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 너무 따분해!

『더 인간적인 건축 HUMANISE』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 한진이 옮김 / RHK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러닝 허브'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러닝 허브'

이 건물, 너무 따분해! 우릴 병들게 하는 건물

따분한 건축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이제는 ‘더 인간적인 건축’을 말할 때다

사람들은 왜 도시를 좋아하지 않을까. 분명 편리하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인데도 우리는 자주 도시에 지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그것은 직사각형의 회색빛 벽과 금속 유리로 덮인 건물들 때문이라는 것을. 『더 인간적인 건축』은 그런 깨달음을 하나의 확신으로 밀어붙인다. “이 건물, 너무 따분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의 회복,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인 토마스 헤더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디자이너다. 건물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성·창의성·인간미가 돋보이는 작업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건축가가 아니라 ‘제작자’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지 모른다.

그의 시선은 건축을 넘어서서 사람과 감정, 그리고 도시의 온도까지 설계한다. 그는 런던의 붉은 2층 버스를 다시 디자인했고, 올림픽 성화대를 만들었으며, 뉴욕에 떠 있는 공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우리는 왜 이토록 따분한 건물에 둘러싸여 사는가?

헤더윅 스튜디오가 다시 설계한 영국의 2층버스 '루트 마스터'
헤더윅 스튜디오가 다시 설계한 영국의 2층버스 ‘루트 마스터’

‘따분하다’는 말은 건축에 있어 가장 솔직한 비평일 수 있다. 현대의 건물들은 지나치게 효율적이고 매끈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감정을 잃고, 감각을 잃는다. 스트레스 수치는 올라가고, 병은 늘어간다. 건물의 디자인 하나가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듣는 순간에는 과장처럼 들리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기능만 있으면 되는 게 건물일까

이 책에서 헤더윅은 단순히 미학적인 선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더 인간적인 건축’은 사람의 감정, 행동, 관계, 그리고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그는 우리가 건물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건물은 곧 우리의 일상, 우리의 정신, 우리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건축가 헤더윅의 비판은 모더니즘의 유산에 닿는다. 기능이 미를 삼켜버린 시대, 직선과 평면이 모든 공간을 지배하게 된 이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예쁘다’는 말을 건축에서 금기처럼 여기게 되었다. ‘기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어울리는 논리다. 그는 묻는다. “도대체 왜 우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물을 짓지 않으려 드는가?”

그가 말하는 ‘인간적인 건축’은 기술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더 섬세한 기술이다. 다양한 재료를 이해하고,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고, 건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말 걸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나무 한 그루가 병원의 회복력을 높이는 이유처럼, 건물의 디테일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기분을 바꾸고, 관계를 맺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서울 한강 ‘노들 글로벌 예술섬’의 설계안 당선작인 토마스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 작품.
서울 한강 ‘노들 글로벌 예술섬’의 설계안 당선작인 토마스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 작품.

건물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렇기에 그는 말한다. “인간은 따분한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따분한 건물은 우리를 망가뜨린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이제는 건물의 외피를 바꾸는 게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건축가나 정치인이 아닌, 바로 우리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거창한 설계 능력이 없어도, 전문 지식이 없어도, 우리는 건물 앞에 서서 “이건 좋아” 또는 “이건 싫어”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그런 감각의 회복이 곧 도시를 바꾸는 첫 걸음이다.

건축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삶의 기반이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는 외벽 하나, 창문의 곡선 하나가 사실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공간은 너를 위한 것이야. 너의 감정을 생각하며 지었어”라고. 『더 인간적인 건축』은 그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귀를 틔워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눈을 갖게 한다. 이제 당신도 건물을 지나칠 때, 그 건물과 대화하게 될 것이다.

글쓴이

정재헌 칼럼니스트

다독가 정재헌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다녔는데, 컴맹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IT 기업이었던 STM(현, LG CNS)에 입사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온 여인을 회사내에서 만나 아이들을 일곱 명이나 낳고 길렀다. 7년 전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벗 삼는 것보다 나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책과 친해지게 하자는 생각에 지금도 매일 책을 본다. 읽다 보니 정리하는 맛이 참 좋았다. 코스닥 상장사인 토마토시스템에서 AI/헬스케어 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멋진 독후감을 쓰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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