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그리고 황교익 씨에 대한 ‘잔상’
[조민제의 문화와 역사]
- 무궁화의 민족사적 정통성 작년 5월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중 무궁화 기념식수했는데, 이를 ‘친일매국 행위’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무궁화는 고려 시대 문헌과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등 국가적 사료에 명확히 기록된 ‘우리의 꽃’입니다.
- 왜곡된 왜색 프레임의 실체 수년 전부터 제기된 ‘무궁화 일제 상징설’은 사료에 대한 무지와 의도적인 자료 조작에 근거한 것이며, 우리 문화를 근거 없이 일본의 것으로 치환하는 행위는 도리어 우리 역사를 훼손하는 ‘역설적 친일’입니다.
- 국가 상징 보호와 공직 적격성 최근 문화관광연구원장으로 취임한 황교익 씨도 ‘무궁화 일제 상징설’ 주장에 섰던 인물입니다. 국가 상징물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것’을 폄하하며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문화 관련 공직 수행의 심각한 결격 사유이며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무궁화 기념식수,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는 오늘 오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기념관을 방문하여 기념관 시설을 둘러보고 재단 관계자들을 격려했습니다.…(중략)…기념관 관람 후 이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념식수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궁화를 식재하며 기념관 방문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 2025년 8월 27일 대통령실 대변인 강유정
독립운동가 서재필(徐載弼, 1864~1951) 박사는 영문판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자 논설에서, 조선 개국 505회 기념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불렀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후렴구에 나타난 「무궁화 노래」를 ‘a song ‘National Flower’(나라꽃 노래)라고 번역했다.
서재필 박사는 서기 897년 이래로 나라이름을 나타날 때 사용해 오던 무궁화에 대해 나라꽃(국화)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부여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재필기념관에서 무궁화를 심은 것은 더욱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무궁화 기념식수를 친일 매국 행위라거나 우매한 대중을 위해 마음에 없이 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정상적인 한국인의 시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쓴 글에 살필 때 그렇게 말하리라 당연히 짐작되는 이들이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와 논쟁의 시작
변호사라는 본업 이외에 야생화 탐사와 식물에 관한 역사 등을 살피는 것을 취미 활동으로 삼던 나는 2020년 7월 초순경 우연한 기회에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강효백이라는 법학전문대 교수가 저자로 ‘국가상징 바로잡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속독으로 읽고 나니 내용이 너무나 황당했다. 무궁화에 대해 잘못 알려진 몇 사실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와 일본의 무궁화에 관한 식물, 민속, 문화와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한 것이었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보이는 부분도 상당했다.
1,200여 년 동안 무궁화가 나라이름을 통해 국가를 상징하는 기능을 했고, 식민시대에 독립운동의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했던 문화와 역사는 모두 왜곡된 채, 느닷없이 ‘일본 제국주의의 무궁한 팽창’을 상징하는 꽃으로 결론짓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졸지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매국노 또는 책략에 속아 일제를 추종한 사람으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누가 저런 황당한 책을 보겠는가 싶었다. 식물 관련 책 출판과 본업 때문에 여유가 없었기도 했다. 개인 블로그에 독후감 형식으로 간단히 정리하여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글이 채 완성되기 전에 저자 본인이 달려와 댓글에서 당장 내리지 않으면 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게 아닌가?
혹시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숙독했고 가진 자료와 일일이 대조했다. 또 읽어도 결론은 분명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은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고 많은 이들이 온라인에 퍼 나르고 있었다.
의아해서 확인하니 광복회장과 유명 맛칼럼니스트의 감수와 추천이 있었고 그 유명세가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이 비슷한 협박 때문에 입을 닫았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와 첫 대화
더 이상 묵과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중국과 일본의 관련 자료를 일일이 다시 찾아가면서 주제별로 문제점을 하나씩 정리해갔다. 그리고 정리된 내용을 여러 곳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대학에서 옛 정원과 건축 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인께서 페이스북에서 『두 얼굴의 무궁화』와 관련하여 황교익,씨와 논쟁을 하다가 나를 초대했다. 그래서 그와 첫 대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가 적은 추천사에는 “강효백 교수가 정리해 놓은 무궁화 자료를 꼼꼼히 보았다. 그의 주장을 빼고 자료만 보려고 노력하였다”라 적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모르는 대단한 자료가 있나 하여 살짝 긴장하기도 했다.
쟁점은 우리의 옛 문헌에서 일제강점기 이전에 한글 ‘무궁화’ 또는 한자 ‘無窮花’라는 표현이 나타난 사례가 없고 일제와 친일파 윤치호가 만들어 낸 것으로 일본명 무쿠게(ムクゲ)의 잘못된 번역이라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무궁화’라는 우리말 이름은 고려시대인 1213년에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지은 한시에서 이두식 차자 표기로 ‘無窮’(花) 및 ‘無宮’(花)로 처음 나타나고, 이후 조선 초기에 편찬된 종합의서인 『향약집성방』(1433년)의 ‘無窮花木’을 거쳐 이후 음운학서인 『사성통해』(1517년)와 아동용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1527년)에 한글로 ‘무궁화’가 나타났으며,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도 한글로 ‘무궁화’가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의보감』과 같이 원문이 있는 경우 그것을 스캔해서 제공하기도 했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은 왜곡과 조작에 의한 것이 명백했고 황교익 씨도 이에 다른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으므로 논쟁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용은 자기는 모르니 저자에게 확인하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그리고 그는 거짓으로 보이는 무궁화 관련 주장을 별다른 정정없이 이어갔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과의 논의
자료로 검증했다는 취지의 추천사에 견주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었지만, 당시 나는 강효백으로부터 계속하여 형사고소를 압박 받고 실제로 당했던 처지라 더 이상 추가적 논의는 어려웠다.
무궁화를 상징 문양으로 사용하는 광복회가 회장 명의로 무궁화를 친일의 꽃으로 보는 책을 감수해 유통시키고 있는 상황이 더 급한 문제이기도 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김원웅 광복회장과 면담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느낀 놀라운 점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모임인 광복회의 회장이 독립운동에 관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한희샘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한글강습소의 졸업증서 등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로 무궁화 문양을 사용함.
-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허허 무궁화가 피었구나」라는 시에서 무궁화를 빌어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민족적 저항과 투쟁을 호소함,
-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민족독립을 갈망하며 달에서 계수나무를 베어내고 무궁화를 심자는 취지의 「무궁화 심으과저」라는 옥중시를 지음.
- 매헌 윤봉길(尹奉吉, 1908~1932)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의 의거 전에 전달한 유촉서에서 일제에 의해 잃어 버린 강토를 ‘무궁화원’(무궁화동산)과 ‘무궁화 삼천리 우리강산’이라고 일컬었음.
- 한서 남궁억(南宮檍, 1863~1939)은 강제병합 후 새로운 세대에 희망을 걸고 무궁화를 매개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했고, 무궁화재배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음.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과 북미 대륙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수많은 기사에서 무궁화를 독립과 국권회복의 상징으로 사용함.
- 직접 피를 흘리고 싸웠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의 독립군가에는 좌우 이념을 떠나 모두 무궁화를 독립의 상징으로 사용함. 기타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에서 무궁화가 사용된 사례 등.
또한 897년 이래로 근화향, 근원, 근향, 근화국, 근역, 근화지향, 근화삼천리, 근화원 및 근화세계 등이 모두 고조선 이래의 민족국가를 일컫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문과 무를 겸비하여 더는 외적의 침략이 없기를(의관대검 및 호양부쟁), 무궁하게 피는 꽃처럼 국가의 무궁을 기원(無窮花)하는 바람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어 대한제국에 이르러서는 1900년의 문관대례복 등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국가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되었는 점에 대한 지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무궁화에 관한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자료와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공하자 그제서야 자신은 저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어 이름만 올렸을 뿐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추천사조차 저자가 적은 것이었다는 취지로 실토했다. 감수사는 철회하기로 하여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와 두 번째 대화
책의 출판사에 보낼 분석 자료를 정리해 보니 대략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되었다. 문득 황교익 씨도 그 흔한 친분관계 때문에 추천사를 적었을지 모른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지인을 찾아 중재를 요청했고 논의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남궁억, 겉으론 무궁화 보급, 속으론 비밀결사 독립운동”이라고 한 부분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책이 남궁억 선생에 대해 칭찬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것도 문제냐는 취지로 물어 왔다.
우리말이 기록된 옛 문화를 알지 못하면서 자료로 검증했다는 취지의 추천사를 적은 것도 놀라웠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초보적 수준의 지식의 부족은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어디에서든 쉽게 확인되는 것처럼 남궁억 선생은 강제병합 이후에 교육운동에 투신하신 분이었다.
무궁화가 일(日)천황 영토의 무궁한 확장을 뜻하는 친일 왜색의 꽃이고 비밀결사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을 의미한다는 것이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이었다. 그 말에 따르면 남궁억은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 자라는 세대들에게 친일을 가르친 사람이 된다.
상식에 비추어도 이게 어떻게 칭찬이 되겠는가? 억지로 사회주의자로 만들기 위해 당시 신문기사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배열하고,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다른 사람의 재판기록을 남궁억 선생의 말인양 잘라 끼워 넣었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여러 정리한 내용을 보내주었다. 에도시대의 원예문화와 결부된 무궁화 관련 문화가 일본에도 있지만, 무궁화가 신화(神花)이거나 혼네(本音)의 꽃이거나 천황의 영토 확장 운운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
일본의 저명한 무궁화 관련 학자 타치바나 요시시게(立化吉茂, 1926~2005)조차 일본명 무쿠게(ムクゲ)의 어원이 우리말 무궁화(無窮花)라고 볼 만큼 그들의 무궁화 문화는 우리보다 늦고, 우리의 『향약집성방』의 무궁화 기록이 일본 문헌에서 확인되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알거나 그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이후 자신이 강효백이라는 사람을 너무 믿었고 신뢰해서 생긴 일이라는 취지의 답신을 보내왔고 논의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끝은 아니었다.
책의 절판 그리고 새로운 책과 또 추천사
출판사에 정리된 내용을 보냈고 출판사는 몇 차례 논의를 한 끝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간행을 중단하고 배포한 책들도 수거해서 폐기처분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저자를 제외하고는 추천자와 감수자 모두 문제점을 인정했고 출판사도 간행을 중단했으므로 논란은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강효백은 2021년에 『애국가는 없다』라는 책을 출간해 다시 무궁화를 비하하는 내용을 실었고, 김원웅 씨는 광복회장 명의로 여기에 또 다시 “무궁화를 한민족 전통의 나라꽃”으로 한 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왜색으로 점철된 것이라는 취지의 추천사를 적었다.
또 강효백은 2023년에 유사한 내용의 『일본 무궁화는 가라, 한국 진달래 오라』라는 책을 출간했다. 황교익 씨는 또 다시 여기에 “강효백 교수가 정리해 놓은 무궁화와 진달래 자료를 꼼꼼히 보았다. 그의 주장은 빼고 자료만 보려고 노력하였다”며 이전과 매우 비슷한 추천사를 적었다.
황교익 씨가 추천사를 적은 새로운 책에는 일부 변경이 있기는 했으나 남궁억 선생에 대한 내용도 유사하게 실렸고 무궁화와 관련된 내용은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책 서두에서, 일본에는 무궁화가 8세기에 전래되었던 반면에, 한반도에는 15~16세기에 전해졌다는 취지의 주장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영문 위키피디아가 논거인데 이게 자료로 검증한 것인가?
무궁화의 전성시대가 일제강점기라는 주장에서 든 논증은 1920년대~1940년대 사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무궁화, 근화 및 근역의 사용 빈도수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이것은 황교익 씨가 말하는 우매한 대중이어도 금방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1920~1940년대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우리의 그 어떤 옛 문헌보다도 한글의 사용 빈도가 높고, 심지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한글이 매우 많이 포함된 국한문혼용체이었다. 그래서 이를 근거로 누군가 한글은 친일적이고 세종대왕은 친일파라는 주장이 펼친다면 당연히 의심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자료를 어떻게 보면 저런 추천사를 다시 적을 수 있는지, 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비하하고 왜곡해야만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하는지 황망할 뿐이었다.
말로는 반일 내세우지만, 실질은 ‘친일적인’ 경향들
해방 직후 반민특위가 해산되고 그에 이은 동족상잔의 이념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친일청산은 현실 문제점의 근원적 원인이자 조속히 달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일본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이러한 인식은 증폭되어 사회 곳곳에서 반일과 친일청산을 외치면 그 자체로 애국투사가 되고 유명인사가 되며 하다못해 책이 잘 팔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는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일본의 것을 억지로 끌어와 치환하여 비판하는 행위가 반일인양 하는 풍조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방법론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존재하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일본의 것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 폄하적 의미에서 ‘친일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나라의 국권을 일본에 팔아먹은 행위를 친일 매국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일본에 넘기는 것은 덜한 친일 매국일 것인가?
2026년 3월 15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으로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은 재미교포 이재는 수상식에서 대한제국의 문관대례복을 본떠 만든 무궁화 문양의 의상을 입고 등장했고, 이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와 추천사 등을 적은 김원웅 씨와 황교익 씨의 견해를 빌자면, 이재의 행동은 친일 매국노이거나 그 후손쯤 되는 것인가? <탕액편>에서 약재명 중의 하나로 한글 ‘무궁화’를 기록한 『동의보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질 3본은 국보로 지정되어 세계에 자랑할 거리이자 우리의 중요한 국가 유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와 감수사 등을 적은 김원웅 씨와 황교익 씨의 견해를 빌자면 왜색적인 무궁화를 기록한 『동의보감』은 친일 매국적 서적이 아닌가? 서재필기념관에 무궁화를 식재한 이재명 대통령은 친일 왜색의 꽃으로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를 모욕한 것이 되는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을 둘러싼 논의들
최근 이재명 정부는 황교익 씨를 문화예술의 창달, 문화산업 및 관광진흥을 위한 연구, 조사, 평가를 추진하기 위해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한국문화관광진흥원’의 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전문성과 신뢰성이 없는 ‘보은성 인사’라는 점 등을 이유로 해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한편 문화·예술계 밖의 일부에서는 학위 위주의 전문성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른 경력이나 관록에서 생겨나는 일반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무궁화는 그 꽃을 선호하든 아니든 긴 세월 동안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서 형성되어 나라문장, 대한국민의 여권 그리고 국회와 군대와 법원 등 중요 국가기관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되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와 역사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지난 몇 년간 황교익 씨와 무궁화 및 국가상징물을 둘러싼 논쟁을 했고 그의 글과 주장을 살피고 검토한 나로서는 그에게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경력이나 관록은커녕 평균인의 상식적 수준의 지식과 경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추천의 근거로 삼은 ‘자료’가 무엇인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행여 누군가 음식 분야에서 그의 경력과 관록을 설파할 요량이라면 우리말 ‘불고기’가 일본말 ‘야키니쿠’를 번역한 것이라는 주장부터 멸치국수와 장어 식용 등에 관한 논의를 다시 살펴보기를. 더불어 『두 얼굴의 무궁화』와 그의 추천사를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고찰 없이 부족, 왜곡 또는 조작된 근거로 너무나 쉽게 우리의 것을 일본의 것으로 만드는 습관적 경향을 목도하는 것 외에 달리 문화와 관광에 도움될 만한 어떤 일반적 경험이 보이는가?
지난 정부에서 편향된 이념적 성향을 가진 인물을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고자 함으로써 이념논쟁으로 하세월 했던 것은, 현 정부가 그의 임명을 재고해야 하는 충분한 반면교사가 아닌가?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문화·예술계의 노력에 지원과 연대 의사를 보낸다.
[데스크의 주]
국가 상징물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마땅한 책무이며,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에 본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무궁화 고증 전문가인 조민제 변호사의 견해를 싣습니다. — 발행인 문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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