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 인문
  • 입력 2024.03.22 11:27
  • 수정 2024.03.27 16:25

선거에 임하는 아이들에게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서로 하겠다'는 1학기 학급임원 선거
'리더= 학급 최고'라는 생각은 착각이야
힘없는 친구 목소리 들을 줄 알아야 해
1학기엔 웃겨서도 임원 뽑힐 수 있지만
2학기엔 '진짜 리더십' 찾아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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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선거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3월 초엔 매년 학교에서도 선거가 진행된다. 학교도 선거 시즌이 되면 들썩거린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딸이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딸은 올해 새로운 학교로 전입했다. 이제 전학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딸의 목표는 분명했다. 체육부장이 되는 것이라고. 아내와 나는 내심, ‘인지도도, 친한 친구들도 없는데 그게 될까’하는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스스로 도전하는 게 기특하기도 했다. 우린 혹시 아이가 실망을 할까 봐, 표를 못 받아도 도전하는 마음만으로 대단한 거라고 응원을 가장해 포석을 깔았다.

선거 전날에 딸은 손수 연설문도 쓰고, 소견 발표 때 들고 할 거라며 작은 피켓도 만들었다. 연설문은 며칠 전에 자기가 풀었던 국어 문제집에 나왔던 글을 한 두 문장 가져오고, 나머진 나름 고심해서 적었다. 다 적은 연설문을 깨끗한 종이에 다시 옮겨 적고 사용하라고 했더니, 외워서 할 거란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아이가 스스로 어떤 목표를 정하고, 미숙하지만 나름의 노력으로 준비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선거 결과, 10명 중 4표를 얻어 4순위에 올랐단다. 1~3순위와는 표 차이가 제법 나지만. 공동 4위를 한 남학생과 체육부장을 놓고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지는 바람에 학습부장이 됐단다. 엄마, 아빠는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는데, 누굴 닮았을까 싶었다. 아내와 나는 신통방통하다며 웃었다.

사진=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포스터 중에서.
사진=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포스터 중에서.

부모가 곁에서 아이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도전이 제대로 된 방향을 갖지 못한다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도전의 의미를 말해주는 건 더더욱 중요하다. 이번처럼 아이가 선거에 도전할 때는, 학급 임원이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말해줄 필요가 있다.

선거 불복 사건

아이들에게 학급 임원 선거는 즐거운 이벤트다. 하지만 임원이 되는 것 자체가 이벤트가 되어선 곤란하다.

예전에 초등 4학년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그 학교에선 4학년부터 학급 임원을 뽑았다. 그 아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선거라는 걸 치르는 셈이었다. 의욕적인 아이들은 반장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준비했다. 선거 당일, 아이들은 설렘과 흥분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자신이 행사한 한 표의 소중함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선거는 아무 문제없이 끝났는데, 문제는 다음 날 발생했다.

선거 다음 날, 한 표 차이로 부반장이 된 아이가 친한 아이들에게 반장이 된 아이 뒷담을 하고 다녔다. 뒷담의 내용은, 반장이 엄마가 써 준 말로 연설해서 자신을 한 표 차로 이겼다는 것이다.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 표 적게 나온 자신이 진짜 반장의 자격이 있다는 이의 제기를 계속했다. 반장으로 뽑힌 아이는 참다 참다 거의 울기 직전에 내게 와서 그 사실을 얘기했다. 난 다른 아이들을 불러 그 사실을 확인했다.

애나 어른이나 어떤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자리의 본질을 모른 채, 그것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데서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한 표 차이로 부반장이 된 아이에게 반장이라는 자리는 '봉사'나 '희생'이라는 의미보다 학급의 ‘최고’가 된다는 의미에 가까웠을 것이다.

학급 임원 선거는 4학년 때가 처음이고, 그 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공식적인 리더라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어쩌면 ‘리더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저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었다고 하면 주변에서 치켜세워주고, 어른들은 주변에 자랑스레 이야기하니까 우월감의 근거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내면화되고 고착되면 아이가 커서도 ‘자리’를 내 존재 이유로 삼는 불쌍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사진= MBC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한 장면.
사진= MBC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한 장면.

리더가 된다는 것의 의미

아이에게 이제 시작하는 지금이 ‘리더’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알려줄 수 있는 적기였다. 일과 후에 부반장 아이를 잠시 남겼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잘 가르치면 아이는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존중하지 않은 것, 반장의 뒷담을 한 나쁜 행동에 대해 지적하자, 아이는 수긍하고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리더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반장, 부반장은 우리 학급의 ‘리더’라고 할 수 있어. 네가 생각하는 리더는 뭐라고 생각해?”

“음. 다른 친구를 이끄는 사람이요. 선생님이 없을 때는 선생님 대신으로 애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고요. 모범을 보이고요, 또…”

아이는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리더는 그 자체로 멋지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네.”

“네.”

“선생님이 생각할 때, 리더가 됐다고 멋진 게 아니고 리더의 역할을 잘 할 때 빛나 보이는 것 같아. 리더는 늘 앞에서 이끌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야. 리더는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뒤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사람이야. 리더는 내가 놀고 싶은 사람을 뽑아서 같이 노는 게 아니고, 함께 놀고 싶은데 주저하는 친구에게 같이 놀자고 얘기하는 사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리더는 다른 사람이 그냥 흘려듣는, 힘없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사람이야. 모두가 즐거워할 때 한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진짜 리더야.”

우린 여러 말들을 주고받았다. 승부욕이 강하고, 서서히 남성성이 강해지는 게 눈에 보이는 아이가 부반장이 된 걸 계기로 한 뼘 더 성장하길 바랐다. 아이는 똑똑해서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다음 날, 아이는 반장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고, 그 뒤로 다시는 반장의 자리를 쟁취하기만 하면 그뿐일 무언가로 여기는 언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학급 임원이든, 학급 임원이 아니든 아이에게 어떤 책임을 주는 이유는 ‘성장’을 위해서니까.

사진=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한 장면.
사진=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한 장면.

진짜 중요한 건, 선거 이후

학급 임원 선거에선 진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어느 해엔, 후보들이 난립하여 학급생 27명 중에 16명이 후보로 나섰다. 후보들이 차례로 나와서 소견을 발표할 때,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는 상황도 많이 벌어진다.

“저는 우리 학급을 위해 ‘짓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겠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신선했는지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진지하게 박수치는 게 다였다. 아마도 누구에게 들어서 적던 ‘궂은 일’이, 아이에게 익숙한 ‘짓궂은 일’로 바뀐 것이리라.

“이 종이 한 장을 보십시오. 이것을 한 번 접어보겠습니다. (반으로 접힌 종이를 흔들며) 이제 반장입니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세요.”

이런 맥락 없는 연설문도 곧잘 등장한다. 일단 아이들을 웃기면, 몇 표는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학기 선거엔 웃기든, 진지함의 끝을 달리든, 어떤 전략이라도 자신감 있게만 하면 먹힌다. 그렇지만 2학기 학급 임원 선거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한 학기동안 서로를 알아간다. 그 아이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다른 친구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알아버리는 것이다. 리더를 말로 정의할 수는 없어도, 그 자질을 보여줬는지를 감각하게 된다.

리더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면, 잔기술로 선거 판세를 뒤집지 못한다. 몇 표 받는 건 가능해도, 반장까지 되긴 쉽지 않다. 그게 바람직한 양상이다. 2학기 때 많은 반장이 바뀐다. 현역 프리미엄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추천조차 못 받는 반장도 생긴다.

많은 학부모들이 반장, 부반장이 된 아이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진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한 학기를 겪은 뒤엔, 유권자들의 진짜 표심이 나올 것이다.

앞에서 당기는 것보다 뒤에서 밀어줄 줄 아는,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아래에서 받쳐줄 줄 아는 리더, 큰 목소리만이 아니고 힘없는 목소리도 들을 줄 아는 리더를, 아이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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