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친 관세정책,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김성재 교수의 『관세 이야기』 트럼프 관세정책, 그 역사적 흐름 관세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꾼 사례들 관세 통한 보호무역, 시장의 왜곡 일으켜
국가의 흥망 가르는 ‘관세’
우리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을 이야기할 때, 자주 군사력이나 외교, 혹은 기술을 떠올린다. 그러나 종종 역사의 결정적 순간은 의외로 평범한 단어 하나에서 출발한다. ‘관세’. 오늘날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일견 따분한 세금의 일종처럼 보이는 이 단어는, 한국 최고의 연준(Fed) 전문가로 소개되는 김성재 미국 퍼먼대학교 경영학 교수가 쓴 『관세 이야기』에서 국가의 흥망을 가른 장치이자, 전쟁과 혁명, 자유와 억압의 한복판에 있던 중심 서사로 등장한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 이론서도, 또한 관세의 역사만을 나열한 연표식 해설서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 관계부터 21세기 미중 무역전쟁까지, 관세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트럼프의 미친 정책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트럼프의 미친 듯 보이는 정책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트럼프의 미친 듯 보이는 정책은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소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지지자인 MAGA 진영이 광범하게 믿고 있고 이미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트럼프 정책의 교본인 <프로젝트 2025>에 명시적으로 표현된 내용이다.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관세 부과의 필연성과 절차도 백악관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마이런의 논문에 명확히 묘사돼 있다.
이 책은 트럼프노믹스와 관세 정책을 잉태한 역사적 배경을 추적한다. 관세 부과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끝없이 관세를 올렸던 1920년대까지의 역사를 정리한다. -322페이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그저 충동적 선택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쌓여온 미국의 경제논리, 정치 이데올로기, 지정학적 이해관계의 종합적 산물이라는 것. 이 책은 그 복잡한 역사와 구조를 정리하고 해명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책은 단순히 과거를 나열하지 않고 그 속에서 문제의 흐름을 ‘이야기’로 엮어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독립전쟁의 출발점을 조세저항이 아닌 ‘관세전쟁’으로 규정하고, 당밀 조례나 설탕 조례, 차 조례 등을 통해 미국 시민들이 어떻게 경제적 억압을 정치적 저항으로 전환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설득력이 있다. 이는 ‘보스턴 차 사건’처럼 학교에서 외워 넘긴 사건들이 실은 매우 정교한 무역 정책의 충돌이었음을 드러내준다. 그 결과 ‘관세’는 단순한 경제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정치적 언어’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 미국의 관세 부과는 전 세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오랜 기간 잊혔던 관세가 21세기에 다시 등장하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에서 관세는 가장 익숙한 단어였고 온 나라를 둘로 나눠 싸우게 한 논란의 단어였다. 한 쪽에게 관세는 아름다운 단어였고 다른 쪽에게 관세는 혐오스러운 단어였다.”-195페이지
이 책의 미덕은, 거대한 세계사의 물줄기를 단단한 구조로 묶으면서도, 세부의 맥락을 잃지 않는 데 있다. 1930년 후버관세와 대공황, 독일의 나치화, 일본 군부의 대두는 단절된 사건이 아니다. 모두가 관세의 잘못된 사용이 낳은 연쇄 작용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현재를 읽는 데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트럼프의 슈퍼301조와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반도체 산업 규제,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의 유사한 정책 기조까지 모두 이 흐름 속에서 연결된다. 세계화의 반동으로 등장한 신보호주의가 어떤 배경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독자는 뉴스의 표제어가 아닌 그 이면의 구조를 읽을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다.
“후버는 1930년 ‘후버관세(Hoover Tariff)’라 불리는 ‘스무트-홀리 관세(Smoot-Hawley Tariff)’에 서명해 관세를 인상했다. 평균 관세율은 47~59%로 상승했다. 무려 2만여 품목의 관세를 60% 안팎으로 올렸다.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율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미국 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의 수출은 60% 감소했다. 전 세계 교역도 3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다. 수입되는 원자재의 가격은 급등했고 농업과 제조업은 해외 판로를 상실했다. 후버관세는 관세의 치명적 단점을 그대로 보여줬다. 후버 관세의 부과 후 대공황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나라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독일은 나치를 지지했고 이탈리아는 파시스트를 지지했고 일본에서도 극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관세를 잘못 쓰면 위험한 무기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줬다.” - 240페이지
관세는 경제의 한 줄기가 아니라 동맥이다
책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피터 나바로, 스티븐 마이런 같은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전략가들, 금본위제와 브레튼우즈 체제를 오간 국제금융 질서,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제재와 삼성의 기회 등은 경제사와 무역정책이 얼마나 실제 세계의 권력 재편과 밀접한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복잡한 그림을 마치 직소퍼즐처럼 맞춰 나가며, 독자로 하여금 각 조각의 의미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한 나라의 통화, 재정, 무역 정책이 어떻게 전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가장 적절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저자가 보여주는 균형 잡힌 시선도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관세는 국가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나친 사용은 무역전쟁과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보호무역은 때론 정치적 필요이지만, 시장의 왜곡과 비용을 수반한다. 저자는 이런 긴장 관계를 이념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 속 사례들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이 점에서 『관세 이야기』는 교육적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이다. 단순한 정답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경제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주는 친절한 입문서 역할도 한다. 화폐수량 방정식, 스태그플레이션, 공개시장조작, 비교우위 이론 등 익숙하지만 여전히 생소한 개념들이 현실 정치와 맞물려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설명하면서, 독자의 경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친구의 설명을 듣고 있나 느껴질 정도로 설명의 문체는 대화처럼 친근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쉬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무역과 금융,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둘러보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미국의 자국 중심적 무역 전략, 중국의 도전, 그리고 여기에 맞서는 각국의 관세 정책. 이 책은 말한다. 관세는 그저 경제의 한 줄기가 아니라, 곧 국제정치의 동맥이라고.
요컨대 『관세 이야기』는 우리가 뉴스에서 소비해온 ‘무역전쟁’의 표피를 넘어서 그 내면의 논리와 역사적 뿌리를 추적한 책이다.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관세’라는 단어가 결코 낯설지 않다. 오히려 친숙하고, 도전적이며, 동시에 우리가 마주할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미래를 위한 정책 설계를 준비하자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제안하는 현실적인 대응책도 담겨 있다. 단순히 과거의 관세 정책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제언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지 회고의 텍스트가 아니라 미래 전략서로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한쪽이 관세를 부과하면 다른 나라가 보복관세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 모두 기업이 제살 깎기로 가격을 내려야 하고 두 나라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보복의 난타전이 다른 나라로 확산하게 되면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예는 어떤 나라의 경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지 않는 한 일방적 관세 부과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무역기구 (WTO)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통해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 관세 부과를 억제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무관세 지대를 만드는 것도 최적 관세율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56페이지
특히 글로벌 경제가 복잡하게 얽히고 디지털 무역과 AI가 결합된 시대에, 단순한 ‘관세율 조정’이 아닌 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은 실천적 울림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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