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컴퓨터를 아느냐, 아니면 철학을 아느냐
[목성인과 칸트와 친절한 AI씨] ③편, AI 이용해 어려운 ‘칸트 철학’ 읽을까 칸트가 말한 경험, AI에겐 ‘데이터 획득’ 의미 좋은 경험은 인간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며 AI에 제공된 디지털 데이터는 지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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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습관이며, 습관이 질병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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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성에 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텔레파시로 지식을 전하기 때문에 눈과 귀가 퇴화했다. 감각하지 않고도 지성만으로 대화할 수 있으므로, 나는 목성은 신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성의 신은 목성을 떠난 적이 없다. 목성 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센서를 이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센서를 상상할 수도 고안할 수도 없었고, 그러므로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신이 거주하는 그곳에는 기계가 없다. 나는 이 이상한 행성을 헤매다 겨우 돌아왔다. 얼마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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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간이 처음 컴퓨터 제작에 성공했을 때, 이 기계는 스스로 처리할 데이터를 생산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는 센서라는 도구를 획득했고, 통신망을 통해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능을 얻었다. 프로세서와 알고리즘의 눈부신 성능 향상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제 사람들은 그런 컴퓨터를 일컬어 ‘인공지능’이라 부른다. ‘인공’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설계와 도움이 필요하지만, ‘지능’이라는 관점에서는 인간의 두뇌와 비슷해졌다.
인간 머리의 구조와 기능을 모범 삼아 인공지능을 설계한 것처럼, 역접근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모범 삼아 인간의 머리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철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다. 항상 성공하지는 않겠지만, 철학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마다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나침반을 우리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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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가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고 표현할 때, 그때의 생각 과정을 일컬어 엔지니어들은 ‘데이터 처리’라고 말한다. 데이터 처리를 하려면 그런 일을 할 ‘알고리즘’이 미리 존재해야 하며, 그런 알고리즘을 실행할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인간의 머리에 비유하자면, ‘개념’이 필요하고 ‘뇌세포’가 있어야 한다.
AI가 무엇인가를 보거나 들은 다음에 그것에 알고리즘을 적용하려면, 데이터(data)가 주어져야 한다. 데이터가 있어야 알고리즘이 일을 한다. 데이터가 없다면 컴퓨터는 깡통에 불과하다. 인간의 머리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주어져야 그 데이터에 알맞게 개념을 적용할 수 있고, 그래야 생각이 탄생한다.
기계의 센서는 데이터를 감지한다. 통신을 통해 데이터를 입수할 수도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감각기관이 데이터를 머릿속으로 가져온다. 센서에 의해 감지된 아날로그 데이터는 0과 1의 바이너리 코드로 표현되는 ‘비트’로 디지털 변환되고, 변환된 데이터에 시간이 부여되어 ‘비트스트림’이 생성된다. 한편 철학자 칸트는 감각기관에 의해 감지된 데이터가 머릿속 ‘공간’과 ‘시간’이란 형식으로 변환됨을 강조했다. 공간과 시간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섬세하게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머리가 이처럼 일대일로 대응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머릿속을 탐구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원리를 떠올려보기를 추천한다. 『순수이성비판』이 인류사에서 아무리 유명한 철학책으로 칭송되고 있더라도, 그 책의 우리말 번역은 온갖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고, 학교에 가르치지도 않기 때문에, 도움 없이 읽으면 거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관한 기초 지식은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학교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다. AI가 『순수이성비판』의 워크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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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이 데이터(data)를 한자어로 번역하기를 ‘소여所與’라 했다. 세월이 흘러 ‘자료資料’로 바뀌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sensing data’를 일컬어 ‘감각 소여’ 혹은 ‘감각 자료’라 불렀다. 요즘에는 ‘data’를 그냥 ‘데이터’로 번역해도 좋다. 영어 단어를 음역해도 백 년 전의 조선인과 달리 못 알아듣는 한국인이 없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고유어처럼 우리말이다.
어떤 대상이 내 앞에 있다. 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을 일컬어 칸트는 ‘경험’이라 칭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경험이란 실지로 보고 듣거나 겪는 행동을 뜻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엄격한 의미로, 어떤 대상에 대한 데이터를 머릿속으로 가져오는 일련의 정신 활동이 바로 경험이다. 경험은 이처럼 인간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대상과의 ‘관계 맺기’를 의미할 뿐이지, ‘대상의 내용’이 아니다. 거기까지는 절차가 있고 좀 시간이 걸린다(실제로는 순식간이지만). AI가 만들어 내는 모든 지식은 우선 데이터가 AI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AI에게 경험이란 데이터 획득을 뜻한다. 그러므로 AI는 방대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만들어 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지식도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경험은 모든 지식의 시금석이다. 왜냐하면 경험을 통해서만 머릿속에서 데이터가 생겨나기 때문이며, 진짜인지 거짓인지 경험으로만 검증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경험할 수 없는 것, 경험 불가능한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참인지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경험으로는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는 너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까닭은 현대 인류에게 컴퓨터라는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샘플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류에게는 그런 증거가 없었다. 플라톤은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았다. 데이터는 사람마다 다르고, 데이터에 의존한다면 지식도 사람마다 달라지게 된다. 이런 정도는 고대인도 알았다. 그런데 옛 스승들은 사람마다 달라지는 지식이 어찌 참된 지식이냐고 되물었다. 만인에게 적용되는 참된 지식은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감각 너머의 세계에서 참된 지식을 찾고자 했다. 그것을 일컬어 ‘이데아’라 한다. 감각을 통해 데이터를 머릿속으로 가져와야만 지식을 얻게 되는 우리 인간은 이렇게 고대 스승에게 질문할 수 있다.

“참된 지식으로서 이데아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플라톤은 깊은 사색을 선물하는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이 2천 년 동안 서양철학을 지배했다. 현대인은 그런 플라톤의 가르침을 종교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철학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과학적인 얘기로 여기지는 않는다.
20.
300여년 전 인류의 정신을 획기적으로 바꾼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을 일컬어 경험주의 철학자라 칭한다. 데이터가 없으면 컴퓨터는 빈깡통에 불과한 것처럼,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경험 데이터가 없으면 인간의 머리는 텅 빈 노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과학혁명을 이끌어낸 탁월한 관찰자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들은, 경험을 통해 각종 데이터가 인간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그 데이터가 사물과 세상에 대한 인상을 만들며, 그 인상을 통해 지식이 생겨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관찰된 것’이 머릿속으로 ‘있는 그대로’ 들어갈 수는 없고 사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만인에게 똑같은 지식은 불가능하다. 보편적 진리는 없다. 데이터가 없다면 알고리즘이 할 일이 없고, 학습 모델 알고리즘은 언제나 데이터가 필요한 것처럼, 경험이 우리에게 데이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의 머리(그 안에 개념이 있든 이성이 있든)가 독자적으로 할 일이 없다.

이런 경험주의 입장을 택하면 절대적 진리는 헤쳐 나올 수 없는 미궁에 빠진다. 설령 미궁을 답파한다 해도 저마다 다른 출구로 나온다. 경험을 만들어 내는 감각 데이터가 사람마다 달라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에 대해 회의주의자였다.
21.
양질의 좋은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우수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좋은 경험은 인간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다. 좋은 경험이 있음은 나쁜 경험도 존재함을 뜻한다. 나쁜 경험이 만들어 낸 오류와 착각이 나쁜 사회를 만든다. 나쁜 경험을 피하고 좋은 경험을 장려하자. 그러므로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나의 좋은 경험’만이 아닌 ‘타인의 좋은 경험’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앞장 서서 교육환경의 개선, 복리의 진전, 공평의 확산 등을 포함한 사회 진보에 관심을 퍼뜨리니, 경험주의 등장은 인류에게 큰 복이었다. 인류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2.
데이터가 지식을 만든다. 그러나 100% 확실한 지식은 아니다. AI에게 제공되는 데이터는 있는 그대로의 아날로그가 아니라 ‘변환된 디지털 데이터’이기 때문에 손실이 생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각기관을 통해 무엇인가가 머릿속으로 들어올 때, 있는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변환물로 들어온다. 칸트는 그것을 일컬어 머릿속 형식인 시간과 공간으로 변환(modification)돼서 들어온다고 말했다. 철학자들은 그것을 한자어 ‘변양變樣’으로 번역했다. 인간의 머릿속 변환물인 그 ‘변양’이라 불리는 것, 그것을 일컬어 ‘표상representation’이라 한다. 이제 표상의 세계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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