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권력과 종교의 위험한 결합에 대해
[종교 주술화와 종교-주술-정치의 동맹③] 종교에서 복수는 ‘공동체 질서의 회복 장치’ 현대에 ‘복수의 정치적 도구화’ 반복돼 트럼프와 윤석열의 ‘복수의 정치’ 노골화 복수의 정치,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어
복수의 원형
인류 역사에서 종교는 단순한 개인적 신앙을 넘어 사회적 행위 체계로 발전해 왔다. 고대 공동체에서 행해진 ‘공동체 제의(community cult)’는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 정체성 강화를 위한 핵심장치였다. 구성원들은 의례를 함께 수행함으로써 감정적 유대를 다지고,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는 정당성을 확보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성서 구절과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법(Lex Talionis)은 흔히 ‘잔혹한 복수법’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피해를 균형있게 조정하고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회복하기 위한 인도적 규범이었다. 다시 말해 무제한적 복수를 제한하고, 사적 보복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정의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복수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공동체 질서를 회복하는 의례적 장치였다.
종교의 복수의 정당화
역사적으로 공동체가 정치 공동체로 발전하면서 ‘공동체 제의’는 ‘공동체 종교’로 변모했다. 정치 단위와 종교 단위가 일치하면서, 국왕에서 노예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은 동일한 종교를 갖고 실천해야 했고, 이로부터의 일탈은 종교적 배교이자 정치적 반역으로 간주하여 처벌하였다. 마녀사냥이 권력·종교·사회 불안이 결합한 폭력적·법적 복합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정사논쟁(正邪論爭, Orthodoxy-Heterodoxy Controversy)에서 최종 판결이 세속 정치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동체 종교’는 대내외적 갈등에서도 복수의 정당화를 위한 강력한 논리를 제공했다. 전쟁과 외교에서 ‘우리’와 ‘적’을 선악의 구도로 구분하며, 적을 ‘신의 이름’으로 공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의 정쟁에서도 복수는 종교적 언어를 입은 정치적 도구로 기능했다. 그 과정에서 보편적(universal) 세계종교의 신은 개별주의적 제의나 주술(magic) 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나아가 ‘정치 종교(political religion)’의 개별적(particular)인 지방 신으로 변모해 갔다.
복수의 정치: 트럼프에서 윤석열까지
현대 미국 정치에서도 복수의 정치적 도구화는 반복된다. 2023년 3월,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나는 당신들의 전사이자 정의다. 부당하게 피해 입고 배신당한 사람들의 복수다”라고 선언했다. 복수를 선거 전략의 핵심으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동안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는 트럼프의 이 ‘보복(retribution)’ 발언을 공개하며 “그 보복은 정치적 반대자뿐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까지 공격하는 위협이며, 공화국과 우리의 정치 문화를 잠식한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연속적으로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국가안보보좌관 출신 존 볼턴은 기밀정보 부적절 공유로 연방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에 앞서 전 FBI 국장 제임스 코미와 뉴욕주 법무장관 레티시아 제임스도 연이어 기소됐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힐러리 클린턴 등 정적에 대한 소송을 통해 개인적 감정을 표출했지만, 법원은 이를 ‘정치적 복수를 위한 법정 남용’으로 판단했다. 또한 뉴욕타임스, CNN 등 언론 매체와 기자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은 ‘허위 주장’과, ‘절차적 요건 미비’로 잇따라 기각되었다. 내부고발자, 전직 공무원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감시자들조차 그의 복수 정치의 표적이 되었다.
한편, 지난 17일,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미 법무부에 이례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임기 이후 그에 대한 형사 수사를 지휘했던 연방 검사 잭 스미스가 공화당 의원들의 통화 기록(call logs)을 부적절하게 확보했는지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정치적 우군들이 그를 기소한 특검을 되레 압박하는 모양새다. 잭 스미스의 이름은 앞서 2025년 8월,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회담 자리에서도 언급됐다. 트럼프가 한국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을 두고 ‘좋지 않은 뉴스’라고 말하자, 이 대통령이 ‘특검의 일’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트럼프는 자신을 수사했던 특검 잭 스미스를 ‘미친 인간(deranged sick individual)’이라 부르며 조롱 섞인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에 의해 ‘정적 제거’의 언어가 사법 영역까지 번지고, 법을 개인적 원한의 도구로 삼는 위험한 정치 문화는 이미 윤석열-김건희 정권하에서도 팽배했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감정적 복수를 드러냈고, 윤석열-김건희 부부는 검찰과 공무원을 통해 제도적·전략적 복수를 행했다. 이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한 복수 정치를 행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 정부 인사들은 물론, 선거에서 진 야당 후보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를 통해 ‘정치적 보복’ 논란을 일으켰고,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을 감찰한 박은정 검사를 해임 처리함으로써 ‘보복성 징계’ 논란을 불러왔다. 또한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는 ‘언론 통제 보복’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는 공직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검증하기 위한 탐사보도에서, 대선후보 윤석열이 중수부 검사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거론하며 수사에 소극적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로부터 자택 압수수색을 받았다. 최근에는 김건희 여사의 육성 녹음에서 “진짜 복수를 해야지, 안 되겠네”라는 발언이 공개되며, YTN 민간 매각 과정에 ‘사적 복수심’이 작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와 함께, 정적과 비판적 언론을 겨냥한 보복적·응징적 권력 작동, 즉 ‘복수 정치’의 구조적 패턴을 드러내고 있다.
권력자의 복수는 단순한 개인적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사회를 위축시키는 구조적 행위다. 권력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적’으로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응징하기 때문에, 그 대상은 정적뿐 아니라, 언론, 공무원, 지식인 시민 모두가 될 수 있다. 복수의 정치가 작동하면, 언론은 위축되고, 검찰과 관료조직은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한다. 시민사회는 자기검열에 빠지고, 공적 담론의 장은 붕괴한다. 복수의 정치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이유다.

종교적 교훈: 복수의 한계를 묻다
고대 공동체 제의에서 복수는 질서와 정의 회복을 위한 규범적 장치였다. 그러나 현대 정치에서의 복수는 감정적이고 제도적으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종교적 교훈을 적용하자면, 복수는 오직 공적 제도 안에서 비례적으로 허용되고 깨어진 질서의 회복만을 위해 행해질 때 안정과 정의가 유지될 수 있다.
역사 속 공동체 종교는 폭력성과 배타성의 한계를 지니지만, 동시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윤리적 토대를 제공했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그러한 도덕적·제도적 기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종교가 가르쳐주듯, 통제되지 않은 분노와 복수는 결국 자신을 삼키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복수의 정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윤석열-김건희 정권의 복수는 탄핵 심판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복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18일, 미국에서는 7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트럼프를 규탄하는 ‘노 킹스(No Kings)’ 시위를 벌였다. 이에 맞서 트럼프는 SNS에 왕관을 쓴 대통령 트럼프가 ‘트럼프 왕(KING TRUMP)’이라는 문구가 적인 전투기를 몰고 시위대를 향해 오물을 투하하는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이 단순한 조롱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제 군대를 동원한 물리적인 복수의 서막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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