비난한다. 사오정의 머릿속 돈의 집합에 ‘절약’, ‘저축’, ‘빈곤’, ‘생존’ 등의 원소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때, 아니면 반대로 당연히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말아야 할 단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을 일컬어 개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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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념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냐 아니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라는 사건에서, 혹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침공했다”라는 사건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질까?
모든 사회적, 정치적 사건에는 개념이 작용한다. 그런데 개념은 단어이고, 원소이며, 어떤 집합에 속한다. 사람들의 머릿속 집합은 저마다 다르고, 집합이 같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집합에 속한 원소가 다르다. 그리고 그 집합에서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나타내려는 단어의 ‘가중치’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사건에서 우리가 감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까닭은, 그 사건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선 집합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원소가, 단어가, 개념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여러 단어가 머릿속에서 나타나더라도, 어떤 단어가 훨씬 우세한 힘을 갖고 일시적으로나마 머릿속에 함께 등장했던 다른 단어들의 의미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머릿속에서는 인류애라는 개념이 이익이라는 개념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반면 다른 이의 머릿속에서는 인류애보다 이익이라는 단어가 더 우세하다. 이런 결과를 낳는 개념의 가중치를 결정하는 일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철학자에게도 중요한 과제였다. 공동체에서 의사소통을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째서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 생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제 ‘개념’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 그것은 의미를 갖는 단어, 다시 말하면 ‘머릿속에 있는 단어’였다. 머릿속에 단어만 들어있다고 그게 바로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단어를 만들어 내거나,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단어를 깨우는 것일까? 왜 어떤 단어가 더 우세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지구에 살던 옛 철학자들은 어렵지 않게 설명해 줬다. 지구인답게 이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 설명을 풀어내 볼까 한다. ③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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