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 어떨 때 실패할까
[황진규의 클래식 음악현장 ] 공연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들(1) 장한나처럼 연주중 현이 끊어진다면 공연장에 에어컨이 고장나 있다면 연주자와 시설에서 생기는 문제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1877년에 쓴 장편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입니다. 여러 상황에 두루 쓰기 좋은 말이라 지금도 폭넓게 인용되죠. 클래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공연은 대개 비슷하죠.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음악가들이 합심해서, 멋진 해석으로 청중을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앞으로 말씀드릴, 부정적인 요인이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이 부정적인 요인은 온갖 상황에서, 공연에 참여한 모든 관계자에게서 발생합니다.
‘악마는 세부(細部, detail)에 깃든다’는 말이 있죠. 20세기 건축을 연 위대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입니다. ‘신은 세부에 깃든다’가 원래 발언이었다고도 하는데, 사실 이 둘은 사실상 같은 뜻이죠. 세부에서 악마가 깃들 자리를 없애고 나면, 그 자리에는 신이 깃들 테니 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연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망치는 여러 요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주자의 잘못이나 실수
물론 음악가가 제시하는 해석이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좋은 공연이 나올 수 없겠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제외하려 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좋은 해석’이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대답해야 하는데, 그건 이 자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문제니까요.
일단 연주자의 ‘멘탈’, 즉 정신적 강인함이 관건이 될 겁니다. 어느 호른 주자는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는 질문에 “실수를 해도(이걸 업계 용어(?)로 ‘삑사리가 났다’고 표현하죠) 그냥 넘어가는 대담함”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연주자가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이라면 자신의 실수 때문이건 외부 요인 때문이건 간에 거슬리는 것을 그대로 넘기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이후 공연에 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연주자의 컨디션도 문제가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악가가 암에 걸렸다 해도 초기라면 무대에서 훌륭하게 노래할 수 있겠지만 감기에 걸린 성악가는 그럴 수가 없거든요. 더구나 경력이 오랜 연주자는 누구나 직업병을 달고 살기 마련입니다. 피아니스트라면 손목이 터널 증후군에 걸리거나 손가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실제로 로베르트 슈만이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전향한 것은 손가락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언제나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는 자세 때문에 척추 측만증이 생길 수 있고요. 이런 고질병을 평소에 잘 다스려야 좋은 공연을 들려줄 수 있을 겁니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한창나이에 무대와 세상을 떠나야 했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같은 경우라면 그저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때로는 연주자의 사소한 부주의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첼로 아래쪽에는 긴 쇠막대가 달려 있는데, 이를 ‘엔드핀’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없던 시절에는 연주자가 첼로를 다리로 감싸 고정한 채 연주해야 했는데, 무척 불편했기에 엔드핀이 개발된 겁니다. 무대 바닥에 첼로를 고정함으로써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기 쉽게 만들어주죠. 그런데 고정이 제대로 안 돼서 연주 도중에 첼로가 미끄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딱 한 번 봤지만, 사실 그 한 번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죠.
피아니스트가 연주 도중에 너무 세게 친 나머지 피아노의 현이 끊어지거나, 현악 주자가 현을 끊어먹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활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활털이 끊기는 경우는 공연에서 흔히 일어나고, 끊어진 것만 제거하면 되거든요. 현을 팽팽하게 당겨놓은 상태에서 너무 세게 압력을 가할 경우 끊어지게 되는데, 강철 현을 사용하는 오늘날에는 무척 드문 현상입니다만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피아노건 현악기건 간에 공연을 중단하고 악기를 교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공연의 맥이 끊기니 김이 빠질 수밖에 없죠.
연주자와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이쯤 해두고, 이번에는 다른 얘길 해보겠습니다. 원래라면 관객/청중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건 얘기가 길어질 게 뻔해서 다른 주변적인 사항부터 다루겠습니다.
공연장은 완벽한 시설일까
일단 공연장 자체가 공연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연장이라면 당연히 적합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규모 행사를 치를 목적으로 크게 지은 공연장일수록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자리가 많아집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다목적용으로 지은 공연장은 음향 조건(이걸 ‘홀톤’이라고 합니다)이 클래식에는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클래식 공연은 연극 등 다른 공연에 비해 잔향, 즉 음의 여운이 남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목적홀은 클래식에만 쓰지 않기 때문에 잔향을 평균해서 설정하고 짓게 됩니다. 그러면 클래식에서는 아무래도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죠. 참고로 ‘ㅇㅇ문화회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연장은 대개 다목적용입니다. 요즘에는 음향 반사판을 써서 잔향을 늘리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때로는 관객 수도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꽤 쓸만한(?) 흡음재, 즉 소리를 흡수하는 소재라고 하죠. 청중이 너무 없을 때는 텅 빈 강당에서 연설하는 것처럼 소리가 웅웅 울리게 되고, 반대로 객석이 꽉 찰 경우에는 울림이 줄어듭니다. 보통 객석이 80% 정도 찬 경우를 기준으로 음향을 설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누굴 끌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건 그냥 감당할 수밖에 없겠지요.
공연장 자체가 잘 지어졌다 해도 운영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공조장치 문제가 있을 수 있죠. 에어컨을 세게 틀 경우 장치 근처에 앉은 사람은 소음 때문에 공연을 즐기기 어렵게 됩니다. 반대로 전혀 안 틀 경우에는 찜통더위가 되죠. 잘츠브루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를 본 적이 있는데요, 성악진과 오케스트라, 지휘자, 심지어 무용단까지 실로 환상적인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에어컨이 고장나는 바람에 공연 내내 땀을 흘리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공연장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한여름에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었으니 정말 고역이었죠. 저는 그냥 공연에 빠져들기로 하고 무시했지만, 함께 간 일행 가운데는 거의 탈진 직전까지 간 분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엉뚱하게 무대에서 말썽이 일어날 때도 있죠.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라는 바로크 전문 바이올리니스트가 내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보면대 위에 놓아둔 악보가 자꾸만 펄럭이더군요. 연주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두 팔을 치켜든 뒤 그대로 나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에 돌아와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말이죠.
이 사고는 제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정말이지 ‘악마는 온갖 세부에 깃드는구나’ 하고 깨달은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환기가 안 되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어느 공연에서 공기가 너무 답답해 1부가 끝나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탈주(?)를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실례되는 행동이고 바랐단 바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죠.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다음 순서에서는 인적 문제, 즉 청중과 기타 공연 관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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