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채진원 경희대 교수
  • 시사
  • 입력 2024.03.27 11:14
  • 수정 2024.04.02 16:02

유권자들이 ‘박용진 제거사건’에 회초리 들어야

대한민국 정당사에 남을 '박용진 사례'
이재명 1인 사당화와 경쟁자 제거 '사천'
주인인 유권자에게 돌려줘야할 결정권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호되게 심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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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는 누구를 심판할까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은 정당과 후보들이 유권자에게 심판을 받는 날이다. 잘했으면 표를 받을 것이고, 못했으면 표를 잃을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거야(巨野) 심판론’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내걸고 유권자에게 서로 상대를 심판해달라고 하고 있다.

유권자들 중에는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지 이미 정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도 많다. 유권자들이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정치권이 진행한 선거운동방식은 대체로 정책과 공약을 중심으로 한 포지티브 캠페인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불리한 구도속에 가두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책과 공약에 대한 검증보다는 흑색선전(마타도어)을 동원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난무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검증, 네거티브, 마타도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에 기초한 비판은 ‘검증’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사실에 근거했더라도 지나치게 내용을 부풀린 비판은 ‘검증’이라기보다 ‘네거티브’에 가깝다. 마타도어는 사실이 아닌 허위와 거짓에 기초한 비판으로 중상모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은 대체로 자신의 장점에 대한 소개나 정책과 공약에 대한 경쟁보다는 상대후보의 약점을 잡아 비판하고 공격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능숙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권자들이 진정한 국민의 대표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좋은 후보가 누구인지를 선택하기 보다는 더 나쁘지 않은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강북을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끝내 받지 못한 박용진 의원. 사진= 연합뉴스
서울 강북을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끝내 받지 못한 박용진 의원. 사진= 연합뉴스

주권자를 우습게 여긴 사례

이러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유권자들은 주권자답게 나쁜 정당과 후보를 걸러내고 좋은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는 게 사명이다. 특히, 유권자들은 주권자를 우습게 여긴 꼴불견들을 심판해야 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꼴불견이 있다면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으뜸은 ‘민주당 강북을 공천파동’일 것이다. 왜냐하면 강북을은 지역구 현역인 박용진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지역 유권자를 우롱하고 우습게 여기는 추태를 유난히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공천 탈락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오래도록 길이 남을 사건이다. 지역구 주민의 뜻과 다르게, 국민 여론을 거슬러, 당권을 쥔 권력자가 박용진 의원을 끝까지 배제하는 ‘비명횡사 공천’으로 국회의원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2일 ‘성범죄자 전문 변호 및 2차 가해’ 문제로 서울 강북을 후보직을 사퇴한 조수진 변호사를 대신하여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한민수 대변인을 전략공천한 바 있다. 차순위자인 박 의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박 의원은 두 번의 기회를 가졌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하지만 한민수를 공천한 일은 ‘이재명 사당화’와 당권·대권 경쟁자들의 싹을 자르기 위한 ‘박용진 찍어내기용 사천(私薦)’이거나 ‘3중 족쇄’를 안고 경선에 참여한 박용진 의원을 끝까지 제거한 ‘비명횡사 공천’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민주당 강북을 공천이 ‘박용진 제거’로 마무리되고 ‘이재명 사당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됨에 따라 202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박용진 의원이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던 이재명 대표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대권·당권 경쟁자의 싹을 모조리 잘라내려는 ‘이재명 사당화 공천’의 대표적 사례로 보는 게 적절하다.

서울 강북을 공천과정은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이 얼마나 불공정하고 부실했는가를 보여준다. 두 차례나 후보가 낙마한 건 그만큼 사전 검증이 부실했다는 얘기다. 박용진 의원과의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자객공천으로 투입한 정봉주 전의원과 조수진 변호사의 자질과 덕성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입이 거칠기로 소문난 정봉주 전 의원은 ‘발목지뢰 경품’ 망언을 했다. 그는 피해 군인들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 ‘인권 변호사’로 불린 조수진 변호사는 지역 유권자의 주권을 무시하는 ‘길에서 (금)배지 주었다’는 망언을 서슴없이 하다가 끝내 아동 성범죄자 변호 내용과 2차 가해 내용이 허물로 밝혀지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은 한마디로 불공정·부실검증이어서 길 가다가 돈지갑 줍듯이 배지 줍는 행위로 전락했다. 정봉주와 조수진이 사퇴함으로써 길 가다가 배지를 주은 사람은 결국 이 대표가 친명으로 꽂은 호위무사 한민수였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다시 노예가 될 유권자

‘박용진 제거사건’을 가슴 아프게 지켜본 유권자의 상처난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막가파식 ‘친명 꽂기’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어쩌다가 유권자의 신성한 국민주권이 길에서 주은 물건으로 취급당했을까?

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다. 국회의원이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말은 주권자인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를 제외하고 나머지 공천과정과 선거과정 등 전 과정에서 주인노릇을 못하고 소외받고 무시당하고 있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말이다.

이번 ‘박용진 제거사건’은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유권자가 주인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해 초래된 일이다. 이 대표는 왜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했던 것일까?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걸림돌 제거를 위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죄다 정적으로 숙청하고, 유아독존식으로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유권자들은 길을 가다가, 또는 가게와 화장실 같은 공간에서 돈이나 지갑을 주운 경우가 한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때 습득한 돈이나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우연히 주운 돈을 본인이 소유하거나 사용해버린다면 법적 문제로까지 불거질 수 있다. 그러니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길 가다가 주운 배지는 자기 것이라 우기면 안 된다. 주권자인 유권자들에게 반환하는 게 상식이다.

4.10 총선 유세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
4.10 총선 유세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

정치인 1인 사당화를 막아야

‘이재명 1인 사당화’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반칙과 특권없는 세상’을 추구했던 김대중·노무현 노선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더 이상 이 대표의 폭주와 오만방자함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유권자들이 직접 회초리를 들고 꾸짖는 방법뿐이다. ‘이재명 사당화’와 헛된 권력장악의 망상을 멈출 수 있도록 유권자들이 따끔하게 회초리를 드는 수밖에 없다.

‘찐명횡재’라는 계파 줄서기로 공천을 받아 의원배지를 달면, 이들이 과연 민의와 민생을 대변할 수 있을까? 의원자율성이 낮기에 민의와 민생보다는 온갖 특권과 특혜만을 취할 것이 뻔하다. 길에서 배지 주웠다는 후보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어쨌든 여든 야든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을 심판하는 건 유권자 몫이다. 그래야 국민을 더 이상 우습게보지 못한다. 유권자가 오만한 권력을 견제하고 심판해야 지엄한 국민주권의 원리를 세울 수 있다. 유권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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