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제로’인 나라를 세우려면
[변혜정의 안전한 세상을 위해] 산업재해 줄이기, 왜 해프닝으로 끝났나 정부·기업, 산재발생 줄면 곧장 관심 식어 누구도 예외없이 역할 맡는 시스템 수립을 정부, 소홀한 기업 다잡는 역할 절대 중요
권력의 힘으로 산업재해 줄이기
대통령이 모든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최대한 빨리 직보하라고 강하게 나가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업재해 감소에 직을 걸겠다고 했다. 이렇게 정부 차원에서의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새 정부의 이런 방향은, 안전보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단 “매우 고무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이제까지 어느 정부가, 그것도 권력의 힘이 가장 크다는 정권 초기에, 일하면서 다치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언론에 산업재해에 대한 기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공식적으로’ 지목된 SPC나 포스코이앤씨가 화들짝 놀라 이런저런 대책을 급하게 내놓는 것을 보면서 지금 ‘산업안전’이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던져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어쩌면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만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익히 알려진 일하는 방식에도 기대를 걸게 된다. 하지만,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기치를 사회와 기업에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려가 되는 부분 또한 적지 않다.
정부가 나설 이유는 명확하다
산업재해 예방은 단지 기술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노동의 구조, 사회의 분위기 및 문화, 노사관계, 산업재해 보상, 사람들의 인식 수준, 고용 및 임금체계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고민이 많은 영역이다.
근로자가 일하는 기업은, 그 목표가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획득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실현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흔히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의 이윤을 포기하고 먼 미래를 우선시하는 ‘선의의’ 경영진을 찾기는 어렵다. 기업의 특성상 이윤만 날 수 있다면 ‘간혹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산업재해, 특히 사망사고에 드는 비용은 감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할 이유가 없으므로 정부에서 감시 및 감독을 하고 처벌을 하고 벌금을 부과해서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노력하게끔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이재명 정부가 ‘근로자가 무의미하게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을 하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있다.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은 산재예방
하지만 이런 ‘위로부터의 변화’를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 대통령이 SPC를 방문하며 반복적인 산재 사망사고의 발생 배경으로 장시간 야간근무에 대해 언급했다. 그랬더니 SPC에서 바로 ‘초과 야간근무’를 없애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문구로 봐선 그럴싸해 보이지만, 전문가나 노조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실질임금을 보전하지 않고 초과 야간근무를 없애면 사실 근로자가 그 경제적 부담을 다 안아야 한다.
식료품 제조업의 기본급이 다른 업종에 비해 낮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그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장시간 야간근무를 선택하게 되는 근로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통령이 지적했으니 우선 이것부터 개선했다는 모양새를 만든 것 아닌가. 이런 식의 급조한 대책은 정부가 조금만 규제를 느슨하게 하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지금을 잠시 모면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고 진행하다가 몇 년 뒤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불행히도 계속 반복되어왔다. 급해진 기업은 갑자기 안전보건 투자를 대폭 늘리고 안전보건 전문 인력을 대거 뽑고,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개최하고, 경영진이 매번 현장을 몰아세우면서 산재감소율을 따지고 든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산재발생률이 조금 감소하면 회사의 산재예방 관리는 다 마무리된 것처럼, 산재예방을 계속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로 바뀌기 일쑤다. 안전보건 투자 개념은 사라지고 뽑아둔 안전보건 전문 인력은 호시탐탐 그 수를 줄이려 한다. 위로부터의 변화요구가 아래로까지 미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져 버린다. 이유가 뭘까?

누구도 예외없이 맡아아야할 산재예방
여전히 생산만을 최우선시하는 기업과 사회의 전근대적인 인식 수준을 확고히 뛰어넘을 만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시스템을 세우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든 기업이든 산업재해 예방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기업은 안전과 보건을 사후처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또 현장의 참여가 필수가 되는 조직체계를 만들고 그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의 전문 인력을 채용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데, 전문 인력이 회사 내에 있는 것은 장점일 수 있지만, 마치 안전보건은 그들만이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단점이 있다. 산업재해 예방은 모두의 문제이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그 내용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우리 회사의 안전보건 리스크가 무엇이고 이를 위해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모든 구성원에게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어야 한다.
이는 현장의 구체적인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가능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그 업무를 가장 잘 알고 현재 상황도 가장 근접해서 보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파악하고 예방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위험성평가의 의의는 관리자와 근로자의 ‘합심’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중요한 사전요건이 되는 ‘위험성평가’는 관리자가 위험성을 평가해서 그 결과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형식 대신에 관리자와 근로자가 합심해서 위험성평가를 하고 그 예방대책을 함께 세우면서 서로 소통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용들로 매뉴얼을 구성하여 교육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현장의 실제적인 리스크가 감소하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이건 비단 기업 내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지침을 만들 때도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각 업종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내용을 근로감독관이나 교수나 연구원 등이 속속들이 아는 건 불가능하다. 기업의 업종별 특성을 존중하여 실제적인 예방을 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지침 등이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소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이 시스템이라는 것은 각각의 역할을 가진 주체들 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를 제대로 만들어야 외부 상황이 바뀌더라도 기본적인 틀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다.
‘유기적’ 체계 만들기 얼마나 어려운지
‘유기적’이란 단어는 참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유기적인 체계를 실제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조직 관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관련 주체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대로 수행하도록 하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말이 쉽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단번에 되겠는가.
최근 핀란드 헬싱키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 1년간 ‘0’명이라는 통계가 화제가 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 제로’라는 정책 목표아래 도심과 주거 지역의 제한속도를 30km로 제한했는데 자동차를 천천히 운전한다고 해서 교통 정체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연구 데이터가 뒷받침됐다. 핀란드의 사례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큰 시사점을 준다. 정부의 역할은, 1) 명확한 목표를 수립하고 2) 데이터를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3) 규제하되 규제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4) 연구를 통해 정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5) 효과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6) 결국 이 모든 활동이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산업안전정책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영원한 ‘산업재해 제로’ 나라를 위해
정부가 찍어 누르듯이 처벌과 규제와 감시,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클 수 있다. 그것도 중요하다. 특히나 산업재해 예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의 문제, 산업재해보상보험 체계의 문제, 고용이나 임금체계의 문제, 위험의 외주화 문제 등 등 직간접적인 요인들이 하나둘이 아니기에 정부는 이것들도 공론화하고 차츰 해결해나가야 할 부담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한 사람만의 관심이나 역량에 의존하여 진행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사안을 한 번에 다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이 정부가 이제까지 못했던 내실 있는 중장기대책을 세우고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작업만큼은 이룰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회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안착되기를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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