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우크라이나 작곡가 이야기
[황진규의 클래식 음악현장] 국민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 음악 추구 단순한 반복, 정서적 체험 느끼게 해 “새로운 음악 아닌, 이미 존재한 것의 응답”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선에 북한이 파병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확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도 살상무기와 군인을 보내려는 움직임까지 있고요. 이런 작금의 상황을 보자니, 문득 예전에 참관했던 어떤 공연이 떠오르더군요.
직업상 공연을 많이 보는 편이긴 하지만, 기억력이 유난히 좋은 것도 아니어서 모든 공연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공연도 더러 있죠. 지난 2022년 4월 8일에 열렸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도 그 가운데 하납니다. 그런데 이 공연이 특별했던 건 연주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연주도 훌륭하긴 했지만 다른 점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단 얘기죠.
당시 서울시향 상임지휘자였던 오스모 벤스케가 무대 위로 걸어나왔을 때, 저는 으레 그랬듯이 곧바로 공연이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청중에게 말하기 시작하더군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비극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의미에서, 우리는 본 공연에 앞서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찬가 2001’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연주가 끝난 뒤에는 박수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예정에 없던 곡이 프로그램에 급히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좋아했고 관심을 가졌던 작곡가이지만, 그의 곡을 실연으로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쓸린 상황에서 ‘찬가’라니,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발렌틴 실베스트로프는 어떤 작곡가?
짐깐, 이 작곡가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므로 그에 대한 설명부터 조금 해야 할 것 같군요. 발렌틴 실베스트로프는 1937년 9월 30일에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소련의 키예프라는 곳이죠. 그의 국적은 소련이 1991년에 무너진 이후에 비로소 우크라이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베스트로프의 음악은 그의 생애 대부분에 걸쳐 러시아 음악의 일부로 여겨졌죠.
사실 이런 현상은 러시아 음악사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합니다. 낭만주의 작곡가 라인홀드 글리에르는 키이우 태생이었고, 글리에르의 문하로 20세기 중반 러시아 음악계를 주름잡은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출생지는 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이므로 혹자는 그 역시 우크라이나 작곡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지금도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음악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죠.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실베스트로프는 우크라이나 작곡가라는 뚜렷한 자각 아래 작곡하고 있으며 살아서 조국의 독립을 목도했기 때문에 어느 모로나 이제는 우크라이나 작곡가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조국을 대표하는 원로 작곡가로서 세계에 우크라이나 음악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로운 음악을 쓰지 않는다”
워낙 내성적이고 세간의 시선을 기피하는 인물인 탓에 그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 작곡가들(대부분 러시아인입니다)는 일찍부터 실베스트로프와 그의 음악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는 오늘날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죠.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이란 ‘미니멀리즘’에서 파생한 음악 사조로, 미니멀리즘이란 음악의 기초적인 재료라 할 수 있는 음형, 화성, 선율 등을 극히 단순한 형태로 제시하고 이를 기본 단위로 삼아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무한 반복하는 음악을 가리킵니다.
이 미니멀리즘이 미국에서 확고히 자리잡은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북유럽 및 동유럽에서 여기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사조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이죠. 이 사조는 주로 반복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원조격인 미니멀리즘과 비슷하지만, 반복 자체를 음악의 구조로 삼는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종교적이거나 깊은 정서적 체험(즉 ‘스피리추얼’한 것)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반복을 사용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즉 미니멀리즘에서는 반복 자체가 수단이자 목적이 되는 반면에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에서 반복은 엄격하게 수단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실베스트로프는 조지아(예전에는 그루지야라고 불렀는데,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습니다)의 기야 칸첼리(1935~)와 더불어 스피리추얼 미니멀리즘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원래는 실베스트로프 역시 여느 현대 음악가처럼 전위적인 음악을 썼지만, 공산 당국의 압박과 내면의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서서히 기존 어법에서 탈피하기 시작했고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에는 현재의 스타일로 곡을 쓰고 있죠.
실베스트로프는 “나는 새로운 음악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자 그 메아리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대로 그의 음악은 중세 성가처럼 들리기도 하고 낭만주의 시대의 소품이나 심지어 뉴에이지 음악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그의 음악은 지나간 모든 시대와 그 음악에 대한 회고이자 추도사이며, 현대음악에 거부감을 가진 이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찬가 2001’에 담긴 의미
‘찬가 2001’은 실베스트로프가 2001년에 쓴 작품입니다. 이때 온 세계는 밀레니엄, 다시 말해 ‘새로운 천년’이 온 것을 축하하고 있었죠. 그러나 당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이것은 약간 배부른 타령이었을 겁니다. 독립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던 이 신생 국가는 국가와 사회 체제를 새로 세우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제2대 대통령인 레오니드 쿠치마의 부패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정치는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백 년에 걸친 동화(同化) 이후에 러시아와 다른 우크라이나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꿈도 못 꿀 얘기였겠죠. ‘찬가 2001’이 제목과는 달리 명랑하거나 흥분되는 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야 비로소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현악으로만 연주하는 곡으로,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구슬프게 들리는 작품이죠.
2022년 4월에 있었던 공연 당시 제가 받았던 인상도 그랬습니다. 막상 들어보니 이 곡은 ‘찬가 2001’(Hymn 2001)보다는 ‘애가 2022’(Elegy 2022)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려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2001년의 희망이 아닌 2022년의 비극을 노래한 작품 같았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제야 벤스케와 서울시향이 ‘찬가’를 굳이 프로그램에 넣은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죠.
2001년에 전 세계를 뒤덮었던,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감은 이제 그 1/5이 지난 지금 쓰라린 환멸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당시에 전 인류가 기대했을 진보는 이제 질병(코로나19 바이러스)과 전쟁이라는 오래된 비극으로 대체되었고요. 그리고 실베스트로프의 ‘찬가’ 역시 새 시대에 대한 희망보다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상실감과 그에 대한 잔잔한 위로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그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진보’보다는 ‘평화’와 ‘자유’라는 해묵은 가치들의 회귀 말이죠. 그의 위로는 정말이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대평원을 지닌 나라의 작곡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곡을 쓸 수 있었으랴 싶을 정도로, 실베스트로프가 자아낸 선율은 매 순간 우크라이나 국기처럼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서 물결치는 황금빛 밀밭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새로운 찬가를 꿈꾸며
“내가 죽거든 나를 언덕 위에 묻어주오.
넓게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에!
들판과 끝없는 초원, 드니프로의 강변을
내 눈이 볼 수 있도록, 내 귀가 강의 포효를 들을 수 있도록.“
실베스트로프가 2014년에 쓴 합창곡 ‘두 폭의 제단화’의 가사입니다.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 타라스 셰브첸코(1814~1861)가 1845년에 쓴 시 ‘유언’에 가사를 붙인 곡이죠.
그러나 우리로서는 다행히도 실베스트로프에게는 아직 이런 결말이 닥치지 않았습니다. 공연에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작곡가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급히 독일 베를린으로 피신해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고, 제가 알기로는 지금도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부디 그가 끝까지 전쟁의 참화를 피해 살아남기를,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 후 새로이 태어난 조국의 밝은 미래에 바치는 또 다른 찬가를 쓰게 될 날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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