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한국은 ‘공급자 책임’을 느끼는가

미국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도 AI 데이터센터 반대를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도 AI 데이터센터 반대를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정반대의 두 풍경이 한국인의 양심에 판단을 요구한다. 텍사스주 AI 데이터센터 건설 보류 전망에 한국 증시는 폭락했다. 같은 시기인 6~7일 유럽 16개국에서는 ‘더러운 데이터센터를 멈춰라!’는 동시 시위가 열렸다. 트럼프의 참패가 한국에는 재앙이 된다.
  • 반도체 공급은 더 이상 돈 버는 행위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의 칩과 서버는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원을 수탈하고 전력 대란과 생태계 파괴를 가속하는 물리적 기반이다. “어쩔 수 없다”를 면죄부로 삼지 말고 ‘공급자의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
  • 실리를 챙기되 생태 정의를 잊지 않는 기술 핵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린 메모리, HBM, PIM 같은 저전력 반도체와 스마트그리드·ESS를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위적 주가 부양 대신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율 제고로 ‘주식시장의 해자’를 만들어야 한다.

환호해야 하나, 걱정해야 하나

한국인은 어느 편에 서야 하나. 제임스 탈라리코, 존 오소프로 상징되는 미국 민주당의 승리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환호했다. 그것도 잠시, 미국 텍사스주의 데이터센터(AI DC) 건설이 보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한국 증시는 폭락했고 투자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트럼프의 참패가 한국에겐 재앙이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의 흔들리는 양심은 대서양 건너편 유럽에서 벌어지는 정반대의 장면을 접하면 다시 한 번 심하게 요동한다. 인플루언서 희일이송 교수에 의하면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덴마크, 폴란드 등 유럽 16개 국가에서 지난 금요일(6일)과 토요일(7일), 동시다발적으로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펼쳐졌다. 슬로건은 ‘더러운 데이터센터를 멈춰라!(Stop Dirty Data Centres!)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1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마이크로소프트(MS)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을 기습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동일한 슬로건을 내걸고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대규모 동시 집회를 연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희일이송 교수는 유럽에서 지난 6개월간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대 여론과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텍사스주에서 AI DC 설치에 대한 분노가 전 세계 반대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 과두제(하이퍼스케일러)가 이윤을 위해 자원과 지역 환경을 수탈하고 시민의 민주적 결정을 부식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희일이송 교수는 얘기했다. 능력주의가 지배하고, ‘중견 핵심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열망에 고양된 한국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AI DC 반대운동의 강도가 어떠하든,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불가피한 세계적 추세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갖고 지켜보자는 태도를 취한다면 위안이 될까. 이곳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며 주가 1만 시대를 고대했던 한국에는 그런 낙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2000년대초 광케이블 과잉공급때도 그랬는데...

주식투자 전문가로 알려진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미국 기술산업의 흐름을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증시에서...빌린 돈으로 데이터센터를 짓는 네오클라우드는 10% 가까이 빠졌다. 반도체주도 다 엄청 빠졌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6.7% 올랐다. 아마존 6.1%, 알파벳 3.3% 올랐다. 왜냐하면 ‘규제’는 이미 지은 사람한테는 해자(垓子,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한 성 밖의 구덩이-편집자주)다. 새로 못 짓게 하면 지금 있는 데이터센터가 귀해지고, 클라우드 가격이 안 떨어지고, 돈을 그만 써도 되는 핑계가 생긴다.  

그러니까 미국 유권자가 만든 건 AI의 종말이 아니다. 유권자가 만든 건 선별이다. 이미 지어둔 쪽과 앞으로 지어야 하는 쪽을 갈라놨다...”고 했다.  

조여준 씨는 2000년대 초반의 광케이블 과잉투자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2000년에 광케이블을 미친 듯이 깔았고 어느 날 주문이 끊겼고 통신장비 회사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세계 경제는 잠깐 넘어졌다가 일어났고, 그때 깔아둔 광케이블 위에서 유튜브가 태어났다. 그러니 ‘멈추면 무너진다’는 공포 메시지는 사실 반만 맞다. 멈추면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경제는 잠깐 아프고 나서 그 위에 뭔가를 짓는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광케이블은 수요가 없어서 멈췄다. 데이터센터는 수요가 넘치는데 멈출 판이다...” 지나치게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는 조언이다. 

우리의 양심, ‘공급자 책임’을 피할 수 있나

두 가지 풍경은 확실히 대척점에 서 있다. 우리에게도 판단을 요구한다. 주민의 삶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인가, ‘기술의 해자’를 이해하고 차분히 지켜보며 충격에 빠진 한국 경제의 회복을 기도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양심과 시각으로 지금의 이 사태를 바라봐야 할까.

우리의 고민에는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변수가 있다. ‘우리가 안 하면 중국이 한다’는 현실이다.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세계 핵심 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인데, 우리가 멈춘다고 세계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의 혼란과 무관하게 기술적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고 지구적 생태계와 인간의 평온한 삶에 대한 부채의식을 외면할 수도 없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이윤을 위해 자원을 수탈하고 민주적 결정을 부식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의 반도체와 인프라는 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물리적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곤혹스런 ‘역설’이다. 인류의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미래를 구하겠다는 한국의 기술이, 정작 그 기술을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을 파괴하며 인간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지 않은가. 

이 거대한 역설과 모순 속에서 우리 한국인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무엇보다 ‘공급자의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하면 지나친 요구일까. 우리가 반도체를 공급하는 행위는 더이상 ‘돈을 버는 행위’로 단순화할 수 없는 지경에 왔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칩과 서버가 지구 반대편의 전력 대란과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하는 물리적 동력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것이 비판적 지성을 가진 시민의 첫 번째 양심이다.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면죄부를 삼는 순간, 우리는 거대 자본의 논리를 외면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제 우리의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토론해야 한다.

하청기지를 넘어 지구적 생태건강을 위해 

한국이 단순히 반도체 칩을 찍어내는 하청 기지에 머무른다면, 훗날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자본에 토사구팽당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전력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그린 메모리’와 저전력 AI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세계적 표준으로 만드는 노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지구의 부하를 줄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술적·윤리적 저항이자 도약이다.

이러한 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린메모리(Green Memory) 기술은 데이터 처리 용량과 성능을 크게 높이면서도, 이에 소모되는 전력은 획기적으로 줄이는 친환경 고효율 반도체 솔루션을 말한다.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데이터 연산 장치와 메모리 간의 이동 거리를 줄여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PIM(Processing-in-Memory) 기술이 그 예다.

여기에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분산 전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변압기 기술도 있다. 우리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인류적 기여다. 냉혹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실리(實利)를 챙기되, 지구적 생태 정의를 잊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품격이자 양심이어야 한다.

이 거대한 세계적 흐름의 급변을 마주하는 한국은 당장은 차분해져야 한다. 특히 주식시장의 급변동을 보며 정부에 “주가를 띄워달라”고 인위적인 주가 부양을 요구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기술적 해자’에 이어 ‘주식시장의 해자’를 만들어야 한다. 단발성 부양책 대신,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율 제고, 그리고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해자’를 개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미국 빅테크 기업과 하이퍼스케일러의 하청 기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미중 기술경쟁 시대에도 기술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앞으로 우리가 공급하는 기술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는가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쓴이

문주용 저널리스트

문주용 저널리스트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 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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