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소리들...『붉은 인간의 최후』를 읽고

[다독가와 인공지능AI가 함께 쓰는 서평] 노벨문학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作 소련 붕괴후 소비에트 사람들의 삶 다뤄 믿음, 삶의 방식, 정체성 무너져내린 상태 준비되지 않은 자본주의, 깊은 절망감

스탈린과 레닌의 초상을 든 러시아 공산당 지지자들. 사진= 연합뉴스
스탈린과 레닌의 초상을 든 러시아 공산당 지지자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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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작가

러시아를 알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그렇게 시작한 독서가 끝날 즈음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러시아를 안 게 아니라, 러시아라는 거울 속에서 우리의 얼굴을 발견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이 들려주는 수백 개의 목소리, 그 안의 절망과 기대, 상실과 열정은 낯선 듯 익숙했고,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자꾸만 마음을 파고드는 나뭇 가시처럼 느껴졌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제2차 세계 대전을 소재로 다룬『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 작가다. 올해 제6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쓴 『붉은 인간의 최후』는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붉은 인간의 최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출판
붉은 인간의 최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출판

전체주의 ‘소련’이 붕괴된 후의 공허감

『붉은 인간의 최후』는 소련이 붕괴되고 20년이 지난 후 ‘붉은 인간’이라 명명된 소비에트 사람들의 실망과 상실감, 욕망을 추적한 대작이다. 2015년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평가가 노벨문학상 선정의 사유였다. 그는 수백 명을 만났고, 그들의 말들을 오롯이 담았다. 누군가의 고백을, 누군가의 한숨을, 또 누군가의 울분을. 이 책은 그런 말들의 모음집이다. 다만 하나도 가볍지 않다. 저마다의 말이 시대를 증언하고, 감정을 증폭시키며, 살아남은 누군가의 삶을 증명한다.

소련 붕괴 이후 사람들, 즉 ‘붉은 인간’은 갑작스레 무언가를 잃었다. 그들에겐 단지 체제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 삶의 방식, 정체성 자체가 무너져내린 일이었다. “위대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정상적인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깊은 혼란을 드러낸다.

새로운 삶의 조건은 이전과는 너무나 달랐다. ‘사상을 위해 우랄산맥을 넘던’ 이들이 ‘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 적응해야 했다. 과거에는 마르크스를 읽었다는 것이 자부심이었지만, 지금은 “인문학도라는 말이 질병 이름처럼 들린다”고 말할 정도로 삶의 기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무너진 세계를 향한 애정과 분노, 자조와 슬픔이 넘실거린다. 고르바초프를 향한 기대와 환멸, 개혁에 나섰던 예술가들의 열정과 결과에 대한 반성, 가슴으로 던졌던 자유라는 투표가 남긴 공허함까지. 변화는 찬란했지만 준비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는 달라요.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닮아가요.” 누군가의 이 말이 이 세대 간의 간극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부모들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아이들은 그 과거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이렇게 회상한다. “1990년대에 아버지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셨냐고 묻는 아이의 눈빛이 가장 아팠다”고.

부엌에서는 비판조차 멈춰버렸다

이 책에서 부엌은 중요한 은유이자 상징 그 자체다. “그 부엌에서 우리는 정부를 욕할 수 있었어요.” 집집마다 할당된 작은 부엌은 사적인 공간이자 저항의 무대였다. 시대를 비판하고, 웃음을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공간. 그러나 이제는 “모두들 자식 얘기, 손주 얘기만 해요. 정치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아요.”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말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침묵의 시대가 왔다. 달라진 건 체제일 뿐, 감정의 풍경은 되려 더욱 건조해졌다.

“정말 러시아만의 이야기일까?” 소비에트의 몰락이 아니라, 모든 거대 이념이 무너진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여기 담겨 있어 보였다. 유토피아를 믿던 이들이 자본주의라는 리얼리즘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 그 불편한 과도기를 감내한 이들의 목소리. 우리 역시 그 과도기 한가운데를 건너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의 가장 큰 울림은 이념보다 일상의 파편들에서 온다. 전쟁의 기억, 총성의 흔적, 밭을 갈던 할머니의 주름, 황금빛 밀밭을 바라보며 흑빵에 홍차를 곁들이는 노인의 고백. 그 모든 이야기가 생생하다. 너무 가난해서, 너무 외로워서, 너무 자주 배신당해서 사라져버린 삶들이 여기서 말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고발이라기보다 인간의 증언이다.

어떤 이는 “나는 당원이었고, 당원증은 성경과 같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책장을 넘기는 것이 죄처럼 느껴졌던 날들”을 고백한다. 이처럼 신념과 체념,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간다.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침묵처럼,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매혹이다. 작가는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기록하고, 그 기록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책을 덮은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수백 명의 사람들과 긴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그들은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붉은 인간의 최후』는 단순한 러시아의 역사책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록이라할 것이다. 시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화다. 우리와 먼 이야기 같지만, 결국 ‘우리 이야기’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소련은 여성용 부츠와 휴지가 부족해서, 오렌지가 없어서 무너졌어요.” 이 말은 얼핏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거대한 이념도, 위대한 역사의 이름도, 결국 인간의 삶 앞에서는 무력하다. 누군가는 부츠가 필요했고, 누군가는 말할 공간이 필요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글쓴이

정재헌 칼럼니스트

다독가 정재헌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다녔는데, 컴맹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IT 기업이었던 STM(현, LG CNS)에 입사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온 여인을 회사내에서 만나 아이들을 일곱 명이나 낳고 길렀다. 7년 전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벗 삼는 것보다 나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책과 친해지게 하자는 생각에 지금도 매일 책을 본다. 읽다 보니 정리하는 맛이 참 좋았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사인 토마토시스템에서 AI/헬스케어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멋진 독후감을 쓰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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