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금융권 동시 해킹’이 남긴 경고
- AI 기반 동시다발 공격의 현실화 최근 주요 은행들의 ‘변두리 시스템(대출모집인·영업지원 등)’을 겨냥한 동시 유출 사태는 지치지 않고 허점을 탐색하는 AI 에이전트 해킹이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 단순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선 2차 위협 이번 공격은 본격적 타격에 앞서 금융권을 테스트한 ‘스파링’ 성격이 짙으며, 유출된 세부 정보를 악용한 정교한 사칭·금융사기 등 2차 피해 위험이 매우 높다.
- AI 공격을 막기 위한 AI 방어망 구축 시급 사람이 로그를 보며 막는 시대는 끝났으므로, 정부와 기업은 변두리 시스템 상시 관리와 함께 AI 기반 자동 탐지·차단 체계를 도입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지난 9월 30일, 신한은행은 대출모집인 서비스의 본인 확인 절차를 우회한 외부 비인가자에 의해 고객 약 2만5천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충격은 하루 만에 확산됐다. KB국민은행, 하나은행, BNK부산은행, 예가람저축은행에서도 유출이 확인됐고,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도 공격 시도가 있었다. 사실상 국내 주요 은행 전체가 동시에 공격을 받은 것이다.
더 주목할 부분은 공격의 주체다. 보안업계는 동일한 AI 에이전트가 여러 은행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격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서버에서는 중국어 기반의 오픈소스 자율 침투테스트 도구 ‘아르텍스(ARTEX)’의 흔적이 발견됐다.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명의 해커가 며칠 사이에 여러 금융기관의 외부 시스템을 동시에 뚫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또 하나의 개인정보 유출’이 아니다. AI가 공격의 주체가 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신호다.
AI 해킹은 화려하지 않다, ‘노가다’일 뿐이다
AI 해킹이라고 하면 영화 속 장면처럼 고도의 기술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해킹을 직접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해킹의 상당 부분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가다(단순반복 작업)’다.
롯데타워 같은 초고층 건물을 떠올려 보자. 창문이 수백 개, 잠금장치가 달린 문도 수백 개다. 침투는 화려한 금고 털이가 아니라, 이 모든 문과 창문이 잠겨 있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과거에는 이 일을 사람이 했고, 그래서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AI가 지치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모든 문을 두드린다. 로그인 실패가 5회 누적되면 계정이 잠긴다는 것을 알고, 4번만 두드려 보고 다음 문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AI 에이전트의 작동 방식도 단순하다. 사람은 “한국 금융기관을 공략하라”는 목표만 지시하면 된다. 에이전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짜고, 필요한 도구를 가져와 실행하며, 실패하면 경로를 바꿔 다시 시도한다. 그리고 AI는 지금까지 공개된 거의 모든 해킹 기법을 이미 학습한 상태다.
‘아르텍스’는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고, 정보 수집부터 취약점 탐색, 공격 경로 설계, 도구 실행까지의 과정을 자동화하도록 설계됐다. 올해 중국 바이두 보안대응센터(BSRC)가 주최한 AI 에이전트 공방 대회의 우승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미국 빅테크들이 위험성을 이유로 사이버 공격 능력을 갖춘 모델의 공개를 통제하는 것과 달리, 중국 생태계에서는 이런 도구의 가드레일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
그렇다면 일반인도 AI만 있으면 해킹을 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도구의 진입장벽은 분명히 낮아졌다. 그러나 해킹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초보자가 섣불리 도구를 돌리면 흔적을 남기고 곧바로 추적당한다. 덧붙여 변호사로서 분명히 말해두자면, 정당한 권한 없이 타인의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보통신망법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다. ‘AI가 했다’는 것은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아르텍스라는 특정 도구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유사한 도구는 이미 수없이 많고, 상당수의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다. 아르텍스를 막는다고 다음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 ‘변두리 시스템’이었나
이번 공격의 표적은 은행의 메인 시스템이 아니었다. 신한은행은 대출모집인 전용 서비스, 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 지원 시스템,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이 뚫렸다. 모두 핵심 시스템 바깥에 있는 ‘변두리’다.
이는 새로운 수법이 아니다. 보안이 잘 갖춰진 대기업의 메인 서버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해커는 없다. 하청업체나 협력사가 관리하는 서버, 개발용 임시 서버, 외부 인력이 쓰는 업무 시스템처럼 보안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곳을 먼저 뚫고, 이를 발판으로 안쪽으로 이동한다. 과거 개인 해커들도 똑같은 전략을 썼다.
달라진 것은 규모다. 과거에 이 방식이 제한적이었던 이유는 대기업 주변에 흩어진 수많은 서버를 사람이 일일이 찾아내고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AI가 그 주변부를 알아서 찾아내고, 문을 두드린다. 사람의 한계가 곧 방어선이었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보안의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은행이 아무리 본진의 성벽을 높여도, 외부와 연결된 쪽문 하나가 열려 있으면 소용이 없다.
아르텍스의 흔적, 범인을 가리키는가
중국산 도구의 흔적이 발견되자 ‘중국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AI 에이전트에게는 성격도 성향도 없다. 사람 해커는 저마다 선호하는 수법과 습관이 있어 이것이 일종의 ‘지문’이 되지만, AI는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를 뿐이다. 공격 수법만으로 배후를 특정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흔적은 왜 남았을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단순한 실수다. 단기간에 방대한 공격을 수행하면서 인프라를 미처 정리하지 못했을 수 있다. 둘째, 의도적인 노출이다. 셋째, 가장 지능적인 시나리오로, 실제로는 다른 도구와 다른 세력이 공격하면서 시선을 중국 쪽으로 돌리기 위한 연막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제3국이 공격을 수행한 뒤 중국 도구의 흔적을 남겨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IP 주소에 집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이번 공격 역시 여러 나라의 IP를 바꿔가며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커들은 통상 20개국 이상에 경유지를 확보해 두고 공격한다. 몇 달러면 IP를 수십, 수백 개씩 구할 수 있는 시대다. 지난 2013년 3·20 사이버테러 당시 정부가 “중국 IP가 사용됐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농협 내부 사설 IP였다고 정정한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통계적으로 보면 국내 금융권을 겨냥한 공격은 중국과 북한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능성과 증거는 다르다. 배후 규명은 정밀한 포렌식과 국제 공조를 통해 차분히 이뤄져야 한다.
이번은 스파링 훈련이었다
이번 사태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수만 명 규모이고, 아직 금전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보다 큰일은 아니다”라는 반응도 나온다. 필자의 판단은 정반대다.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해커 집단은 이번에 스파링 훈련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 자신들의 도구가 실제로 통하는지 잽을 날려 테스트해본 것이다. 그리고 스파링 상대로 국내에서 보안 투자와 의식이 가장 높은 영역인 금융권을 골랐다. 금융권이 뚫린다면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다는 계산이다.
그들은 다음 상대를 찾아 더 고도화된 기술을 시험할 것이다. 다만 당장은 아닐 수 있다. 사태가 한 번 터지면 경각심과 대응 수준이 일시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공격자는 이 시기를 피해 관심이 식기를 기다린다. 이번 목표가 개인정보였다면, 다음 목표는 돈일 수 있다. 대상도 금융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통신사, 국가기관, 군, 정보기관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앞으로의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유출된 개인정보 자체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 범죄는 이미 기술의 싸움을 지나 심리와 시나리오의 싸움으로 넘어갔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직장, 대출 진행 상황까지 아는 범죄자는 피해자가 의심할 틈이 없는 정교한 시나리오를 짤 수 있다. “고객님 대출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라는 전화가 실제 대출 정보와 정확히 일치한다면, 누가 이를 의심하겠는가.
결론: AI는 AI로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막을 수 없는가. 단언컨대,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수천, 수만 건의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관제요원이 로그를 보고 판단해 차단하는 방식으로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해법은 하나다. 공격 징후가 포착되는 즉시 AI가 이를 판단해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기다리고 있다가 막아야 한다. 미국은 국방 분야를 중심으로 이미 이 방향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고, AI 보안 에이전트 기업들은 앞으로 가장 각광받는 산업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AI 보안 기술이 아직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창과 방패의 싸움인데, 방패를 만드는 일이 훨씬 어렵다. 창은 한 곳만 뚫으면 되지만, 방패는 모든 곳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침투 AI보다 뛰어난 방어 AI를 만들려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 인재가 필요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정부는 첫째, 외부에 노출된 ‘변두리 시스템’의 전수 관리를 제도화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이번에 외부 노출 전산시스템 전반에 대한 긴급 점검을 지시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다만 일회성 점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출모집인, 협력사, 개발용 서버 등 핵심 시스템과 연결된 모든 외부 접점을 상시 목록화하고, 본진과 동일한 수준의 보안 기준을 적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AI 기반 탐지·자동 차단 체계를 금융권 보안의 기본 요건으로 삼아야 한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안전성 확보 의무의 내용을 AI 공격 시대에 맞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제 공조, 특히 미국과의 협력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공격은 한국만을 노린 것이 아니다. AI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닿는 대로 접속해 뚫을 방법을 시도한다. 세계 각국이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다.
AI 보안 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과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방어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지난 칼럼(AI 수출금지 시대, 망 보안이 ‘국가 안보’다)에서 다뤘듯, 미국이 최고 수준의 AI 보안 도구를 공유하는 전제 조건은 ‘신뢰할 수 있는 망’이다. 우리 망의 보안 수준을 높이는 것이 곧 방어 기술에 접근할 자격을 얻는 길이다.
기업이 해야 할 일
기업은 첫째, 협력사 보안을 자사 보안으로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 가장 많이 털릴 곳은 대기업 본진이 아니라 그 주변의 협력사 시스템이다. 외부 인력이 접속하는 시스템에는 다중 인증과 접속량 제한을 기본으로 적용하고, 협력사의 보안 수준을 계약과 감사로 관리해야 한다.
둘째,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막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피해를 완벽하게 방지할 방법은 없다. 남은 것은 침입을 최대한 빨리 탐지하고 차단해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셋째, 유출 고객에 대한 2차 피해 대응을 사고 수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유출 사실 통지에 그치지 말고, 유출된 정보를 활용한 사칭과 금융사기 시나리오를 고객에게 구체적으로 알리고 이상 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P.S.
보안은 100% 막을 수 없다. 필자가 여러 칼럼에서 반복해온 말이다. 그런데 AI 시대에 이 말의 무게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막지 못하는 것이 ‘예외’였다면, 이제는 뚫리는 것이 ‘전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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