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연구: 대통령이 된 검사의 경우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세계는 분석하면 강력한 ‘쓴소리 트라우마’에 잡혀있는듯 범죄자에 공감않듯, 국민에 공감 않는 자세 “내 원칙은 절대 양보불가”..현 의료사태도
2천명의 법칙
의료개혁 갈등의 핵심에 있지만 문제의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되고 있지 않는 것이 “2천명 빼박” 가설이다. 대통령의 선언으로 어느날 제시된 2천이라는 숫자는 몇 번 다시 강조되면서 ‘가설’에서 ‘법칙’이 되었다. “의대 학생이 내년부터 연간 2천명씩 늘어나지 않으면 우리나라 의료는 붕괴한다”는 법칙 말이다. 이후 전공의와 학생들의 사직 및 휴학이 시작되었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국민 건강을 돌보던 우리 의료는 졸지에 붕괴 직전에 몰렸다.
어려운 징조
필자는 이 사태 초기부터 해결이 쉽지 않으리라 걱정을 하였는데, 대통령이 직접 2천이라 했다는 사실이 불길한 징조로 보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성품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뜻을 굽힌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취임 초기 자신있게 시작한 “도어스테핑”에서 어려움을 겪은 뒤, 자신과 소통하려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그가 겪었던 어려움은 한 기자가 그에게 항의한 사건인데, 자신의 말에 누군가가 “버릇없이” 항의하였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트라우마였던 모양이다.
비슷한 트라우마는 몇 번 재연되었는데, 그때마다 그에게 항의하던 사람들이 “입틀막”으로 끌려 나가면서 사태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임명된 사람들은 이 황당한 사태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고 합리화하고, 대통령에게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은 범죄라 주장하였다. 대통령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역(逆)공포 행동
윤 대통령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생방송 회견을 하지 않는다. 그가 국민과 소통하는 수준은 특정 방송국의 앵커와 둘이 녹화한 동영상으로 신년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인데, 이를 보면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질문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마음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공포에 가까운 것 같다.
공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전략 중 하나가 역동심리학(정신분석 등 무의식을 깊이 다루는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역공포 행동’(counter-phobic behavior)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선제 공격하는 전략이다.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위험한 의견을 제시하기 전에 자기 주장을 절대적인 것처럼 공표함으로써, 그것을 “감히 공격받을 수 없는 지고하고 강력한 것”으로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역공포 행동의 실제 의미는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한다. “나는 두렵지 않거든, 그래서 이렇게 용감하게 행동하잖아”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일종의 자기기만인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역공포 행동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권력은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사용된다. 상상이 되는가?
이해하기 위한 단서
그런데 왜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대통령에게 두려운 일이 되었을까? 역동심리학적으로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추적해야겠지만, 그의 직업력만 살펴보아도 이해를 위한 단서를 구할 수 있다. 단서는 그가 전형적인 검사로서의 삶을 수십년간 살아왔다는 점이다.
검사는 기소를 통해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나 검사를 무서워한다. 갓 임관한 젊은 검사가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계급인 우리 사회에서, 검사는 자기 나이보다 높은 계급을 부여받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상하관계에서 높은 사람의 권위는,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는 힘에서 나온다. 높은 사람인 검사의 의견은 항상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검찰은 상명하복의 원리를 복무지침으로 가지고 있는 조직이므로, 검찰의 총수에게는 자신의 의견이 당연히 집행되어야만 하는 원리 내지 법칙이었을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반기를 들면서 자신은 개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검찰적 시각에서 보면 법대 교수나 판사 출신 법무장관은 검사 서열 시스템에 등재되지 않은 사람이므로, 검찰총장이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검찰 서열에서는 자신이 최고였으니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행동의 근거는 오직 법이라고 미화했는데, 검사직 활동의 배경은 당연히 법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가 내놓는 메시지는 “법대로 하자”다. 전공의들을 법대로(법이 적용되는 상황인지 의심스럽지만) 처벌하되 최고형이 아닌 처분을 내리면 유연한 법집행이라 생각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명목상 법대로 하는 것은 검사의 태도지 대통령의 태도는 아니다. 대통령의 이런 경직된 태도 아래 정부 관료들이 의료계를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검찰적 대통령실, 정부, 대통령 소속 정당
대통령실의 참모들은 아직도 수직적 검사 시스템 하에서 움직인다. 대통령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 때, 어떤 참모가 “그게 아닌데요”라 이야기했다는 소리는 언론에 나온 바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대통령 뜻을 외부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밖에는 없다. 수직적 구조는 정부 관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여서, 복지부 장차관은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하건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말도 안되는 근거를 제시하느라 열일하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의 호프 한동훈 선대위원장은 “이러면 안됩니다” 큰소리 치다가도 윤 대통령을 만나고 나면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대통령과 자기가 뜻이 같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하기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미 검찰에서 상하 관계로 근무했으니 검찰적 상하 관계는 당연히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수직적 구조를 보면, 지난 대선때 화제가 되었던 손바닥의 “王” 자가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대통령의 무오류성 신화까지 첨가되면, 왕(王)을 넘어 신(神)에 접근하는 수준까지 이르는 것 같다.
검사는 자신의 뜻을 접을 수 없다
무소불위의 검사 권력이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패소하는 경우다. 그래서 검사는 패소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때로는 탈법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마 검사에게는 패소가 가장 치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좌천과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고 하지만, 정치적 의미가 큰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기소한 검사다. 전임 대통령에게서 검찰총장까지 낙점받았다. 그는 실패의 트라우마를 겪어보지 못한 채 승승장구한 검사였다.
검사가 해서는 안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공감이다.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라면 범죄자에 동조(공감)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검사 심리 때문에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도 범죄 피의자라며 만나지 않았고(실제로는 ‘쓴소리 트라우마’ 때문이겠지만), 유연한 협상을 해야 한다면서 의료계에 내놓는 메시지는 “양보는 없다”다. 검사로서 두려워야 할 것은 패소뿐만 아니라 용의자와 타협한다는 혐의를 받는 것이므로, 대화와 타협은 검사의 사전에 없다. 검사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거부되는 경우인 패소나 상황에 순응해서 의견을 변화시키는 타협, 둘 다 검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기자가 대통령의 면전에서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트라우마는, 영감님의 의견이 법원에서 존중되지 않아 패소했을 때의 트라우마와 같은 종류로 볼 수 있다. 검사 윤석열은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비슷하게, 양보하고 완화하고 타협하라는 요구는 강직한 검사 윤석열이 피의자와 타협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어느 경우건 적극적으로 방어해서 자신의 의견을 원안대로 관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은 검사가 아닌데…
그런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검사 윤석열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전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자들과 질의 응답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통(統) 자는 모은다는 뜻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주장과 선언이 아닌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설득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는 검사 시절 자신의 기소를 관철시키기 위해 판사들을 열심히 설득하였을 터인데, 그렇게 설득하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국민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직 검사 세계에서 범죄자를 다루던 방식을 바꾸지 못하고 국민을 그렇게 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검사는 범죄자를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다.
윤 대통령 본인은 스스로의 독선적 특성을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검찰은 방어벽이 쳐진 특수 폐쇄 공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가 ‘독선’이 아닌 ‘공정’이라 믿고 살아왔을 것이다. 상대방과 나의 주장이 같은 무게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의견도 기각될 수 있다는 민주사회의 기본적 상식은 검사에게 매우 낯설었을 것이다. 검찰을 나와서야 비로소 접하게 된 상식의 세상은, 지금은 대통령이 된 검사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트라우마의 결정적 계기는 전술한 도어스테핑이었다. 도어스테핑이 일어나는 노출된 공간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공격을 맨몸으로 방어하는 힘이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어야 하는데, 베테랑 검사이자 초보 대통령인 윤석열은 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공격당해 무너질 위험을 간신히 넘긴 트라우마 이후, 그는 일방적 메시지만 내미는 쪽으로 소통 전략을 바꾸었고 “내 주장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법칙이다”가 선언되었다. 그리고 불통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