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왜 정치와 동맹을 맺으려 하나

[종교 주술화와 종교-주술-정치의 동맹] 종교는 본래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고 정치는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해 타협하면 종교는 상대화, 정치는 절대화 종교, 대중의 세속적 욕망 추구에 주술화 尹정권, 점괘로 계엄 선포일 정했다고?

김건희 특검이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구속한 한학자 통일교 총재. 사진=JTBC 캡쳐.
김건희 특검이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구속한 한학자 통일교 총재. 사진=JTBC 캡쳐.
  • 종교는 왜 정치를 부르는가. 정치는 왜 종교를 찾는가. 통일교와 윤석열-김건희 세력간에 결탁은 한국 민주주의에 또 다른 위기를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중 하나로 믿었던 ‘정교분리’ 원칙이 흔들리는 양상이 그것이다. 정치·종교사회학을 전공한 정태식 교수의 칼럼 시리즈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위기를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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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계엄과 내란 이후 전개된 탄핵 정국과 법원 점거 난동, 특검 수사 등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특이한 흐름이 하나가 관찰된다. 바로 정치, 종교, 주술, 신종교가 얽힌 ‘4자 결합(quadripartite conjunction)’의 양상이다. 김장환, 전광훈, 이영훈, 손현보 목사 등 주요 개신교 인사들,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신종교 세력, 그리고 건진 법사, 천공 스승 등 무속 인물들이 윤석열 정권과의 유착 의혹으로 특검에 소환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주술-종교-권위주의 연합(Magic-Religious-Authoritarian Alliance)’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연합은 조직적 통합이라기보다, 공통의 목적이 있을 때 함께 움직이며 손을 잡는 정치적 이해의 느슨한 공조에 가깝다. 이러한 연합이 왜,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와 종교는 왜 본질적으로 충돌하는가?

종교와 정치는 원리상 양립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종교는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지향한다. ‘모든 이들을 위한 정의와 평등’이 핵심 가치다. 반면 정치의 본질은 특수주의(particularism)다. 특정 집단, 민족,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추구한다.

종교가 말하는 정의와 평등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이상에 가깝지만, 정치가 말하는 정의는 늘 한정된 범위의 이해관계 안에서만 작동한다. 종교는 모든 인간의 구원(salvation)을 추구하며, 사랑과 자비, 이타주의(altruism)를 강조하지만, 정치는 자유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불평등과 불의조차 정당화하기도 한다.

정치와 종교의 타협, 그리고 변질

이처럼 상충하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정치와 종교는 타협해 왔다. 당위(oughtness)의 이념적 긴장보다 현실(isness)의 힘이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와 정치가 타협하면 종교의 절대적 가치는 상대화되고, 상대적 가치의 정치는 절대적 가치로 고양된다. 이때 정치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종교의 권위를 차용한다.

예를 들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성전(holy war)’으로 승화시켜 수행했다. 이들 모두 미국을 ‘선하고 거룩한 보편주의 국가’로 설정한 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역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지지를 얻어 ‘영적 안보(spiritual security)’라는 종교적 명분을 덧씌웠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 기도회’. 책상 앞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앞줄 오른쪽) 미 대통령이 앉아있고, 참석자중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 기도회’. 책상 앞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앞줄 오른쪽) 미 대통령이 앉아있고, 참석자중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종교는 어떻게 주술에 가까워졌나?

종교가 정치와의 타협에 익숙해질수록, 주술과 닮아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종교는 본래 주술과 적대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공존해 왔다. 이는 대중의 주술적 욕망을 종교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술과 종교는 표면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그 이념형(ideal types)은 전혀 다르다. 주술은 신을 움직여 개인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도구이며, 종교는 신의 뜻이나 절대 원리에 따라 자기 성찰과 이타적 삶을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주술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기에 결과의 책임을 신에게 떠넘기지만, 종교는 신이나 절대 원리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한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다.

현대 사회의 종교는 다원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대 사회의 지배체제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시장 논리를 점점 더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가 주술화된 것은 시장 논리의 침투이자, 종교 자체의 자발적 수용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점점 ‘종교 비즈니스’로 변모하였다. 일례로 목회의 성공은 교회 성장으로 측정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마케팅 전략이 동원된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신자들의 주술적 욕망에 응답하는 것이다. 미국의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은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되고 성공적인 삶을 성취하게 된다”라고 가르치며, 세속적 성공을 종교적 축복으로 포장한다. 한국의 조용기 목사 역시 ‘3박자 구원론’을 통해 영적·육체적 구원에 더해 물질적 축복을 구원의 하나로 강조했다.

종교는 어디로 가는가?

물론 평신도의 주술적 욕망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생존을 우선시하는 존재이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주술을 찾게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종교가 이타적 삶과 궁극적 구원의 목적을 망각한 채, 주술적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길 때 발생한다. 이때 종교는 더는 종교가 아니라, 특정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와의 동맹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종교가 정치와의 타협에 익숙해질수록, 종교 자체가 가장 경계하고 적대시하던 주술의 영역으로 미끄러지고, 정치와의 결합을 아무런 내재적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린 윤석열.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린 윤석열.

윤석열 정부와 정치–주술 동맹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도 주술화된 기성종교 세력이나 신종교 세력이 정치에 깊숙이 들어오는 등 주술과의 결합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합이 쉬운 이유는 권력이나 부와 같은 세속적 욕구 충족의 목적을 정치와 주술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서 극명히 대비된다. 현대 사회의 또 다른 지배체제인 ‘관료주의 국가 체제’는 계산성과 예측성을 앞세우는 합리성을 국정 운영 논리의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나 주술은 부적이나 점술, 그리고 굿 등의 비합리적인 수단을 활용한다.

윤석열 정권은 관료제와 합리성에 기반해야 할 국정 운영에 무속과 주술을 개입시키면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정부 시스템을 운영하였다. 심지어 계엄 선포 날짜를 점괘로 정했다는 의혹은 “내란 실패는 점을 잘못 쳐서”라는 조롱을 낳기도 했다. 주술과의 동맹은 나라의 운명을 주술에 맡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하였다. <다음 회에서는 ‘트럼프와 윤석열의 신앙 세탁’을 주제로 한다.>

글쓴이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

정태식은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사회과학대학원에서 사회이론과 정치·종교사회학 전공으로 철학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연구초빙교수와 사회학과 강의 교수를 역임하였고, 퇴직 후 경북대 인문학술원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거룩한 제국: 아메리카·종교·국가주의』등이 있고 최근에는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 트럼프와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 푸틴의 ‘러시아 세계’, 시진핑의 ‘종교 중국화’』(2025, 한울엠플러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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