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사태: 확장된 그레샴의 법칙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나쁜 의사 있고, 빠른 진료도 필요하지만 의료개혁이 ‘악화’를 유통시키려 해서야 수도권 6천병상 증설에 값싼 전공의? 2차병원 진료 안 찾는데 의사 없다고? 포퓰리즘 정책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의사 2천명 증원에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의사 2천명 증원에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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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샴의 법칙

‘그레샴의 법칙’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유명한 법칙이다. 실제 가치가 높은 화폐와 낮은 화폐가 같은 명목상의 가치로 교환된다면, 실제 가치 높은 화폐는 개인들이 빼돌려서 유통되지 않고 가치 낮은 화폐만 시장에서 통용된다는 이야기다. 실질적으로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적절하게 구분되지 못하면 시스템이 불안정해진다는 주장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도 있는 또다른 상황이 있다. 선량한 사람과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같은 명목상의 규정에 의해 규제되는 경우다. 이 경우 자신만 챙기는 사람들은 규제의 타격을 덜 받고, 이타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은 피해를 많이 보게 된다. 이익을 좆는 사람은 규제의 법망을 피해갈 방법을 열심히 찾아 놓는 반면 양심껏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규제가 목표로 삼았던 악화다. “명목상 정의”의 허점이 여기 있다. 더구나 그 정의가 실제로는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조작”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 의료의 기본 문제: 의료전달체계

다른 전문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의 의료는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의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개혁은 의료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 문제들에 접근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특정 의료인 집단을 “악”이라 낙인찍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의료전달체계다. 돈과 직접 관련된 수가 문제는 필자가 잘 모르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1990년대까지 우리 의료에는 권역별 의료전달체계가 있었다. 3차 병원에서 건강보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2차 병원 진료를 거쳐야 했고, 3차 병원에 가더라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있는 병원에 가야 했다(물론 예외는 있었다). 그런데 그 제도는 1998년 폐지되었고 지금은 1차 병원에서 발급하는 의뢰서 한 장만 있으면 누구나 서울의 빅5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KTX가 등장해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짧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당시는 IMF외환위기 사태 속에 누구나 헤매던 시기였고, 의료전달체계의 근본을 파괴한 이 제도는 시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우아한 명분아래 실시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재벌그룹들이 만든 대규모 병원들이 초기 설정을 마치고 도약을 이루려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제도 시행 이후, 재벌 병원의 강력한 환자 흡인력에 의해 2차 병원도, 지역 3차병원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빅5 병원이 탄생하던 순간이다. 지역의 서민들을 치료하던 지역 공공의료기관, 즉 의료원들도 환자가 줄면서 적자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그러자 보수 지방정부들은 예산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의료원들을 폐지시켜 나갔다. 의료원에 다니던 환자들도 결국 더 비싼 의료비를 내면서 빅5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곳들에 있다.

더구나 국가 건강보험의 취약한 재정을 절약하면서 민간 병원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손 의료보험도 거침없이 성장해 나갔는데, 국가 보험이 확실히 적용되는 최소한도의 “필수”의료 분야는 이들에게는 중요성이 떨어지는 시장이었다. 그리고 이 보험시장의 강자 역시 재벌 계열사들이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마저 사직대열에 합류하면서 대학병원의 진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사직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마저 사직대열에 합류하면서 대학병원의 진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마녀를 잡는 망치(Malleus Maleficarum)

이런 문제들이 배경에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개혁을 한다면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칼끝은 어쩐 일인지 어려운 환자들을 열심히 보던 3차 의료기관의 의사들, 그 중에서도 저임금과 초과노동을 군말 않고 받아들이면서 일하던 전공의들을 향했다. 그들의 스승인 교수들도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같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전공의와 교수들은 마녀 사냥 당하게 되었다. 정부와 언론들은 의료 개혁이 “마녀를 잡는 망치(Malleus Maleficarum)”라고 짖어댔다.

지금 쾌재를 부르고 있는 집단, 즉 왜곡된 의료개혁으로 이익을 볼 측은, “등록금 납부자 머릿수를 늘리게 된 대학”과 “싼 값에 전공의를 더 많이 부릴 수 있게 된 대학병원 경영진”과 “주민들의 건강 보장을 위한 재원을 아끼게 된 지자체”들이다. 무한 성장하는 실손보험사도, 대박을 노리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도 여기 편승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절대 추궁당하지 않는다. 망치는 진짜 마녀를 피해서 내리쳐진다.

의대생 2천명과 수도권 6천병상의 관계

역대 정권들은 의료의 근본문제에 무관심했다. 이 정부도 개혁을 부르짖기 직전까지는 마찬가지로 무관심했다. 그래서 수도권 의료 집중을 막아야 할 정부는 ‘황소개구리들’이 수도권에 병원을 더 짓겠다고 하는 것을 막지 않고 계속 허용해 주었다. 그 결과로 향후 6천여 병상이 수도권에 더 증설된다. 우리나라는 “OECD와 비교할 때” 의사 수는 적지만 지금도 병상수는 더 많다. 6천 병상 증설은 병상 과잉을 심화시키고 지방 병원의 고사를 가속화할 것이 뻔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명목상 첨단 의과학을 외치는 이 병원들이 실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싼 의료인력이 새로 대량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위한 정부의 묘책이 의료개혁을 내걸고 의대생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정원이 늘어나고 이들 잉여 인력이 졸업할 때쯤 6천병상 병원이 본격적으로 문을 연다. 수도권 새 병원은 수익을 보장받고 지방 병원의 말라죽는 속도는 더 빨라질 터인데, 이렇게 만드는 제도가 의료개혁이라는 명목을 달고 나온 것이다.

새로 증원한 인력이 지역에서 활동하게 할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증원 규모가 2천명이어야 한다고 못박은 것, 보건복지부가 “수도권 6천병상은 의대 증원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 등을 보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가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증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거짓말이다.

그들이 일할 병원은 지금 수도권에 짓고 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아래 실제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책을 정부는 개혁이라 포장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는 전공의 학생들과 평교수들에게 ‘악마’라는 누명을 씌어서 자신의 악행을 덮으려 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누가 악화이고 누가 양화인지를 구분할 줄 모른다. 정부는 이를 이용해서 악화를 유통시키려 한다.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책임

시민들에게도 ‘도덕적 해이’라는 책임이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가 부담이 되지 않은데다 병원의 문턱도 낮으므로 시민들은 병원을 불필요하게 많이 이용한다. 이것 역시 “OECD 통계”가 있다.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결과이자 체계 복원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빅5 “명의” 진료를 받으려고 몇 년씩 대기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지역 병원에 간다면 기다림 없이 진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유명 교수 진료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내가 빨리 진료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손 보험 가입자들은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과잉진료를 받으려 한다.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제도로 이것을 막아야 하는데, 정부는 그럴 의지가 없다. 경증 환자가 3차 병원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지금도 있기는 하다. 진료하는 환자 중 경증 환자의 비율이 높으면 3차 병원에 페널티를 주는 것이다. 민간 병원들을 찾아오는 환자에게 담당의사가 “당신은 우리 병원에서 더 이상 진료받을 수 없읍니다”라 하면서 진료를 거부하라는 이야기다. 의료전달체계상 교통정리는 국가가 할 일이지 민간 의사들에게 떠맡길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진료를 거부당한 시민들은 병원 민원실에 항의를 할 뿐, 정부에 항의하지 않는다. 경증 환자의 3차 병원 남용을 조장하는 정부가 그 책임은 병원, 아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왜 정부가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할까? 시민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정부가 나서서 제한하면 “표”가 깎이기 때문이다. 표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양해에 기반한 진짜 의료 개혁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에게 마녀잡는 망치를 휘두르는 포퓰리즘 시전이다. 무한정 양질의 의료를 싼값에 공급하겠다는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의사 증원이 없으면 건보료가 여러 배 올라갈 것이라는 복지부 차관(무려 경제학 전공자인데)의 허탈한 발언이 지능이 모자라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악화를 유통시키기 위해서 양화를 거두어 폐기하려는 것이다.

의사들의 책임

개인 의사들은 책임이 없느냐? 물론 책임이 크다. 실손 보험 브로커와 결탁해서 환자들을 모아 과잉 진료하는 명백하게 나쁜 의사들도 있다. 이들은 필수의료 위기와 밀접하게 관계된다(물론 건강보험의 규제 안에서 평범한 의사들도 소소하게 과잉 진료를 한다. 관습일 수도 있고, “방어진료” 차원일 수도 있다. 교과서적 진료는 현실에 항상 적용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한 확장을 꿈꾸는 황소개구리의 경영진들도 개인적으로는 의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기관을 위해 헌신하는 양화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수도권 분원 계획 등으로 지역 의료 붕괴를 조장하고 있다.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을 자랑 삼아, 몇 년분의 대기환자를 보유한다는 유명 의사들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의료기술이 평준화된 세상에서 자신의 과장된 신화를 그려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만든 허상 때문에 환자들은 가까이 있는 2차병원이나 의료원에 가려 하지 않는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오만, 욕심, 게으름, 불성실함, 거짓됨 등 인격적 결함 때문에 환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의사들도 많이 있다. 이런 악화들이 열심히 일하는 양화들과 섞여서 의사 집단을 이룬다. 시민들은 이를 구분할 수 없어서 정부가 선동하면 ‘의사들은 다 악’이라고 생각한다. 포퓰리스트는 대중의 혐오감을 먹이로 삼아 성장하는 정치세력이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정부가 각성해서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을 하려 해도 결과적으로는 악화와 양화를 구분 못하거나 양화가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정책 결정에 필요한 변수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애매한 부분이 생기는데, 이 부분은 양화가 아닌 힘을 가진 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뜻을 가진 정책이더라도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하물며 개혁이 양화를 발굴해서 시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명목에 불과하다면, 마녀잡는 망치를 휘둘러서 양화를 퇴출시키는 것이 가장 화끈하고 포퓰리스트다운 방법일 것이다. 그 뒤에 다가올 악화만이 유통되는 세상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표를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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