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풋볼 액티비즘이 도래했다
[이동연의 풋볼 스토리] 클린스만 사태와 풋볼 액티비즘 축구협회 행정 견제하는 K-리그 서포터즈 해외에도 다양한 사례...한국에 본격화 풋볼 엑티비즘, 어떻게 발전할까 주목돼
연일 동요하는 축구협회
역대 최악의 먹튀 국대 감독으로 공공의 적이 된 클린스만의 감독직 사퇴로 한국 축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보통사람들이 평생 만져볼 수 없는 엄청난 위약금을 챙긴 그는 ‘한국 국가대표 감독직 제안 농담이 진담이 될 줄은 몰랐다’는 식의 저잣거리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주먹구구식 한국 축구행정을 농락했고, 그 사이 이제 한국 축구의 미래는 온전히 우리 몫으로 남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사임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직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간접 표명한 후 곧바로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비난의 화살은 오로지 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으로 향했고, 그는 순식간에 사태 해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 걸 두고 “대리자 와싱”(agents washing)이라고 할까?
새롭게 구성된 전력강화위원회 논의도 순탄치 않았다. 첫 회의에서는 3월 태국전 임시체제 없이 곧바로 국내 감독으로 선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다시 2차 회의에서는 임시감독 체제로 가고, 6월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전에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정 위원장은 3월 태국전 임시감독으로 황선홍 현 U-23 대표 감독을 공식 발표했다. 정식 감독은 앞으로 대표팀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한 후에 그에 맞는 감독을 국내외 가리지 않고 선임하겠다는 추가 브리핑이 있었다.

축구협회에 대항하는 액티비즘
경쟁이 치열한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U-23아시안컵을 앞두고, 황선홍 감독이 과연 국대 임시감독으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현 정몽규 체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아시안컵 이후 축구팬들은 여전히 화가 나 있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축구협회의 비상식적 행동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한국 축구의 시스템에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지만, 과거처럼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지는 않을 분위기는 마련된 듯하다. 한국 축구, 특히 K-리그를 사랑하는 서포터즈의 강한 “연고지(로컬) 마인드”는 이제 풀뿌리 축구의 에너지로 전환해 제도, 권력, 행정으로서 축구협회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는 꿈쩍하지 않았던 축구협회가 최근 클린스만 사태를 겪으면서 그나마 눈치를 보면서 여론에 반응하는 것도 축구 서포터즈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축구 서포터즈들이 온라인으로 결집할 수 있는 새로운 공론장, 유튜브 축구 채널의 비판적 목소리도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축구계의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가 이만큼까지 열린 것도 축구를 깊이 애정하는 서포터즈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나 싶다. 나는 이러한 팬들의 행동을 “풋볼 액티비즘”(Football Activism)으로 부르고 싶다.
풋불 액티비즘의 활약은 축구 국가대표 신임 감독으로 국내 출신을 선임하겠다고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1차 회의 브리핑할 때 드러났다. 인터넷에서 K-리그 시작을 목전에 둔 K-리그 감독 중에서 선임하겠다는 소문이 돌자 서포터즈들은 즉각 반발했다. 더욱이 현대(現代) 가문 출신 정몽규 축협회장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오자, 울산 서포터즈들은 축구협회 사옥 앞에서 협회의 졸속 결정을 규탄하는 차량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곧바로 팬들은 축구협회를 맹비난하는 조화들로 축협 사옥을 에워쌓다.
“아파트도 와르르, 한국 축구도 와르르”, “국내 감독 낭비 그만, K 리그가 만만하냐”, “선수들로 눈 돌리지 말고, 회장 감독 나가” 등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축구 서포터즈들의 신속하고 격렬한 행동이었다.

해외의 ‘풋볼 액티비즘’ 사례들
사실 풋볼 액티비즘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강력한 지역 연고를 둔 유럽 축구 클럽의 서포터즈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구단 이사진과 대립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5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미국 출신 글래이저 가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과의 대립이었다.
글래이저 가문은 2005년 약 1조 4942억 원에 주식 75%를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글래이저 가문은 맨유를 인수할 때 대부분 돈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당시 대출받은 금액이 무려 1조 9천억 원이었다. 이는 인수 금액을 넘는 액수로, 말하자면 인수 금액 전부가 대출금이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은행에 낸 이자와 글래이저 가문에 들어간 고문료 총액이 2조 8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맨유 선수들과 팬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선수단에 투자하지 않고 대부분 은행 빚과 이자 갚는 데 썼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 사임 이후 감독이 대행까지 합쳐 모두 8명이나 될 정도로 여전히 명가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이 모든 것이 글래이저 가문의 ‘무개념’ 구단 운영 상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글래이저 가문의 맨유 인수를 반대했던 맨유 골수팬들은 글래이저 가문이 집권하는 한 절대로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맨유의 홈구장)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아예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구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한 가지 더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분데스리가를 운영하는 독일축구리그(DFL)는 2024~5년 리그부터 분데스리가 중계권 일부를 해외 투자자본에 매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팬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중계권 매각으로 생겨난 외부 자본을 각 구단에 배분해서 클럽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구단은 팬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독일 서포터즈들의 강력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모든 클럽은 규정상 구단 지분의 51%를 지역 서포터즈의 지분으로 정해 해외 투자자본이 인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데스리가가 비록 재정적으로 EPL(영국)이나 라리가(스페인)에 미치지 못하지만, 평균 관중이 유럽 리그 중에 항상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지역 연고를 둔 서포터즈들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남미에서도 액티비즘의 활동은 뚜렷하다. 남미 지역 예선 첫 3연패에 빠지는 등 현재 예선 6위로 역대 최악의 위기에 빠진 브라질 축구대표팀에 단단히 뿔이 나 있는 브라질 서포터즈들도 축구 협회의 무능을 질타했다. 특히 작년 협회 회장 선거에서 부정한 행위로 해임된 에드날두 로드리게스 회장 사태를 계기로 브라질 축구협회의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유럽의 명문 클럽 중심으로 슈퍼리그를 창설하려던 계획들이 지역 연고를 중시하는 팬들의 항의로 철회된 사례도 풋볼 액티비즘과 무관하지 않다. 유럽 축구 클럽 서포터즈들은 매년 오르는 시즌 티켓 가격에 항의해 축구장에서 다양한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또 인종차별과 전쟁, 각종 사회적 혐오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도 일반화되어 있다. 과거 풋볼 액티비즘은 상대 팀에게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경기장에서 인종차별 등 반사회적 행동을 많이 벌였지만, 최근에는 축구의 상업화, 구단의 전횡, 각국 축구연맹과 국제 연맹의 몰지각한 행정에 반대하는 긍정적인 행동이 많아졌다.
한국도 축구행정에 대전환 요구
현재 한국의 풋볼 액티비즘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해외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풋볼 액티비즘은 K-리그의 도약에 집중하고 있다.
풋볼 액티비즘은 ▲국가대표가 K-리그에 우선할 수 없다는 신념, ▲협회가 선수에 우선할 수 없다는 신념, ▲해외파 선수가 국내파 선수에 우선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다. 행동 방향이 분명해 ▲K-리그가 국가주의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축구협회의 권위주의, 서열주의, 관료주의를 혁파해야 한다는 점, ▲선수들은 실력, 연령, 학벌, 지역,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다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K-리그 2024년 시즌 첫 경기 티켓 예매가 오픈되는 28일, 오전 11시에 FC 서울 팬인 필자는 광주FC의 원정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곧바로 애매를 시도했으나 원정석 1200석은 몇 초 만에 매진됐고 나머지 좌석들도 거의 매진되었다. 할 수 없이 홈 서포터즈 석에 가까운 동쪽 맨 끝에 각기 다른 좌석을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3명이 각자 다른 좌석에서 봐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FC서울로 이적한 맨유와 영국 국가대표 출신 ‘제시 린가드 효과’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같은 날 열리는 다른 구장 경기도 찾아보니,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좌석이 매우 빠르게 빠져나갔다.
아마도 클린스만과 축구협회의 “뻘짓”이 K-리그 서포터즈들의 리그 사랑으로 역류된 것 같다. K-리그의 흥행, 축구 국가대표의 회복, 축구협회의 개혁을 위한 풋볼 액티비즘은 이제 막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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