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으로 아름답구나
한일 영화팬 동시 감동시킨 영화 ‘국보’ 평생 ‘가부키 최고배우’ 꿈꾼 예술적 삶 자신의 삶 대신 ‘악마와의 거래’마저 각오 최고가 되기까지 수 많았던 타인의 희생 인생의 끝자락에 ‘최고의 아름다움’ 연기
가부키 연기에 빠져든 야쿠자 보스의 아들
짙은 밤하늘에 하얀 눈이 나부끼던 1964년 겨울 어느 날. 일본 나가사키의 타치바나 야쿠자 조직 신년회 장소에서 이 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사차 들른 오사카 가부키 명문가의 2대손인 하나이 한지로는 이곳에서 열린 작은 가부키 공연을 보다가 온나카타 역(일본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을 드물게 소화해내는 아이를 발견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키쿠오. 아이러니하게도 야쿠자 보스의 아들이었다. 1년 후, 우여곡절 끝에 부모와 친척을 다 잃고 혈혈단신이 된 키쿠오를 한지로는 자신의 집에 받아들여 가부키를 가르치기로 한다. 한지로에겐 키쿠오와 동갑내기인 슌스케라는 아들이 있었기에 영 못마땅한 아내 사치코는 불만을 토로하지만 한지로는 아랑곳없이 밀어붙인다. 그날 본 키쿠오의 연기가 마음에 깊이 남아서였으리라.
가부키(歌舞伎). 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이 가부키에 대해 잠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일본 전통 연극으로, 춤과 연기와 노래가 총망라된 종합예술극, 지금으로 따지면 뮤지컬 정도에 해당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전통예술이다. 가부키 가문은 일본 사회 내에서 대표적인 명문가로 분류된다. 연예계에도 가부키 가문의 아들딸이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명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조연급으로 발탁되는 게 일반적이다. 가부키 가문은 습명(襲名)이라 해서 선대의 이름을 혈족의 후계자가 이어받는 전통이 있고 세습된 이름 앞에 몇 대째인지를 붙여 구분한다. 이 이름을 얻는다는 자체가 해당 이름의 모든 지위, 부와 명예를 물려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명문 가부키가의 피가 필요해”
혈연 중심의 가부키 사회에서 문하생은 아무리 뛰어나도 조연에 그칠 경우가 많고 가부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야 정통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같은 가부키 가문이라도 명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역할을 제대로 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가문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경쟁 또한 말도 못하게 치열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키쿠오와 슌스케가 나란히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아무 것도 가진 건 없이 가부키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문하생 아이와 명문 가부키가의 핏줄로 태어나 당연히 가부키로 평생을 살리라 키워진 귀공자 아이가 같은 길을 걷는 그 아름답지만 위태한 시간.
1972년. 청년으로 자란 키쿠오와 슌스케는 친구이자 경쟁자이자 동료로 함께 한다. 그러던 중 한지로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원래 맡기로 했던 <소네자키 동반자살>의 오하츠 역에 못 나가게 되자 대역으로 아들 슌스케가 아닌 키쿠오를 지목하고 이때부터 그 둘의 운명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선택된 키쿠오는 공연 직전 부들부들 떨며 슌스케를 붙잡고 얘기한다.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건 너의 피야.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어.” 한지로와 혈족으로 맺어지지 않은, 그저 문하생일 뿐인 자신의 연기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까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말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슌스케는 “네겐 재능이 있쟎아.” 다독이며 애써 받아들이려 하지만 혼을 다해 더할 나위 없이 연기하는 키쿠오의 공연 모습에 절망한 표정으로 사라지고 만다.

예술은 검이나 총보다 강하다
8년 후 1980년. 키쿠오는 한지로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늘 쫓기는 느낌이다. 게이샤인 후지코마에게서 딸을 하나 얻어 가끔 찾고 있으나 마음을 붙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하루에가 슌스케와 함께 사라진 것에 대한 상처가 남아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딸 아야노와 신사에 가서 기도를 한다. 무슨 기도를 하냐고 딸이 묻자 처연한 눈빛으로 말한다. “.. 악마와 거래한 거야. 가부키를 더 잘 하게 해달라고.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혈연 중심의 사회에서 기를 쓰고 살아내고자 애쓰는 스스로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혈육에 대해선 냉담하다. 가마를 타고 지나갈 때에 딸이 따라오며 아빠를 외치지만 흘깃 눈길 한번 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마는 키쿠오다.
당뇨로 눈이 멀어가는 한지로는 나타나지 않는 슌스케를 계속 기다릴 수 없어 키쿠오를 3대손 한지로로 지명하고자 한다. 한지로는 키쿠오를 꽉 부여잡고 당부한다. “부모가 없는 건 목숨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예술은 검이나 총보다 강하다. 너는 너의 재능으로 부모의 원수를 갚으면 된다... 약속한 거다.” 키쿠오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최고가 되라고, 재능으로 최고가 되어서 세상에 복수하라고 다짐하던 한지로였다. 그러나 세습 공연날, 한지로는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터져 나온 소리는 “슌스케” 였다. 옆에서 부둥켜 안고 소리치는 키쿠오는 보이지 않는 듯, 계속 슌스케를 부른다. 그 모습에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눈빛으로 실려 나가는 한지로를 바라보던 키쿠오는 끝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되뇌인다. 내가 슌스케 대신 여기 있어 미안하다고, 당신 아들이 아니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후계자로 정해졌다 해도 한지로의 마음의 끝자락이 자신에게 닿아 있지 않음을 절렬히 느끼는 키쿠오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찢어질 듯한 마음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1982년. 슌스케가 돌아온다. 하루에와 아들을 데리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말하는 키쿠오의 눈엔 숱한 감정이 스친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위해 키쿠오의 과거를 폭로한 슌스케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키쿠오는 가부키 세계를 떠나게 된다. “결국 이 세계는 피가 전부였어. 재능 따위 뭔 상관이야. 결국 핏줄만 남는다.” 허접한 식당에서 춤을 추고 희롱을 당하며 망가져가는 키쿠오에게 같이 따라나섰던 아키코가 묻는다. “어딜 보는 거야?” 키쿠오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어딜 보냐고?.. 뭘 보는 걸까?” 떠나온 가부키에 대한 열망이 그를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평생 최고의 아름다움을 좇아서
4년 후, 1986년. 키쿠오에게 가부키로 돌아오라며 만키쿠가 널 보잔다는 전갈이 온다. 만키쿠. 인간 국보. 가부키를 하는 모든 사람의 희망인, 당대 최고의 온나카타이자 아름다움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 그의 <백로 아가씨>는 키쿠오의 입에서 ‘아름다운 괴물’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오게 하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흔을 넘어 홀로 늙어가는 노인에 불과했다. 키쿠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챘지만 그다지 다정하지 않았던 사람. 찾아가니 아무 장식도 없이, 소박한 책상 하나 덩그러니 놓인 작은 다다미방에 쇠잔해진 만키쿠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여기는 말이지, 아름다운 게 하나도 없지. 그런데 왠지 마음이 편해.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고 마침내 누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평생을 최고의 아름다움을 좇아 살면서 자신의 인생은 오히려 그림자처럼 묻어두었던 이의 회한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하지만 곧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불타는 눈으로 키쿠오를 보며 말한다. “춤춰봐.. 나는 알 수 있어.” 꺼져가는 생명 속에서도 만키쿠는, 예술을 향한 열망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아, 예술이란.
1989년. 키쿠오와 슌스케는 다시 만나 공연을 한다. <도죠지의 두 사람>. 젊은 날 함께 했던 공연을 수많은 시간 돌아돌아 와서 다시 함께 하는 그들의 얼굴엔 안도와 교감이 자리한다. 무대 뒤편에서 서로 “물이 올랐더군.” 하며 웃음 지을 땐 행복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이 행복도 오래 못 가고 슌스케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된다.
1995년. “한 번 더 무대에 서고 싶어.” 말하는 슌스케에게, 이제 다른 한쪽 다리마저 잘라 내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그에게 키쿠오는 무대에 같이 서자고 한다. 그 옛날, 한지로가 키쿠오에게 대역을 부탁했던 <소네자키 동반자살>. 오하츠 역을 맡은 슌스케가 비틀거리며 엎어지고 쓰러져도 “이 모습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나만 할 수 있는 오하츠를 보여주고 싶어.” 말하던 슌스케를 기억하며 토쿠베이 역을 맡은 키쿠오는 그의 연기를 끝까지 지켜준다.
숱한 세월동안 사랑과 증오와 질투와 선망으로 함께 했던 일생의 친구가 가부키 배우로서의 인생을 마감하는 공연에서 키쿠오는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영혼을 끌어 모아 함께 한다. 같이 죽기 위해 오하츠를 먼저 죽이려는 마지막 장면, 칼을 들고 오하츠에게 한발씩 다가가던 토쿠베이의 모습에서 느껴지던 처연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인연이, 그 애정이 죽음 앞에 끝나가는 순간. 땀투성이가 되어 절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슌스케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역시나 눈물을 쏟으며 혼신을 다하던 키쿠오. 정지된 듯 천천히 흘러가던 그 장면에서, 말없이 오고가던 그 둘의 눈길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그들의 우정이 혹은 사랑이 느껴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울고 있었다.

마침내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되었지만
2014년. 이제 인간 국보의 반열에 오른 키쿠오가 한지로의 추모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사진기자로 마주친 딸. 알아보는 키쿠오. “당신을 아버지라 생각한 적 없어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 기억하세요. 악마에게 감사하십시오.”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키쿠오. 딸은 웃는 듯 우는 듯 이어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무대에 선 하나이 한지로를 볼 때마다 새해를 맞이한 것처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싹 다 잊고 이쪽으로 오라고, 본 적 없는 곳에 이끌려 가는 듯한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아빠. 정말로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되셨네요.” 아버지라 생각한 적 없다던 사람에게 아빠라 부르며 복잡한 감정을 전하는 딸. 그런 딸을 눈물 맺힌 눈으로 보는 키쿠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로 살지 못했던 세월. 가부키에 영혼을 바친 시간. 내가 잃은 것들. 내가 희생시켰던 것들. 그리고 스쳐간 인연들. 그런 것이었을까.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붉은 색으로 입술과 눈 주위를 칠하는 진한 가부키 화장 뒤에 숨겨진, 어쩌면 영원히 숨겨 두어야 할 나의 진정한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영화의 시작부터 줄곧 키쿠오가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마지막 <백로 아가씨>의 공연은 이 영화 전체를 집약하는 것이었다. 키쿠오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디로 향하시나요, 라고 묻는 기자에게 말한다. “오래도록 찾아온 게 있습니다. 어떤 풍경인데... 설명하기 힘들군요.” 그리고 떠올린 장면은 그 날, 아버지가 죽던 날, 밤하늘에 하나둘 떨어지던 하얀 눈송이였다. 하얀 눈이 얇게 쌓인 정원으로 뛰쳐나온 아버지는 옷을 벗어던지고 등의 문신을 드러낸 채 침입자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아들을 보며 ‘키쿠오, 잘 보거라. 네 눈으로 똑똑히 봐 두거라.’ 마음으로 말하던 순간 한 발의 총성이 들리고 총에 맞은 아버지는 붉은 피를 흘리며 흰 눈 위에 쓰러진다. 등을 보이며 쓰러진 아버지의 모습 위로 텅빈 밤하늘이 놓여 있었고 여전히 하얀 눈발이 나리고 있었다. 그 비장한 장면을 바라보는 키쿠오의 눈동자에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고통도 어려 있었지만 그 순간의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 놀라와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찌 보면 느껴서는 안 될 찰나의 희열이 영원히 각인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비극적이지만 지극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키쿠오는 평생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 수많은 인연과 희생으로 얻는 것
그리고 <백로 아가씨>. 그 옛날 만키쿠의 <백로 아가씨>에서 진심으로 시작된 가부키 배우로서의 키쿠오의 인생이 이제 스스로 인간 국보가 되어 백로 아가씨를 연기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결국 죽어가는 백로. 가부키를 위해 인생을 바친 키쿠오와 닮아 있지 않은가. 붉은 색 옷을 입은 채 무대에 홀로 서 있는 키쿠오는 내내 그려왔던 그 날의 장면과 드디어 만나게 된다. 객석이 순간 밤하늘처럼 짙어지면서 하얀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꿈인 듯 생시인 듯 바라보며 키쿠오는 조용히 읊조린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 순간 그는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다다른 것이리라. 그리고 그 절정의 장면에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정화되는 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두 번 보면서 그저 이 영화를 ‘최고를 위한 혈연과 재능의 대결’ 이나 ‘재일교포 3세 감독이 그린 가부키 영화’처럼 단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다. 예술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사람들과 그들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있을 뿐. 아마도 이 영화는 예술의 영역에서 온 인생을 바치며 사는 존재들의 가려진 인생과 처절한 노력을 더할 나위 없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화면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패왕별희>와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서편제>와 오히려 닮은 영화, <국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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