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적’은 청중...사람이 문제다

[황진규의 클래식 음악현장]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얄궂은 사고 주범은 예전엔 사람, 요즘은 휴대폰 청중의 실수, 중간에 모르고 치는 박수 끝났을 때 격렬한 박수도 부담스러워

2016년 KBS에서 방송한 드라마 ‘페이지 터너’의 포스터. 페이지 터너는 전자악보의 등장과 함께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6년 KBS에서 방송한 드라마 ‘페이지 터너’의 포스터. 페이지 터너는 전자악보의 등장과 함께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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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연주자와 공연장을 중심으로 어떤 문제가 공연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청중을 제외하더라도, 제가 앞서 언급하지 못했던 공연 관계자 사례는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가 공연이 실패하는, 적어도 감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자’란 건 그런 거니까요.이번 글에서 그 이야기를 마저 해보려 합니다.

공연 관계자들의 얄궂은 방해

실내악이나 독창회에 가면 연주자가 아닌데도 무대에 나와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대신 넘겨주는 사람인데요, 이런 사람을 ‘페이지터너’라고 부릅니다. 본인들은 약간 자조를 섞어서 ‘넘순이’(여자) 또는 ‘넘돌이’(남자)라고 부르지만, 남이 그렇게 부르면 비칭이 될 수 있으니 정식 명칭으로 알아두는 게 좋겠죠. 어쨌든 이분들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큰 미덕입니다. 이들이 눈에 띈다는 건, 페이지를 잘못 넘기는 등 공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고를 일으킬 때뿐이니까요. 이런 사고는 퍽 드물지만, 아주 드물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도 ‘넘돌이’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단 페이지터너는 아니었고, 영어로 말하자면 ‘스크린터너’라는, 전혀 다른 역할이었죠. 오페라나 독창회 등 성악이 들어가는 공연은 가사 이해를 돕기 위해 스크린에 자막을 띄울 때가 많습니다. 이 자막을 넘기는 사람이 스크린터너입니다. 이들은 무대 맨 뒤나 별도의 조정실에 들어가서 작업하기 때문에, 페이지터너와는 달리 청중이 직접 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죠. 이들이 자막 넘기는 타이밍을 놓치면 노래와 반주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감상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람객이 공연장에 가면 진행요원을 만나게 됩니다. 공연장 출입구에서 표를 검사하거나 공연장 문을 여닫고, 공연장 내 좌석 안내를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분들이죠. 이분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객석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대처해야 하는 분들이니 사고라면 이골이 나 있거든요. 하지만 만사 예외 없는 경우란 없습니다. 진행요원이 차고 다니는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감상에 방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객석은 퍽 조용했는데 말이죠. 뭔가 주객이 뒤바뀐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규모가 크고 중요한 공연은 실황을 중계하거나 녹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방송용 카메라가 등장하는데, 보통 두세 대가 객석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무대를 찍습니다. 이럴 때는 카메라 바로 옆이나 뒤는 자리를 비우는 게 보통입니다. 시각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분들도 무전으로 연락할 때가 있어서 청각적으로 굉장히 거슬리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자리까지 청중으로 채우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공연 감상에 굉장히 거슬리는데, 항의하면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 그냥 보든지 환불받고 공연을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일부 할인 그런 거는 없거든요. 옛날 얘기고, 또 그렇기를 바랍니다만.

“휴대폰이 하이든을 죽였다.” 2013년 10월 23일에 스웨덴 예테보리 콘서트홀에서 일어난 사고. 이렇듯 휴대폰 사고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 당황해서 휴대폰을 떨어뜨리거나 하면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

‘청중의 적’은 바로 청중

이제 청중의 공연 감상을 방해하는 최대의 요인을 말씀드릴 차례가 되었군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바로 ‘청중’이 그 요인입니다. 지난 글까지 합쳐서 앞서 말씀드린 모든 요인을 합쳐도, 청중에 미칠까 말까 합니다. 오죽하면 ‘관크’라는 신조어가 다 생겼겠습니까? ‘관객 크리티컬’을 축약한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크리티컬이란 ‘크리티컬 대미지(치명타)’를 의미합니다. 괜한 호들갑이라고 여길 일이 아닌 게, 실제로 다른 관객/청중의 행동은 내 감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예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공연장에서 타인의 방해는 오감 가운데 미각을 뺀 나머지 전체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시각은 앞사람 키가 너무 크거나, 공연 중에 부산스레 움직이는 경우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그래도 이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눈만 감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공연 중에 휴대폰을 보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경우 100% 해결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듯도 합니다.

어쨌든 눈을 감았다 칩시다. 그럼 청각, 후각, 촉각이 남죠? 일단 후각부터 얘기해 보죠. 참 난감한 문제인데, 앞사람이 ‘가스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겪어본 일입니다. 공연 중간에 나갈 수도 없고, 참 난감하더군요. 촉각은 옆 사람이 팔을 건드리거나, 뒷사람이 등받이를 발로 찬다든가 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청각 테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소한 문제입니다.

제 기억으로 20세기 공연에서 문제가 되는 ‘청각 테러’는 단 하나, 기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간혹 얼마나 심했던지, 여기가 공연장인가 폐병원인가 싶을 때도 있었죠. 그러던 것이 21세기 들어서면서 기침은 줄어든 대신 휴대폰 벨소리 사고가 자주 나게 됐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가 유난히 자주 들리게 됐는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외에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공연장처럼 주변이 조용할 때는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입니다), 생수통 우그러뜨리는 소리 등등 요즘은 온갖 소음의 백가쟁명이라고 할 그런 상태가 돼버렸죠.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4악장. 최희준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이다. 악장 후반부에 전체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쉬는 장면이 나오는데(이 영상에서는 9분 33초경), 이 대목은 예로부터 ‘모른다 박수’가 자주 터지는 사고다발구역(!)으로 유명하다.

‘모른다 박수’와 ‘안다 박수’

박수가 때로는 청각 테러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모른다 박수’가 많았죠. 악장 사이, 또는 악장 중간에 오케스트라 전체가 쉬는 순간(이걸 ‘총휴지’라고 부릅니다)에 곡이 끝난 줄 알고 치는 박수 말입니다. 이 ‘모른다 박수’는 서서히 줄어드는가 싶더니 코로나 이후 다시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안다 박수’도 있죠. 곡이 끝나자마자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마구 박수를 치는 경우 말입니다. 여기에는 높은 확률로 ‘브라보’ 소리도 포함됩니다. 근래에는 이 두 박수가 섞여 시도 때도 없이 박수가 터지는 추세입니다. 이외에도 어린 자녀를 동반하고 공연에 온 가족이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등 ‘관크’의 종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이런 사고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음악을 얼마나 아느냐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좀 극단적인 경우가 되겠습니다만,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객석 맨 앞줄에 앉은 채 두툼한 악보를 펴놓고 ‘지휘’를 하는 관객을 본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을 몰라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겠습니까? 차라리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겁니다. 그냥 ‘나 못지않게 다른 사람도 공연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거기에 적당한 ‘눈치’가 더해진다면 적어도 자신이 남들에게서 손가락질받을 일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휴대폰을 공연 전에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고, 물건은 바닥에 미리 내려놓는다면 사전 대비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공연 중에 재채기가 터지는 등 생리 현상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알아서 잘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코와 입을 꽉 틀어막고 머릿속에서 터뜨린다는 느낌으로 재채기를 하는데, 머리가 띵 울리기는 하지만 아직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공연 감상과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하고, 그다음에는 이 시대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글쓴이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는 월간 <그라모폰 코리아>에서 편집기자로 근무했으며, 월간 <코다>, <인터내셔널 피아노>,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콰이어 앤 오르간>, <안단테>, <라 뮤지카>, <월간 SPO> 등의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였다. 또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서울스프링실내악음악제, 금호아트홀 등의 프로그램 노트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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