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가르친 축구, 한국이 배워야할 행정

[이동연의 풋볼 스토리] 동남아 축구에 ‘한국 감독 전성시대’ 박항서, 신태용, 김판곤, 김상식 감독 저질 체력 다잡고, 나태하면 아웃! 각국 협회의 장기 플랜과 행정 부러워 축협, 단기 성적 집착하는 전근대性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 신태용.

박항서, 신태용, 김판곤 매직

지난 5월 3일 새벽에 열린 U-23 아시안컵 3~4위 전에서 인도네시아는 이라크에 연장전까지 혈투 끝에 1대2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은 한국시간으로 오는 5월 9일 밤 10시 프랑스에서 열리는 기니와의 플레이오프 단판 승부에서 결정나게 됐다. 이미 인도네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된 신태용 감독은 파리올림픽 진출의 마지막 승부만 남겨두고 있다.

FIFA랭킹 134위(2024년 4월 기준), 아시아축구 국가 기준 23위에 불과한 인도네시아가 올해 아시안컵 16강 진출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돌풍의 주역이 된 것은 온전히 신태용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태용 매직이다.

해외 진출한 우리 감독들 중 그 전에 다른 매직이 있었다. 바로 베트남 축구의 판도를 바꾼 박항서 매직이다. 박 감독은 2017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2023년까지 베트남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2018 AFC U-23 아시안컵 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4위, 2018년 동남아 축구연맹 대회인 스즈키컵 10년만의 우승, 2019 AFC 아시안컵 8강, 2019년 동남아시안 게임 60년 만의 우승 등. 그가 부임 6년 동안 일구어온 업적은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기에 충분했다. “쌀딩크”, “베트남 파파”, “박당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베트남 영웅이자, 국빈으로 대접받은 박항서 신화는 이후 한국 감독들의 동남아 진출의 발판이 됐다.

박항서, 신태용에 이어 또 다른 매직이 있으니 바로 김판곤 매직이다. 현역시절 그다지 큰 빛을 보지 못한 김판곤은 선수 마지막 생활을 홍콩 프로리그에서 보냈고, 2012년에서 2017년까지 홍콩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이후 행정가로 변신해서 2018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전 중에 김판곤 감독은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2022년 1월부터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임 후 단시간에 팀을 리빌딩하여 43년 만에 2023년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시켰고, 2022년 동남아 축구대회에서 말레이시아를 4강에 올려놓았다. 2023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말레이시아는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마지막 한국과의 경기에서 3대 3으로 비기는 등 엄청난 선전을 했다. 김 감독은 박항서, 신태용 감독에 비해 아직 확실한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70년대 아시아축구의 강호였던 말레이시아를 부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떠나고 베트남 축구협회는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국가대표를 맡았던 필리 트루시에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경질했다. 박항서 매직이 그리웠을까, 베트남 축구협회는 차기 국가대표 감독으로 김상식 감독을 선임했다. 성남 일화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김상식 감독은 선수 시절 이동국과 함께 전북 현대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2021년에는 전북 현대 감독으로 부임해 그해 우승을 이끌었다. 2026년 3월까지 베트남 성인대표와 U-23세 대표를 이끌 김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박항서가 베트남 축구의 파파라면, 나는 형”이라며 이기는 축구를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남아 축구는 이제 한국 출신 감독들 간의 전쟁터가 되다시피 했다.

태국(이시이 마사타다), 싱가포르(오구라 츠토무), 라오스(기무라 코키치)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일본인 감독들과 한국인 감독들은 동남아에서 새로운 감독 한일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이처럼 한국 출신 감독들이 동남아시아 축구시장에서 엄청난 성적을 내고, 이토록 레전드급으로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닝 멘탈리티’를 위한 체질개선

한국 축구의 특징을 정의하자면, 탁월한 피지컬 능력과 강인한 정신력이다.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들은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부임했을 때, 제일 먼저 변화를 준 것도 근력이 약한 선수들의 식단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쌀국수 먹는 것을 금지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나중에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밝혀졌다. 베트남 선수들의 부족한 상체 근력은 저녁에 별도의 체력단련을 시키는 것으로 해결했고, 체지방을 늘리는 대안으로 고단백질 음식 섭취를 권했다고 한다.

신태용 감독도 처음에 접한 인도네시아 선수들의 체력이 20분 뛰고 나면 걸어 다닐 정도의 저질이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과 코어 운동을 반복적으로 시키고, 튀기고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선수들의 식단부터 바꾸었다. 2년 정도 지난 결과 선수들의 근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신 감독은 근력 강화와 함께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정신력도 강화했다. 일부 선수들은 지각을 일삼았고, 심지어는 할아버지상(喪)이라고 속여 연습에 불참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과감하게 내치고, 선수단 규율을 단단히 했다. 규율과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강한 리더십의 한국 출신 감독들이 동남아 선수들이 가지지 못했던 체력과 멘탈리티를 심어 놓았다.

한국적 리더십과 겸손한 정서

박항서, 신태용, 김판곤 감독 모두 전술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다. 박 감독은 ‘선수비 후역습’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신 감독은 선수 시절 ‘여우’로 불린 별명처럼 2대 1 패스, 빌드업 플레이와 상대팀 맞춤형 전술에 능하다. 김 감독은 강한 전방압박과 기동력을 중시하는 능동적인 전술을 구사한다. 세 감독 모두 현대 축구 전술을 다각도로 공부하고 적용하는 전술가들이다.

세 감독 모두 정서적인 장점도 강하다. 베트남 국민은 아직도 박항서 감독을 “파파”라고 한다. 박 감독의 리더십에는 엄한 훈육도 있지만, 따뜻한 부모의 정서도 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이 동남아시아(SEA)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대 0으로 꺾고 이 대회에서 6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후, 부상당한 선수의 발을 씻겨주고, 귀국할 때 부상선수를 자신의 비즈니스석에 앉히는 따뜻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신 감독 역시 경기 중에는 엄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낸다. 지난번 인도네시아가 아시안컵에서 극적으로 16강에 올랐을 때, 선수들이 신감독 방에 들어가 감독을 침대에 내동댕이치면서 즐거워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 감독들의 열정과 겸손의 태도가 같은 유교권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져 문화적 공감대를 편하게 형성한 것이다.

경기장에서는 모든 열정을 토해내는 김 감독 역시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선수들을 다정한 아빠처럼 감싸준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실수하더라도 클린스만처럼 선수들 탓하지 않고 그들을 감싸고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달라고 한다. 이렇듯 성적도 잘 내고, 성실함과 겸손함을 갖춘 한국 출신 감독들은 앞으로 동남아 축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선의의 경쟁자들이 될 것이다.

대표팀 성장을 위한 장기 플랜

박항서, 신태용, 김판곤 감독의 성공 신화는 각국의 축구협회가 대표팀 성장을 위한 장기 플랜을 제시했기에 가능했다.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 17세 이하 대표선수부터 단계적으로 지도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에 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중국적 출신의 인도네시아계 선수들을 찾아 적극 귀화를 권했다. 조르디 아맛, 라파엘 스투라익, 저스틴 허브너, 아이바르 제너 등 지금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 주축 선수들이 모두 최근에 귀화한 이중국적 선수들이다. 박 감독 역시 베트남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은 팀이 U-23세 대표팀이었다. 평균 감독 재직 기간 8개월에 불과했던 베트남 감독직에서 5년 4개월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베트남 대표팀 리빌딩 플랜에 대한 협회의 전적인 신뢰 덕분이었다.

김판곤 감독의 예를 들어보자. 김 감독은 홍콩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홍콩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때 홍콩의 유스 아카데미를 지도한 것을 시작으로 홍콩에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는 홍콩축구협회가 총괄하는 중앙집권화된 ‘센트럴라이즈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9세부터 18세까지 다양한 연령대 선수들을 소집해서 매주 이틀씩 집중적인 엘리트 교육을 실시했다. 이때 훈련에 참여한 선수들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회 8강에서 이란을 1대 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한 선수들이다.

말레이시아 대표팀은 현재 축구발전을 위한 “FAM30 로드맵”를 실천하고 있는데, 2018년에서 2030년까지 말레이시아 축구 대표팀을 발전시키는 계획으로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2018~2022)는 축구 환경의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2023~2026)는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2단계의 슬로건은 “경기능력을 향상하고, 협회조직을 강화하며,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기간에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아시아 TOP 5로 성장한다는 뚜렷한 목표도 가지고 있다.

김판곤 감독의 성공 신화는 이 플랜의 결과이기도 하다. 얼마 전 U-23 올림픽 대표팀 황선홍 감독이 8강 전에서 인도네시아 패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기 발전 전략보다는 단기간 성적에 집착하는 대한축구협회 전근대적 행정을 비판한 것을 생각하면 크게 대비된다.

현재 축구협회는 국가대표 신임 감독 물색에 한창이다. 소문에 의하면 모시고 싶은 감독들은 연봉이 높아 난항이라고 한다. 클린스만 연봉 28억원, 위약금 70억원의 낭비가 결국 차기 감독 선임에도 걸림돌이 된 것이다.

문제는 장기 플랜 없는 축구협회의 전근대적인 후진 행정의 대가가 클린스만 감독 선임이었다는 점이다. 전 현직 축구협회 간부들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벤투 후임 감독에 대한 프로세스가 진행될 때 클린스만의 감독은 애초에 명단에도 없었고, 물색해 놓은 감독 인터뷰를 진행하기 직전,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협회의 축구행정이 결국 꼬이고 꼬여서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 참패, U-23 아시안컵 8강 인도네시아전 패배로 이어졌다. 축구협회의 2024년 사업 계획서에는 “대표, 책임, 육성”이라는 목표 키워드가 있는데 이 중에서 “대표”에 해당하는 ① 한국 축구 기술철학 정립, ② 성인 대표팀 우수 성적 달성, ③ 유청소년 대표팀 경기력 향상 등의 목표는 모두 실패했다. 축구협회는 연간계획서와 사업 방향은 있지만,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보다 축구 기량이 떨어지는 동남아시아 축구행정보다 뒤처진 느낌이다.

지난 4월 26일 카타르에서 열린 2024 AFC U-23아시안컵 8강에서 한국 선수들이 승부차기 끝에 인도네시아에 패한 후 낙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6일 카타르에서 열린 2024 AFC U-23아시안컵 8강에서 한국 선수들이 승부차기 끝에 인도네시아에 패한 후 낙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따용’의 기적을 기다린다

인도네시아 올림픽 대표 신태용호는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한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승리하면 64년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본선에 탈락한 네덜란드 국민들이 히딩크 감독의 한국대표팀을 응원했듯이,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응원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인도네시아가 기니를 이겨 본선에 진출하면 신태용 매직은 다시 한번 화려한 비상을 할 것이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아직 메이저 타이틀이 없다. 이번에 올림픽 본선에 오르고 11월에 있을, 6번 준우승만 한 동남아시아컵(스즈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면, 그는 분명 인도네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꿈에 그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그 앞에 기다릴 것이다.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출신 감독들은 이렇게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글쓴이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동연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 예술정책, 공연기획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과 축구를 좋아해서 관련된 저술 및 현장 활동을 많이 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감독, 글로벌음악도시서울플랜 MP, K-리그 발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리버풀FC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현재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는 계촌클래식축제 총감독, 대표적인 문화NGO 단체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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