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내란을 예방할 수 있을까

『내란 예방 경제학』을 읽고 “정치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좌절한 시민들은 위험한 선택을 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총칼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 무너지는 중산층, 지속될 수 없는 사회경제 구조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는 계엄군.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는 계엄군. 사진= 연합뉴스

시작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에서

원승연, 강신욱, 김혜원, 허석균, 주상영, 박복영, 지만수, 김계환, 정세은, 이선화, 임일섭, 박성욱, 박창균 등 열세 명의 경제학자가 함께 쓴 『내란 예방 경제학』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지난해 12월 3일, 있을 법하지도, 있어서는 안 될 사건—비상계엄 선포—을 목도한 뒤, 저자들은 질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히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정치학자, 헌법학자들이 하는 생각을 경제학자들이 했다. 그들의 관점은 어떻게 특별할까. 책은 그것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정치적 해설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구조적 뿌리를 경제에서 찾고, 다시금 경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도다. 저자들은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축적한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부한다. 독자로서 낯익은 경제 담론이 민주주의와 이렇게 긴밀히 얽혀 있다는 사실에 여러 번 무릎을 치게 된다.

책 '내란예방경제학' 표지. 출판사= 생각의힘
책 ‘내란예방경제학’ 표지. 출판사= 생각의힘

민주주의 위기의 경제학적 분석

첫 번째 주제는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에 관한 것이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꼽는다.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몰아친 결과, 많은 이들이 사회에서 밀려났고 그 틈을 극우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 미국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이 극우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노동자층이 민주주의 수호의 최전선에 섰다. 이 대비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불평등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성장 그 자체가 양극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분배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갈등은 증폭된다. 마치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나누는 방식을 두고 다투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인상 깊다. 불평등과 저성장, 두 가지 축이 겹치며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향해 수렴하지 못한 채 오히려 보수는 극단으로, 진보는 보수화되는 기묘한 정치 지형을 설명한다. 자산과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정치적 선호가 갈리고, 정당은 중간층을 붙잡기 위해 전략을 바꾼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합리적 타협 가능성이 줄어든다. 김혜원 한국교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청년 세대의 보수화, 특히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에 주목한다.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세대 갈등이 날카롭게 드러나는 오늘의 풍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을까

2부에서는 시야를 넓혀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 경제와 민주주의를 바라본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구조 변화를 직시한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고, 그 파급력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할 중산층의 토대가 약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평가한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보호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쌍둥이 위험’을 지적한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심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동시에, 국제 질서를 뒤흔든다. 美 러스트 벨트의 쇠락, 남유럽의 좌절, 이런 사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웅변한다. 정치의 역할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좌절한 시민들은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냉엄한 진단이다.

또한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중 정서를 짚는다. 반복되는 ‘중국 위기론’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 실제로 해로운 결과를 낳을 거라 경고한다. 부정확한 판단은 잘못된 대응으로 이어지고, 중요한 변화를 놓치게 한다. 세계 2위 경제와 경계를 맞닿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치명적 위험이라는 메시지다.

3부에서는 성장 회복을 위한 정책 전환을 다룬다. AI 혁명을 산업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재정 보수주의를 넘어서는 적극적 재정 정책의 필요성,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교육과 자치의 통합, 그리고 은행의 위험과 안전의 균형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된다.

마지막인 4부에서는 결국 민주주의의 중심축인 중산층 복원으로 귀결된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정책을 실거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을 자산 증식 수단이 아닌 주거 안정의 틀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신뢰 회복을 강조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후 소득 기반이 무너지면 민주주의 역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위기의 민주주의에 대한 처방, 우리에게 있다

이 대목에서 책의 제목,『내란 예방 경제학』이 다시 떠오른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총칼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 무너지는 중산층, 지속될 수 없는 사회경제 구조라는 사실이다. 경제적 토대가 무너질 때 사람들은 과격한 선택을 하고, 그 끝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

이 책은 답을 완벽히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민주주의와 경제를 따로 생각해온 독자라면, 두 축이 얼마나 깊게 맞물려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내가 고민해왔던 문제를 드디어 학자들의 언어로 확인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내란 예방 경제학』은 거대한 담론을 다루면서도 결코 추상적인 선언에 머무르지 않는다. 불평등, 저성장, 인구 구조, 글로벌 질서, 주택과 연금이라는 구체적 삶의 현장을 관통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임을 일깨운다.

독자로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진단은 날카롭지만 처방은 다소 추상적이다.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서 글은 종종 멈춰 선다. 정책 제안이 아니라 방향성 제시에 머무르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답을 주기보다 함께 찾자고.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 독자 각자에게 묻는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중산층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안정된 경제, 청년이 불안 없이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불평등에 좌절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곧 민주주의의 경제학이며, 내란을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라는 것을.

글쓴이

정재헌 칼럼니스트

다독가 정재헌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다녔는데, 컴맹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IT 기업이었던 STM(현, LG CNS)에 입사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온 여인을 회사내에서 만나 아이들을 일곱 명이나 낳고 길렀다. 7년 전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벗 삼는 것보다 나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책과 친해지게 하자는 생각에 지금도 매일 책을 본다. 읽다 보니 정리하는 맛이 참 좋았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사인 토마토시스템에서 AI/헬스케어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멋진 독후감을 쓰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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