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나무의 소통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생명체 나무의 신비한 소통능력 외톨이 나무는 살아남지 못해 나무 자르는 인간도 지구의 외톨이

사진출처= 픽사베이.
사진출처= 픽사베이.

▶ 유튜브로 칼럼 듣기

식목일 즈음에 떠올린 소설 속의 나무

어릴 적, 4월은 나무의 달이었다. 공휴일이었던 식목일이 위풍당당하게 붉은 완장을 차고 있었고, 붉은 황토가 드러난 산에 수백 그루의 묘목을 심는 장면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어린 마음에도 나무의 영토를 늘리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업적 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요즘 식목일은 예전과 같은 기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에 더 중요하고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공휴일이라는 붉은 완장이 사라져서일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해 우리는 확실히 나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작아졌다.

조용한 식목일을 맞이하면서, 어릴 적 한 책에서 읽었던 숲 속 나무들의 소통장면들이 떠올랐다.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들은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1995년에 출간되었던 그 책은 지금은 절판된 김하인 작가의 소설 <왕목>이다. 김하인 작가는 우리에겐 <국화꽃 향기>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다.

소설 <왕목>은 태조 이성계가 훗날 경복궁 복원에 사용하라고 어디엔가 심었다는 64그루의 왕목 소나무를 둘러싼 추리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경복궁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일본문화개방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었다. 그런 현실 배경 속에서 작가는 일본이 우리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소나무만 공격하는 강력한 해충을 만들어 살포하고, 사람들과 숲의 나무들이 그 해충의 침략을 물리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썼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일본의 음모를 밝히고 저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활약을 첩보물처럼 그리고 있지만, 내가 강한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숲 속 나무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소통하는 부분이다. ‘과연 나무들의 소통 장면도 작가의 상상이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숲과 나무 연구서들을 살펴보니, 나무들 사이의 소통과 긴밀한 네트워크는 나의 상상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무가 소통하는 방식

겉으로 보기에 숲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생존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나무들은 수종이 다른 나무들을 몰아내고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해 제공권과 지상권 쟁탈전을 벌인다. 치열하게 가지와 뿌리를 사방으로 뻗으며 곤충들을 불러들여 상대방을 죽이기도 한다.

경쟁도 하지만, 나무들은 서로 돕기도 한다. 나무에게 치명적인 해충이 등장하면, 나무는 주변에 경고 페로몬을 발산한다. 경고를 받아들인 나무들은 몸속에서 독극물이나 무기를 만들어 대응한다. 소설에선 이런 대응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소나무(124)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리기다소나무(58) 줄기에 풍뎅이가 몇 마리 연이어 날아와 붙는 것을 보았다. 뿌리와 줄기를 타고서 또 한 떼의 개미들이 올라오자 리기다소나무(58)는 화학 물질인 경고 페로몬을 주위 나무들에게 발산하였다.”

“풍뎅이들은 여전히 리기다소나무(58)의 갈라진 줄기 틈에 주둥이를 박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매사 유비무환이 최고의 전략이었다. 대화 페로몬을 끊어 말을 마친 소나무(124)는 익숙한 솜씨로 자신의 뾰족한 나뭇잎 속에 비축해 두었던 석탄산을 분비해서 곤충들이 먹을 수 없도록 잎을 아주 쓰디쓰게 만들었다. 또한 두꺼운 외피인 줄기의 나무 껍질 사이 터진 부분을 독성이 있는 송진으로 메꿔 완전한 철옹성 체제로 나무 전체를 보강한 뒤 리기다소나무(58)를 바라보았다.” -김하인, <왕목> 중에서.

독일의 산림 전문가 페터 볼레벤의 책 <나무 수업>에서는 나무들의 다양한 네트워킹 방식이 소개된다.

우선 <왕목>에서 그려진 것처럼 나무가 내뿜는 비밀스러운 향기는 나무의 대표적인 언어다. 아프리카의 기린이 ‘우산 아카시아’ 잎을 먹으러 다가오면, 기린이 잎에 입을 대자마자 유독 물질을 잎으로 보낸다. 몇 분 안에 도착한 유독 물질을 기린은 알아차리고 다른 나무로 이동하는데, 100m나 떨어진 곳으로 간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잎을 먹힌 나무가 주변에 경고 가스를 발산하여 적이 왔다는 신호를 하고, 주변의 나무들도 바로 유독 물질을 내려 보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기린은 나무들의 시스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경고를 못 받은 먼 거리의 나무의 잎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나무의 소통 모습을 보여주는 책들. '왕목'과 '나무 수업'
나무의 소통 모습을 보여주는 책들. ‘왕목’과 ‘나무 수업’

나무는 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영양분을 나누고 위험 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페터 볼레벤은 숲에서 400~500년은 된 아주 큰 나무의 그루터기를 발견했다. 근데 놀랍게도 그루터기의 일부분(테두리)을 칼로 파보니 초록색 층이 나왔다. 그건 살아 있는 나무줄기에 저장된 영양분에서나 볼 수 있는 색깔이다. 잎이 없는 나무는 광합성도 못하는데 수백 년 동안 살아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된 나무의 일부분이 살아 있었던 데엔 어떤 비밀이 있었던 걸까.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들의 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이웃 간의 교류는 뿌리 끝을 감싸며 자라 그 뿌리의 영양 교환을 돕는 균류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직접 서로 뿌리가 뒤엉켜 하나의 뿌리처럼 결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략)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그 나무를 둘러싼 주변의 너도밤나무들이 그것에게 당을 공급하여 그것의 생명을 유지해 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페터 볼레벤, <나무 수업> 중에서.

향기를 통한 나무들의 소통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나무 내부의 신호 전달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공기를 통하면 먼 거리에 신속하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향기는 바람의 세기, 방향에 영향을 받는다. 바람의 반대 방향이나 너무 먼 거리에선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나무는 이를 보완할 체계도 갖고 있다. 바로 뿌리에 붙은 균류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균류는 인터넷 광섬유 도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얇은 선들이 지하로 뚫고 들어가 상상할 수 없는 밀도로 그곳을 꽉 채운다.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흙에 몇 킬로미터나 되는 길이의 균사가 들어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균류 하나가 몇 백 년이 흐르는 동안 몇 제곱킬로미터까지 뻗어 나가 온 숲을 네트워크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균류는 그런 선을 이용하여 한 나무의 신호를 다른 나무에게로 전달하고, 덕분에 나무들은 곤충이나 가뭄, 기타 위험의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페터 볼레벤, <나무 수업> 중에서.

인간 세계의 은유, 숲

외톨이 나무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가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은 함께 있을 때 살아남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 최강의 존재가 된 건, 함께 협력했기 때문이다. 인간끼리 협력해서 지구에서 인간을 당해낼 생물은 없게 되었지만 이제 우린 환경의 파괴로 공멸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 사이의 연대를 넘어서 다른 생명들과의 연대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얼마 전에 슬픈 뉴스를 보게 됐다. 전주시가 홍수 예방을 한다는 구실로 전주천과 삼천 주변의 버드나무 330여 그루를 잘라냈다는 뉴스였다. 전문가들은 나무들이 홍수를 유발할 정도로 밀식된 상태가 아니며 잘라낼 정도는 아니라고 시에 의견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주시는 작년 3월에 이어 올해 2월에도 벌목을 강행했다. 환경 단체는 전주시장이 공약 사업을 위해 벌목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비판한다. 공약 사업은 수변 인프라 조성 및 홍수 피해 예방 등이다. 나무를 잘라낸 자리에 인공폭포, 물놀이장, 전망대, 체육시설, 공연장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버드나무가 무성할 때 찍은 전주천의 사진과 나무들이 잘려나간 하천의 비교 사진을 보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3월1~31일 ‘잘려간 전주천의 시간’ 챌린지를 진행했다. 전주천의 예전 사진과 버드나무가 사라진 삭막한 사진을 비교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챌린지를 통해 난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3월1~31일 ‘잘려간 전주천의 시간’ 챌린지를 진행했다. 전주천의 예전 사진과 버드나무가 사라진 삭막한 사진을 비교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챌린지를 통해 난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전주천의 버드나무들은 톱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급박하게 경고 가스를 공기 중으로 발산했을 것이다. 함께 살아남자고, 대비하자고 외쳤을 것이다. 서로를 걱정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은 날카로운 톱에 허망하게 잘려 나갔다. 수십 년의 세월과 기억들도, 어떤 존재들에겐 우주였을 생태계도 파괴되었다. 이런 일들은 인류를 지구의 외톨이로 만들고 말 것이다. 외톨이 나무처럼 외톨이가 된 인류도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