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테이크’를 회복하는 여행의 시간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나는 왜 굳이 멀리까지 여행왔을까? 여행지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뭉텅이로 흘렀다는 것. 분절되거나 잘게 쪼개지지 않은 롱테이크였다. 왜 시간을 뭉터기로 보낸 게 중요할까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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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가치는 무엇인가. 난 오랫동안 알랭 드 보통의 통찰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는 익숙한 나를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낯설고 새로운 나로 살아갈 수 있다.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나는, 여행지에서 대범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다. 원래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묵은 나를 걷어내고 새 모습으로 지내다오면, 삶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가족 여행이라면? 결혼 이후에 알랭 드 보통의 지론을 더 이상 내세우기가 어려워졌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은, 엄밀히 얘기하면 새로운 장소에서 일상을 연장하는 일과 같다. 아이들을 챙기는 일은 여행지에서도 이어진다. 새 장소에 대한 설렘과 기대, 호기심이 기쁨을 주지만, 내 안에 묵은 것들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사건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난 시원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즐겁다. 그런 즐거움을 놔두고 굳이 멀리까지 와서 즐거움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여행에서 무슨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가족과 함께 한 제주 여행에서

난 제주의 해변에 앉아서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본다. 주변에서 큰 돌을 찾아와서 파라솔 받침대 위에 올린다. 제주의 바람이 파라솔 머리를 흔들어대지만 파라솔을 넘어뜨리진 못한다. 난 구명조끼를 주섬주섬 입는다. 반두를 들고 간조의 바다로 터벅터벅 들어간다. 작은 물고기라도 한 마리 잡아다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런 심정으로 물고기 잡기에 몰입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갯바위 아래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작은 물고기와 심리전을 벌인다. 그렇게 몇 마리의 눈먼 물고기들이 내게 잡힌다. 그 사이 시간은 뭉텅이로 흘러간다.

난 아이들이 물고기를 관찰하는 동안 파라솔 아래에 앉아서 좀 전까지 내가 보낸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름 즐겁기도 했고 기분도 좋긴 한데 어떤 생산성이 있었는지를 잠시 생각한다. 글 한 줄 쓰지 않았고, 책 한 자 보지 못했는데, 난 좋은 시간을 보낸 걸까. 뭔가 비어있긴 한데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유가 뭘까. 가족 간의 유대감, 아이들과의 추억, 휴식, 그것 말고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여행지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뭉텅이로 흘렀다는 것. 분절되거나 잘게 쪼개지지 않고 롱테이크였다는 것. 일상에서 롱테이크의 회복이야말로 현대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롱테이크: 영화를 제작할 때, 여러 개의 샷이나 장면을 멈추지 않고 길게 촬영하는 기법-편집자주).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필자의 제주 가족 여행 중 한 장면.

집중력의 위기

우리의 일상을 영상 편집기의 타임 테이블로 변환해 본다고 하면, 유리조각처럼 잘게 부서진 시간의 단편들 연속일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의 시간들은 좀 더 큰 덩어리로 이어질 것이다. 일상을 분절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이다. 우린 뭔가에 몰입하다가 수시로 네모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럴 때마다 일상의 필름은 숏 컷 된다. 우리 일상은 수없이 분절되고 토막 난다. 토막 난 일상에서 우리가 뭔가에 집중해서 생각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현대인들의 집중력 저하 요인을 많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헤친 책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미국에서 실시된 집중력에 관한 한 연구를 제시한다. 미국의 10대 학생들은 평균 65초마다 하는 일을 전환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성인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단 3분이었다. 미국의 연구지만,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집중력의 문제가 어떤 위기를 불러올지를 말한다.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폐해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어와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인의 문제가 누적되면 사회적 위기가 나타나는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나아갈 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진짜 문제를 파악해 공상과 구분하고, 해결책을 떠올리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을 요구한다. (...)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한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쉽게 이끌리고, 그러한 해결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같은 책에서, 집중력을 연구하는 덴마크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수네 레만은 이렇게 말한다.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상류층은 주의력이 처한 위험을 매우 잘 인식해 자신의 한계 내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은 조종에 저항할 자원이 적어서 컴퓨터 속 세상에 살며 점점 더 남에게 조종되는 사회가 올 것” 이라고.

사진 출처=_픽사베이
사진 출처=_픽사베이

집중력의 위기는, 결국 사람들의 깊은 사고를 방해하고 그건 주체성 상실로 이어진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얕고 분절된 정보들만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사라진다. 결국 내 고유의 것은 남지 않고 누구나 하는 생각, 강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생각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롱테이크를 회복하는 일부터

그럼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분절되어 가는 시간과 일상을 롱테이크로 바꾸는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손으로 뭔가를 만들면서도, 수시로 옆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타임 테이블은 분절된다. 뭔가를 하는 시간이 온전히 뭉텅이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부터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난 반두를 들고 물고기를 쫓아다니던 그 순간, 물 속에 들어가서 스노클링을 하던 그 순간,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을 때 손으로 모래를 파던 그 순간만큼은 중간에 컷 없이 롱테이크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생산적일 게 없는 시간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들 속에서 난, ‘이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생각의 가지를 뻗어냈다. 생산적이고 싶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걸 멈추었을 때, 생산적인 사고가 시작되는 아이러니를 난 가족여행에서 경험했다.

이 글은, 태양이 작열하는 제주 해변들과 땀을 흘리며 그저 걷기만 했던 제주의 어느 곶자왈 숲에서 뭉텅이로 보낸 시간의 결과물이다. 사실 제한이 있었다 뿐이지, 여행지에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꺼내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으로 여행하고 휴가를 보낸다.

이제는 여행에 새로운 가치 기준 하나를 세우면 좋겠다. 롱테이크로, 뭉텅이로 시간을 보내는 것. 웃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자유가 조금 제한된 가족여행만큼 이걸 잘 구현할 수 있었던 여행은 없었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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