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와 지구본
[밀란 쿤데라를 추모하며] “빵집 주인에 관심가질 이유없듯, 독자는 작품만 읽는 것으로 족하다” 남녀관계로 인간의 근원적 탐구 모색
탱크를 연상시키는 작가
대학 시절에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담배를 피우려고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텅 빈 대학 교정에서 몇몇 군인들이 축구공을 찾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무심코 담뱃재를 허공에 털었더니, 곁에 있는 여자가 “재털이가 굉장히 크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 여자는 나보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벨기에 출신 수녀님이었다.
그때 휴교령으로 대학 문은 닫혔고 대학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 탱크가 버티고 있었다. 대충 사십 년 전쯤의 풍경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서울 시내에서 탱크를 보았던 기억이 없다. 그때 나는 탱크에 달걀 하나 던지지 않고 프랑스의 쥐라 산맥 자락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로 갔다. 그리고 몇 해쯤 지난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답변의 권리”라는 TV토론 프로였는데 이십여 명의 출연자가 여기저기 앉아서 딱히 정해진 발언 순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바람에 거의 난장판 같은 분위기였다. 사회자가 ‘쿤데라가 노벨상을 받아도 될 만큼 훌륭한 작가’라고 하자, 이를 두고 열띤 찬반 논쟁이 벌어졌고 작가의 몇몇 결점을 들춰내며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 작가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토록 치열한 격론이 벌어진 것에 호기심이 나서 다음날 서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구해 읽었다. 당시 논문의 주제였던 장 폴 사르트르와 귀스타브 플로베르로 낮에도 가위에 눌려 지내던 터라, 이 소설은 잠시나마 나의 숨통을 시원하게 터주는 느낌이 들었고 더불어 한동안 잊었던 탱크와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하릴없이 주고받았던 축구공도 떠올랐다.

독자는 작품만 읽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다시 40년이 지난 며칠 전 밀란 쿤데라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쿤데라는 ‘빵을 먹고 허기를 채우면 그만이지, 빵집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독자는 작품만 읽는 것으로 족하고 작가의 삶은 작품과 무관하다’는 말도 누차 되풀이했다. 쿤데라는 지난 2011년 16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2권의 플레이아드 전집을 출간했다. ‘플레이아드 판’은 작가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비유되기도 하니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그 순간에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그의 이름은 점차 예상 목록에서 지워져 갔다. 그가 그토록 감추려 했던 빵집 주인의 삶도 전기와 연구서로 드러나고, 정보화 시대에서 피할 수 없는 사소한 일화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그는 1929년 4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 지방의 주도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음대 교수인 아버지에게서 5살부터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배운 덕분에 그는 글보다 먼저 악보를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독립하여 프랑스 공화정을 본 뜬 제1 공화국 시절이었다. 신생국에는 옛 제국 시절의 흔적이 남아 독일인, 헝가리인, 체코인, 슬로베니아인, 그리고 유대인이 뒤섞어 살았다. 그래도 많은 주민은 여전히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최소의 공간에 최대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나라였다고 쿤데라는 회상했다.
1939년 5월 15일 히틀러가 침공했고 어린 쿤데라의 음악 스승이었던 작곡가 파벨 하스는 유대인이었다는 이유로 가스실로 끌려갔다. 종전 후 쿤데라가 발표한 첫 번째 시는 파벨 하스에게 헌정되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신부는 파벨 하스의 딸이었지만, 곧 이혼한 터라 올가 하스*주는 쿤데라의 어느 책이나 인터뷰에서 언급된 적이 없다.
*주: 사족이지만, 쿤데라의 첫 번째 부인의 어머니는 저명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야콥슨은 쿤데라의 장인인 셈이다. 러시아 출신 로만 야콥슨은 모스크바와 파리를 오가며 많은 문인과 친교를 맺었는데 그 문인 중 가장 가까운 시인이 루이 아라공이었다. 루이 아라공은 밀란 쿤데라의 첫 소설 『농담』을 프랑스에 출간하도록 조력했고, 이 시대 최고의 소설이라는 극찬의 서평으로 쿤데라를 서방세계에 알리려고 애썼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르기까지
1945년 종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군과 힘을 합해 항독 전쟁에 앞장섰던 공산주의자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쿤데라는 공산당에 입당하고 즈다노프의 문학 원리에 입각한 시와 희곡을 발표했고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에도 깊게 매료된다. 그는 그 시절을 “서정의 시대”라 부르며 “미숙한 젊음”의 착오라고 간주했다. 그는 시를 나르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한 감정의 소산이라고 판단하고, 성숙한 성찰과 비판, 철학과 역사에 대한 고찰은 산문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서른여덟 살에 시에서 소설로 전향한 것은 단순한 장르의 선택이 아니라 세계관, 철학,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개종과 같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산문으로 개종 후에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이 『우스꽝스런 사랑』이다. 7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작품엔 이후 장편 소설의 씨앗이 모두 들어있다. 역사와 삶은 신이나 이성에 따른 필연의 진행이 아니라 불투명한 모순과 혼돈뿐이라서 사소한 우연과 실수에 삶이 좌우된다는 생각은 그의 소설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소설뿐 아니라 시에서도 이미 비판되었던 그의 “여성혐오증” 혹은 여성 비하적 태도는 이 단편 모음집에서 이미 두드러진다.
항상 서정과 낭만과 어울리는 한 짝이 되었던 사랑이란 주제가 쿤데라 작품에서는 “우스꽝스러운”이란 형용사로 수식된 것이 이채롭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구는 자연스럽게 인간들 간의 관계로 관심이 이어졌고, 인간관계의 가장 다양한 측면은 남녀관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쿤데라의 생각이다. 유혹과 희망, 성, 오해, 배신, 질투, 환멸, 이별, 회한 등 쿤데라가 관심을 기울이는 소설적 주제가 남녀관계를 통해 쉽고 대중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예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남성 전형 중 하나인 돈 주앙은 쿤데라가 애호하는 남성 주인공이기도 하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이렇게 4명의 인물은 제각기 다른 삶의 태도를 지녔고 그 개성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는 더욱 절박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예컨대 탱크가 코 앞에 밀려오고, 무리를 지어 행진하거나 집단 원무를 추는 군중들이 고함을 치며 합류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제각기 어떤 선택을 하고 그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밀란 쿤데라는 어느 행성을 택했을까
그의 작품을 흔히 정치 소설이라고 하지만 정치는 인물들 뒤에서 울리는 배경음, 투박한 타악기 소리와 비슷하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제각기 고유의 악기를 연주하며 어떤 장면에서는 홀로, 어떤 장면에서는 둘, 혹은 여럿이 동시에 소리를 내며 다성적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7악장으로 이뤄졌고 작가는 마음속에서 각 부분마다 모데라토, 프레스토, 아다지오...와 같은 템포를 정해 사건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였다. 『배반의 약속』에서 그는 음악과 소설의 발전사를 비교하며 유사성을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구성에 적용된 음악적 구성법도 털어놓았다. 시에서 소설로 개종했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없었다.
짧은 글에서 쿤데라의 삶과 방대한 작품세계, 그의 작법을 요약할 재간이 내게는 없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이전에 무심코 지나친 대목을 주목하고 재해석하는 재미가 샘솟는다. 요사이 부쩍 ‘외디푸스 신화’에 대한 토마시의 해석이 실감 난다. 그 신화의 핵심은 ‘근친상간’이나 ‘살부 욕망’이 아니다. 왕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로 무고한 백성이 역병에 시달리자 제 눈을 뽑고 권좌에서 내려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체코의 권력자는 제 눈을 뽑기는커녕 토마시를 의사에서 청소부로 추락시켰다. 쿤데라는 이것이 체코식 비극이라 했다. 그리고 비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극적이란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체코 유머도 있다. 제 나라를 견디지 못해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이 세관을 만났다. “어디로 가는가?”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지구본을 주면 손가락으로 짚겠다고 대답했다. 세관이 지구본을 가져왔다. 그는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다가 다시 물었다. “다른 지구본은 없나요?”
지구를 떠난 쿤데라가 부디 다른 행성에서 보다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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