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한중일 다른 식물, 그리고 우리의 민속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우리나라는 녹나무과의 후박나무 중국은 목련과의 후박, 중국목련 일본도 목련과의 일본목련 서로 다른 식물을 ‘후박’이라 불러 중국 기원식물 따라 우리이름 고칠까
후박나무는?
후박나무(Machilus thunbergii Siebold & Zucc.)는 녹나무과(科) 후박나무속(屬)의 상록 활엽 교목이다. 중국, 대만, 일본과 한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 울릉도 및 남부 해안가에서 자란다. 높이 20m 그리고 지름 1m에 달한다. 잎은 상록성으로 어긋나기 하며 긴 타원형이다. 암수한꽃으로 5월에 원뿔 모양 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장과로 7~8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으로, 갈라지지 않고 맨듯하게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후박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와 혼란
후박나무라는 이름은 한자어 ‘厚朴’(후박)에서 유래한다. 후박은 오래전 중국에서부터 나무껍질을 위장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하였다. 중국 명나라 때인 1596년에 간행된 『본초강목』은 “其木質朴而皮厚 味辛烈而色紫赤 故有厚朴·烈·赤諸名”(나무가 질박하면서 껍질이 두껍고, 맛이 맵고 강렬하면서 자적색이므로 후박·열박·적박 등의 여러 이름이 있다)라 하였고, 후한 시기에 편찬된 『설문해자』는 ‘朴’(박)에 대해 “木皮也”(나무껍질이다)라고 한 것에 비추어 厚朴(후박)은 약재로 사용하는 껍질이 매끄럽고 두터운 것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식물목록’은 녹나무과의 Machilus thunbergii라는 종의 명칭을 ‘후박나무’라 하고, ‘중국식물지’는 목련과의 Magnolia officinalis(=Houpoea officinalis, 중국목련)를 ‘厚朴’(hòu pǔ)라 하며, 일본에서는 흔히들 목련과의 Magnolia obovata(일본목련)를 ホオノキ(호오노키)라고 하면서 그 한자명을 ‘厚朴’(후박)이라 한다. 즉, 후박이라는 명칭은 한자를 공유해 온 동북아 3국에서도 서로 다른 식물을 일컫는 것으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일본에서 厚朴(후박)으로 보는 Magnolia obovata(일본목련)를 후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일부 조경업자들이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지금도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알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보기도 한다(이에 대해서는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2)』, 김영사, 161쪽 참조). 과연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중국의 후박과 『동의보감』
후박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약재로 사용하였다. 진한(秦漢)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신농본초경』에서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중국 정부가 편찬한 「중화인민공화국약전」은 후박에 대한 기원식물을 목련과의 Magnolia officinalis(중국목련)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중국목련은 중국 남부 지방에서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자라지 않는 식물이다(최근에는 일부 식물원 등에 식재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조선 중기인 1613년에 편찬된 『동의보감』에는 ‘厚朴’(후박)을 중요 약재 식물로 기록하면서 唐(당) 즉,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재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동의보감』에 의하면 후박은 중국과 일치하는 약재로서 중국목련을 지칭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동의보감』과는 다른 기록과 민속들
그런데 옛 문헌의 기록을 살피면 『동의보감』과는 다른 민속으로 기록된 자료들이 있다. ①『조선왕조실록』 중 세종 5년(1423년)의 기록에는 세종께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어 중국 약재와 비교하도록 하였는데, 그중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厚朴(후박)이 중국의 것과 달라 사용을 금하는 내용이 있다. ②1454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는 경상도와 전라도(제주목)에서 약재로 ‘厚朴’(후박)이 생산된다는 점을 기록하였다. ③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제주목의 토산물로 ‘厚朴’(후박)이 기록되었다.④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 1594~1665)이 1653년에 저술한 『탐라지』는 당시 제주에서 생산되던 토산물로 ‘厚朴’(후박)을 기록하였다. ⑤조선 후기의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1808년에 편찬한 『만기요람』에는 제주에서 생산되는 ‘厚朴’(후박)을 징납하여 훈련도감에서 사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⑥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819년에 유배지이었던 전남 강진에서 저술한 『아언각비』와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1850년대에 저술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중국의 ‘厚朴’(후박)과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는 ‘厚朴’(후박)이 차이가 있다는 취지의 기록이 있다. ⑦조선시대 지방관아의 등록 문서를 모아 편찬한 『각사등록』 중 고종 원년(1864년)의 기록에는 울릉도에서 ‘厚朴’(후박)을 채취한 내용이 있다.
이상의 기록을 살피면, 중국에서 수입되어 약재로 사용하던 厚朴(후박)과 다른 것으로, 경상도와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서 자라고 우리나라에서 厚朴(후박)이라고 부르며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이 별도로 있었다. 이 식물은 어떤 종이었을까?
이에 대한 자료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조선인 식물학자 정태현(鄭台鉉, 1882~1971)에 의해 저술된 『조선산 야생 약용식물』에 남아 있다. 당시 조선의 주요 약재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던 한약재를 조사하여 그 약재 식물에 대한 사진과 그에 대한 학명을 남긴 것인데, 당시 대구, 대전 및 평양의 약재시장에서 ‘厚朴’(후박)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던 식물은 Machilus thunbergii이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바와 같이 중국에서 수입하여 후박이라고 불리던 중국목련의 줄기 껍질이 유통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식물을 후박이라고 부르며 약재로 사용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당시 중국과 조공무역이라는 형태의 공무역이 주를 이루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으로부터 조달되던 약재의 수입량이 전국적으로 필요로 하는 수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추론된다. 즉, 약성이 유사한 대체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중국목련과는 다른 후박이라고 불리우던 별도의 자생식물이 존재했던 것이다.
식물 이름과 우리의 민속
조선인 식물학자와 연구자들이 모여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을 전국 각지에서 조사하여 조선명을 정하고 했던 1937년의 『조선식물향명집』은 Machilus thunbergii에 대해 ‘후박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을 부여하였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채용함”이라는 원칙에 따랐기 때문에 당시 우리의 민속과 언어생활이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즈음에 중국목련과 같은 속 식물로 그 형태가 매우 유사한 일본원산의 일본목련(Magnolia obovata)이 국내에 도입되어 재배되었고 그 중 일부는 일탈하여 야생화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목련은 중국목련과 그 생김새와 거의 비슷하고 약성도 동일하여 한의학에서는 이를 ‘厚朴’(후박)으로 보고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약재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한 「대한민국약전」은 ‘厚朴’(후박)을 일본목련과 중국목련의 줄기껍질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식물의 종에 대해 우리말을 일컬기 위한 식물명으로서 후박나무는 Machilus thunbergii를 뜻하는 것이지만,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약재로서 厚朴(후박)은 목련과의 일본목련(Magnolia obovata)와 중국목련(Magnolia officinalis)의 나무껍질을 뜻하게 되어 서로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조경업자의 오인에 따라 생겨난 일이 아니었고, 조선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문헌으로도 확인되는 우리의 민속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최근 어떤 식물학자는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의 약재 명에 대해서는 중국의 기원식물을 찾아 그에 맞게 우리말 이름을 고쳐서 혼란(?)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식물 명은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로서 언중의 이해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의학의 전문적 명칭을 섞어 대중의 이해와 인식을 바꾸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한약재는 그것을 다루는 전문가에 맡겨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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