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공과 사의 구별도 못하는 걸까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서구의 공사, 국가와 사적 영역의 구별을 유교권은 사적 개인이 공적 이익 추구를 개인이 사적 욕심을 없애는 것이 정신수양 도덕적 가치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공사는?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KBS와의 대담에서 부인 김건희씨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박절하게 대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해, 공사 구별을 못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KBS와의 대담에서 부인 김건희씨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박절하게 대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해, 공사 구별을 못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사진=연합뉴스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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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公)과 사(私)의 구별이 한국 사회에서 화두다. 어디까지의 행위를 과연 공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가, 혹은 공적인 공간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사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일반 회사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학의 주요 주제인 공(public, 公)과 사(private, 私)의 구별과 관련이 있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서로 다른 문화권임에도 유사한 개념어를 오랫동안 활용해 온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공과 사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는 근대 국가의 발전과 관련해 공적인 것(the public)의 탄생을 중요한 사고의 전환으로 여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기원전의 경전에서부터 공(公) 사(私)의 구별을 시도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글자는 유사하지만, 이 개념이 발전되어온 역사적 맥락이 서구와 유교문화권이 상이하고 실제 두 개념이 의미하는 바가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역의 구별’을 토대로 한 서구의 공과 사

서구에서 공과 사의 구별은 영역의 구별에서 시작됐다. 영역 구별의 기준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서구의 역사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지점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구의 정치사상에서 공적인 영역은 사적인 영역과 대별된다.

사회계약론을 통해 국가를 개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장치로 사고하려는 근대자유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적인 영역 (대표적으로 시장)과 달리, 공적 영역은 ‘사회의 보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국가가 공적인 권위를 독점하게 된 것 역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탈인격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이성’이라고 하는 목적을 갖는 존재가 된 것에서 근거한다.

국가는 개인들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인위적인 제도다. 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해서 나름의 규율을 갖고 작동하는 사회 즉, 사적인 영역과 구별된다. 공적인 영역으로서의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체인 전체 사회를 지배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사회로부터 독립되며, 사회의 질서를 창출해내는, 배타적인 공간이 된다.

영부인 김건희 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에게 300만 원 상당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레이디 디올 WOC 파우치를 받는 장면.
영부인 김건희 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에게 300만 원 상당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레이디 디올 WOC 파우치를 받는 장면.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한국의 공과 사

반면, 유교의 문화권에서 공과 사는 영역의 구별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의 구별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교 역시 단일한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고, 중국의 주나라 시기부터 송나라,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기적,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는 개념이며, 특정 시기나 지역의 공과 사 개념구별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조선이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되는 주희의 성리학에서 이러한 도덕적, 이념적 차원의 공과 사 구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주희는 흥미롭게도 공적인 것을 이기적인 욕심이 없는 마음의 상태나 내면의 동기에서 찾는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별개로 구별된다기보다는 개인이 어느 영역에 위치하건 상관없이, 개인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지 혹은 개별적인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지의 딜레마와 관련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에게는 사적인 욕심을 없애는 수양이 필요하다. 이 수양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집안이나 지역사회를 다스리는 일이나 국가 전체 나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곧 동일한 원칙에 의거하는 행위가 된다. 더구나 집안이나 지역사회에서 개인이 도덕적 수양을 행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전체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는 정치 활동, 즉 공적인 행위가 된다. 개개인의 도덕적 노력이 곧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들을 변화시키고 점차 사회 전체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영역의 구별을 바탕으로 발전되어온 서구의 관념 속에서 중요한 것은 ‘사적인 영역의 보호’다. 국가가 공적인 가치를 독점하게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사적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차악(次惡)으로서 국가라는 제도를 만들어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도가 사적영역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도록 하는 고민을 계속해 왔다.

반면, 도덕적 가치의 차원에서 공과 사의 개념을 발전시켜온 유교문화권에서 중요한 것은 사적인 영역의 보호가 아니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일 것만 같은 집안에서조차 개인이 공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공적인 것으로부터 사적인 것을 보호해 낼 것인가 하는 고민은 부재했다.

“공과 사도 구별을 제대로 못하다니”, “선공후사의 마음으로..”, 심지어는 “멸사봉공”이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쉽게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고, 사적인 것을 죄악시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울러 실제로 행하는 공적인 업무와는 다소 무관해 보이더라도, 정치인이나 관료에게는 더 엄밀하게 도덕적 기준을 지킬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심지어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조차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에서 발전되어 온 전통적인 공과 사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최근 세대 간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면서 서로 다른 공과 사의 관념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공사구별의 혼란은 영역의 구별과 가치의 구별 속에서 각각 상이하게 발전되어온 공과 사의 개념이 정돈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특정한 사례를 보고 서로 다른 기준으로 비판을 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할 수준에 이를만한, 공적인 것 그리고 사적인 것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

이하경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하경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선시대 반역자 심문 기록을 분석하여 전근대 국가의 특성을 조망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사상 및 법제사 관련 교과목을 가르치고, 노무현재단 ‘민주주의 리더십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및 전근대 국가론이 주된 관심 영역이며, 주요 연구로는 『역사화해 이정표』 (공저), 『조선후기 사법기구』 (공저), “조선후기 추국장의 정치적 의미”, “조선후기 범상부도죄의 정치적, 법제사적 의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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