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국명에 ‘선취권’을 인정하자니
[조민제의 식물 이름 이야기] 지금 불리는 식물명 바꾸자는데... 고려말 기록된 약재명을 따르자고? 학명이 아닌 국명, 표준적 명칭일 뿐 ‘삼국유사’속 이름도 인정할 것인가
시작하며
“국명에 대한 명명규약이 별도로 없다고 하더라도 유효출판물에 발표된 것은 선취권(다른 것보다 먼저 자격을 갖는 권리)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이우철(2005), 5쪽]. 만일 인정한다면, 『조선식물향명집』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부르고 있던 이름이 기록된 『향약구급방』부터 시작하여 『동의보감』 또는 『물명고』에 기록된 식물명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단, 이들 식물명의 분류학적 실체가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 신현철, 『향약구급방에 나오는 고려시대 식물들』, 소명출판(2024), 494쪽
최근 고려시대 말엽부터 조선시대 초기에 적혀진 것으로 추정되는 옛 한의서 『향약구급방』에 기록된 약재명에 대한 분류학적 실체를 규명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책이 발간되었다. 『향약구급방에 나오는 고려시대 식물들』이라는 제목의 책이다(이하 “『고려시대 식물』”이라 함).
이 책은 당시 약재로 사용했던 식물의 표본이나 그와 유사한 것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로는 한자로 된 약재명에 대한 최근 중국의 해석을 근거로 분류학적 실체를 규명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상당한 식물의 국명을 당위적 차원에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몇가지를 예시로 뽑아 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국명과 학명] 소엽맥문동(Ophiopogon japonicus) → 맥문동
[현재 국명과 학명] 벌사상자(Cnidium monnierii)→ 사상자
[현재 국명과 학명] 타래붓꽃(Iris lactea var. chinensis)→ 붓꽃
[현재 국명과 학명] 섬오갈피나무(Eleutherococcus gracilistylus)→ 오갈피나무
이 글은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의 주장이 현재 식물의 국명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권위있는 식물학자의 견해를 인용하고 그것을 주요한 근거로 삼아 식물의 국명에 선취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명제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식물의 국명과 선취권의 개념을 알아보고 그 인용이 정확한지 식물분류학적 견지에서 국명에 선취권이 있다는 것이 타당한 주장인지와 그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국명의 선취권 주장에 대한 검토
1. 식물의 학명과 국명의 의의
학명(scientific name)은 식물분류학에서 사용하는 라틴어로 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학술적인 명칭이다.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에 의해 근대 식물분류학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식물의 학명은 식물분류학에 따른 국제식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Nomenclature for algae, fungi, and plants)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만들어지고 규율된다. 학명은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죽은 언어인 라틴어로 표기된다. 분류군의 최소 단위인 종의 학명은 분류군의 지위와 계급이 나타날 수 있도록 속명(generic name)과 종소명(specific epithet)으로 조합된 이명법으로 표기되는데, 하나의 종은 출판의 선취권에 근거한 하나의 정명(correct name)만을 갖는다.
반면에 국명(‘일반명’이라고도 함, common name)은 하나의 국가 또는 같은 언어권에서 공통하는 사용되는 말로 그 지역의 표준적인 명칭을 뜻한다. 국명은 학명과 달리 국제식물명명규약과 같이 일반적으로 규율하는 규칙이 없다. 따라서 종에 대한 명칭에서도 하나의 정명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칭이 혼용되거나 세분화된 각 지역의 여러 방언(dialect)이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다만 여러 명칭이 혼용될 경우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는 표준어를 정하는 방식에 준하여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다(이러한 취지의 견해로 이우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일조각, 3쪽 참조). 이와 같이 국명은 학명과 달리 언어에 변화가 있는 경우 이에 조응해서 변화한다(적응성). 그러나 동시에 상호 원활한 의사소통의 효율을 기하기 위해서는 어휘 및 표기의 잦은 변경을 피해야 하기도 한다(안정성).
2. 선취권과 유효출판물에 대한 개념
국제식물명명규약 제1부 원칙 규정 중 원칙3은 “분류군의 학명은 출판의 선취권에 근거한다”고 규정하고, 원칙4는 “한계, 지위 그리고 계급을 갖는 각 분류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정에 따라 가장 먼저 출판된 하나의 정명만을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취권 대상이 되는 학명이 기재된 출판(publication)과 관련하여 국제식물명명규약 제32.1항은 “분류군의 학명이 합법적으로 출판되기 위해서는 (a)각 분류군의 출발점의 날짜 이후에 유효하게 출판되어야 하고(국제식물명명규약 제13.1항은 종자식물과 양치식물에 대한 속과 그 이하의 학명은 1753년 5월 1일을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b)원칙적으로 이미 죽은 언어로서 현실에서 사용되지 않는 라틴어의 알파벳 문자로만 구성되어야 하며, (c)국제식물명명규약 제16조~제27조 등에서 정한 규정을 따른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취권의 대상이 출판은 합법적 출판(validly published)이어야 하는데 또한 합법적 출판은 유효한 출판(effectively published)일 것을 요건으로 한다. 그리고 국제식물명명규약 제29.1항은 유효한 출판에 대해 원칙적으로 “본 명명규약에서의 출판은 인쇄물을 일반대중에, 또는 최소한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도서관을 겸비한 과학(식물) 연구기관에 배포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라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고려시대 식물』 저자의 왜곡과 문제점
1. 이우철 박사의 견해에 대한 고찰
한국 식물분류학에 큰 족적을 남긴 이우철(李愚喆, 1933~2022) 박사가 그의 저서 『한국식물명의 유래』(일조각, 2005), 5쪽에서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물도감들 속에서 학명은 같은데 국명이 다른 것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목적으로 집필하였다. 국명의 명명규약은 별도로 없다고 하더라도 유효출판물에 발표된 것은 그 선취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식물명도 고유명사이므로 일단 발표된 것을 한글의 문법이나 표기법에 맞추기 위해서 자꾸 바꾸는 데는 문제가 있다.”라고 언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우철 박사는 식물의 국명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표준어의 제정원리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기 때문에 국명이 오로지 선취권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 것이 아니었다. 학자들이 같은 학명의 식물에 대해 다른 국명을 사용하거나 문법이나 표기법에 따라 지나치게 자주 국명을 바꾸는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학명의 선취권과 관련된 유효출판물 개념을 유추하여 식물분류학에 따른 학명과 국명이 모두 기록된 문헌 중에서 먼저 출판한 것에 국명의 우선권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주장했던 것이다. 여기서 유효출판물은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른 ‘유효한 출판’(effective publication)을 말한 것이라는 점은 명명규약이 언급된 것에서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2. 『고려시대 식물』 저자에 의한 인용의 왜곡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는 ①이우철 박사의 일부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다. 그리고 ②”만일 인정한다면”이라는 가정적 문구를 던져 그 이하의 견해가 자신만의 주장이 아니라 권위있는 식물학자인 이우철 박사의 견해에 따른 결론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으로 ③”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부르고 있던 이름이 기록된 『향약구급방』부터 시작하여 『동의보감』 또는 『물명고』에 기록된 식물명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의 위 ④의 결론은 『향약구급방』, 『동의보감』 또는 『물명고』를 식물분류학에 따른 학명의 기재가 있고 인쇄물로서 대중에게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도서관을 겸비한 식물연구기관에 배포된 출판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우철 박사의 견해와는 전혀 맞지 않는 주장에 불과하다. 즉, 이우철 박사의 견해를 인정한다는 가정을 하고서도 유효출판물에 관한 내용을 누락함으로써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우철 박사는 식물의 국명이 학자 사이의 견해 대립이나 잦은 문법이나 표기 등의 변화로 발생하는 혼란을 방지하고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의 위 ④의 결론은 국명의 안정성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국명의 선취권을 한계없이 과거의 것으로 소급하도록 함으로써 이미 역사성에 따라 정착한 국명의 안정성마저 흩트려 놓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우철 박사의 견해와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의 위 ④의 결론은 전혀 다른 것이다.
3. 『고려시대 식물』 저자 주장의 문제점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가 주장하는 결론 즉, 『향약구급방』, 『동의보감』 또는 『물명고』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여 국명의 선취권을, 유효한 출판인지조차 따지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경우 식물의 국명은 최소한의 기능조차 없어지고 현실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13~15세기에 저술된 『향약구급방』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한없는 선취권을 인정한다면 그 이전인 886년의 『계원필경』, 1145년의 『삼국사기』, 1241년의 『동국이상국집』등을 제외할 이유는 없고, 한의서가 아닌 1446년의 『훈민정음해례본』과 1527년의 『훈몽자회』 등 우리의 옛 문헌에서 나오는 식물명을 제외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묘지석, 탑비 및 기타 이와 유사한 유적에서 발견되는 식물명을 ‘우리나라에서 부르고 있던 이름’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선취권이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문헌을 일일이 확인하여 식물의 국명을 새롭게 정해야 하고 새로이 문헌이나 유적에서 식물명이 발견될 때마다 국명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국명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로, 선취권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휘 또는 표기와 상관없이 최초 기록된 그대로 식물명으로 사용함을 뜻한다. 그런데 식물의 국명을 포함하여 우리의 언어는 이미 역사성에 따라 변화하여 현재에 이르렀음에 불구하고 이를 다 무시하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서 선취권을 적용하는 경우 그 때 표기된 글자로 현재의 국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황당한 결과를 놓게 된다. 과거 우리의 말은 한자, 한자 차자, 한글로 표기되고, 1446년의 한글 창제 이후부터 1933년의 한글마춤법통일안이 제정되어 보편화되기 이전까지 한글의 표기법은 현재와 매우 달랐다.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가 『향약구급방』에 선취권이 있다고 하면서 현재의 국명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중에서 몇가지 약재명을 「방중향약목초부」에 있는대로 옮기면, ①”麥門冬 俗云冬沙伊”(맥문동은 민간에서는 ‘겨△ㅡ사리’라고 한다), ②”蠡實 馬藺子也 俗云芼花”(여실은 마린자이다. 민간에서는 ‘붇곶’이라 한다) 및 ③”五加皮”(오가피)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는 선취권에 따라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면서 ①에서는 한자를 현대어로 읽은 ‘맥문동’이라 하고, ②에서는 민간에 부르던 이름을 현대어로 바꾼 ‘붓꽃’이라 하고, ③에서는 한자의 발음이 전화되고 현대어로 표기한 ‘오갈피나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규칙은 전혀 없고 저자의 자의적인 표기만 난무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향약구급방』의 선취권을 인정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다르게 표기하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되어 식물의 국명은 그야말로 혼돈의 백가쟁명의 상황이 될 것이다.
셋째로, 『고려시대 식물』은 옛 문헌을 통해 우리의 역사, 민속과 문화를 살피는 문제에 대해 분류학적 실체를 규명하는 문제로 보고 일부 문구에 착안한 자신만의 해석에 기대어 도출한 결과에 대해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고 이미 오랜 민속과 문화에 따라 정착하여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를 특정인의 생각에 맞추어 바꾸어야 하는 문제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국제식물명명규약 제1부 원칙2는 “분류군의 학명의 적용은 명명법상의 기준표본(types)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규정하여 명명된 종에 실체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경우 식물 표본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향약구급방』은 한의서이고, 그곳의 약재명이 어떤 식물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지도 않으며, 그때 사용한 약재의 표본이 남아 있지도 않다. 매우 짧은 문구에 기대어 특정한 식물 종이었다고 하는 것은 분류학적 실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국인 모두가 사용하는 한국어인 현재의 식물의 국명을 13~15세기의 문헌에 근거해서 이제 와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당혹스럽지만, 그만의 독자적 해석이 기대어 분류학적 실체를 규명했다고 주장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식물』의 저자가 『향약구급방』의 ‘五加皮’(오가피)의 분류학적 실체가 섬오갈피나무(E. gracilistylus)라고 주장하는 것은 후대에 적혀진 『향약집성방』에 나타나는 암수를 구분한 듯한 표현에 근거한 해석에 주로 의존한 것이다. 그러나 섬오갈피나무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제주도에만 분포한다.
제주의 식물에 대해 기록한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653년의 『탐라지』, 1704년의 『남환박물』, 19세기 중후반의 『제주계록』등 그 어디에도 五加皮(오가피) 또는 그 유사한 식물이 제주에 분포한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식물분류학이 도입되어 전국적인 식물탐사를 하기 이전의 옛 사람들은 제주도에 오갈피나무속 식물이 분포하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데 어떻게 『향약구급방』에서 사용한 약재의 분류학적 실체가 오갈피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그는 『향약구급방』에 기록된 ‘麥門冬’(맥문동)의 분류학적 실체가 현재의 소엽맥문동(O. japonicus)이라고 단정하고, 선취권에 근거하여 그 국명을 맥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맥문동을 황해도와 평안도에 분포하는 식물로 기록하였고,1820년대 저술된 『물명고』는 맥문동에 대해 “實黑而圓’(열매는 검고 둥글다)고 하였다. 이 문헌에 따르면, 麥門冬(맥문동)이라는 동일한 이름의 식물이 푸른색이 나고 남부에 분포하는 소엽맥문동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주장과 어긋나는 위와 같은 기록은 모두 누락하고서는 오로지 부합하는 일부만 선택적으로 취하여 근거로 삼으면 그 해석의 타당성을 뉘라서 인정할 수 있을까?
마치며
식물의 국명에는 애초에 선취권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효하고 합법적인 출판에 따른 명칭에 대해 선취권을 인정하는 것은 학명에 한하는 것이다. 식물의 국명은, 식물분류학이 학문으로서 보편화된 이후에는 그에 따른 각 분류군의 명칭과 연동되어 있지만, 학명과 달리 각 나라 또는 언어권의 의사소통으로서의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표준명(또는 추천명)은 그 나라 또는 언어권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적응성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변화하지만, 서로 다른 이름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잦은 변동은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안정성 또한 필요하다.
초기 제대로 된 학문이 정착하지 못했던 시기에 식물분류학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식물학자가 당시 놓인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해결하고 국명의 안정성을 위해 언급한 문구를 빌어 마치 그것이 13세기 옛 문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물분류학의 원칙으로 주장한 것인양 설파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식물분류학서가 아니고 표본이 남아 있지 않은 옛 한의서의 기록을 근거로 분류학적 실체를 규명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에 기록된 식물명의 선취권을 부여하는 것은 식물분류학에서 인정하는 방법론도 아니다.
『향약구급방』과 같은 옛 문헌에 기록된 식물명이 현재 우리가 보편적 과학 또는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식물분류학을 따를 경우 어떤 식물이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한의학적 차원에서 기원식물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우리 역사, 민속 및 문화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식물』에는 수많은 왜곡과 오류 및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그 출판 이전과 이후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학문적인 비판과 검증 과정을 거쳤다는 흔적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우리의 역사, 민속 및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그리고 식물분류학의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서 잘못을 비판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매우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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