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배신자 프레임’ 없애자
홍준표 후보, ‘조선 사대부式 의리론’ 연상시켜 ‘확실한 전향’을 변절로 몰아선 안돼 기회주의자 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차기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각 캠프는 전·현직 의원 및 참모진들의 영입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캠프에 몰려드는 영입인사들이 내놓는 동참의 명분을 놓고 ‘변절공방’과 ‘배신공방’이 쟁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어지는 ‘배신자’ 비판들
지난 8월 26일 민주노총이 민주당 캠프로 발길을 돌린 4명의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에 대해 진보정치와 노동계급을 배신했다고 하는 이례적인 성명서를 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군사독재 정권의 후예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친노동 세력을 자부하는 노무현·문재인 정권 또한 노동자 계급을 외면하고 배신한 점에서 보수 정당과 차이는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김영훈·신승철 전 위원장이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연대에 나섰고, 조준호 전 위원장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캠프에, 이수호 전 위원장은 박용진 민주당 의원 캠프에 합류한 것에 대해, 4명의 전직 위원장이 최근 보수정당의 대권 주자 지지 활동을 위해 지도위원직을 사퇴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민주노총의 비판에 정의당은 조용하다. 정의당은 그동안 진보정당에서 고위 당직자로 지내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이 민주당의 협력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이 침묵하는 이유는 이번 일이 자신의 무능력이 노출된 사건으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처럼 부끄럽기 때문이다.
홍준표 의원 ‘배신자 프레임’은 과해
국민의힘에서 일찍부터 ‘배신자 프레임’으로 무장하며 공격에 나선 이는 홍준표 의원이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8월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그들을 돕는 의원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한번 배신 해본 사람은 언제나 또 배신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29일 “누구든지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들면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나는 26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을 떠난 일이 없었던 이 당의 적장자”라고 밝혔다.
이것을 의식한 유승민 전 의원은 29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입에도 담기 싫은 단어가 ‘배신자’”라고 발끈하면서 “정치를 22년째 하면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양심과 소신에 어긋남 없이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를 구한 대구‧경북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으로 정치를 해왔다”면서 “한 번도 나라와 국민을 배신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8월 31일 육영수 생가를 찾아간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분이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냐”는 반응에 대해 “제가 박 전 대통령 사건 수사에 관여한 건 맞다. 그러나 그건 공직자로서 정부의 인사 발령에 따라 저의 소임을 다한 것뿐”이라고 했다.
홍 의원이 꺼내 든 ‘배신자 프레임’은 시간이 갈수록 경선판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뻔하다. 그가 이 프레임을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윤석열 후보와 최재형 후보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배신한 변절자’로 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신한 사람’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유승민 후보를 한꺼번에 공격하기 좋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변절자·배신자 공방은 항상 쟁점이 돼왔다. 이승만 정부에 합류한 조봉암 선생도 공산 진영의 배신자 공격을 받았다. 같은 진영에 쓴소리를 해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든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조국사태를 비판했던 민주당 금태섭 의원, 그리고 ‘조국흑서’를 집필한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이다.
홍 의원의 ‘배신자 프레임’은 과연 중도확장을 꾀해야 하는 야당의 입장에서 그리고 선악의 이분법이라는 진영논리를 넘어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본령으로 돌아가자는 사회통합적 규범론의 시각에서 볼 때, 적합한 것일까? 여러모로 부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당내에선 보수 분열의 화약고인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도마에 오르면 ‘탄핵의 강’에 다시 빠지게 되고 중도확장에 제동이 걸린다. 자칫 ‘경선용 이슈’로 싸우다가 당 분열이 대선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의 강’이 다시 소환되어 당이 분열하는 것은 이준석 당대표의 당선 취지와도 배치된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6월 3일 보수의 심장 TK지역에 가서 “영입해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그의 당당한 호소는 그동안 야당분열의 씨앗이 되었던 ‘탄핵의 강’을 정면으로 넘어서 집권과 미래로 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되어 당대표 당선으로 연결된 바 있다.
둘째, 이것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사회통합적 규범론에서도 부적합하다. ‘전향’이라 부르지 않고 ‘변절과 배신’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의견의 다양성과 생각의 전환을 통해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숙의민주주의에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조선 사대부식 의리론’이기 때문이다.
즉, 변절=배신=간신=악, 지조=충성=충신=선이라는 사대부의 주자학적 의리론과 위정척사론은 민족주의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정통성을 주면서 생각이 다른 나머지 세력들을 정통성이 없는 ‘열등한 존재’로 보고 타도대상으로 몰고 가는데 명분을 주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프레임속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다양한 의견의 표출과 생각의 전환을 통한 숙의적 절충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변절자의 은어인 ‘사쿠라’를 경멸하며 선명성을 내세운 운동권세력이 합리적 노선보다 ‘진영논리와 내로남불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씁쓸하다.

21세기는 세계화, 정보화, 탈물질주의화, 탈냉전화, 탈이념화 등으로 표현되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으로 불린다. 이런 전환기적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사대부적 의리론으로 덧씌워진 고루한 이념과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지조와 절개로 가진 인물로 둔갑시킬 필요는 없다.
홍 의원의 “배신자 프레임”은 현대 민주주의를 조선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프레임이다. 의견의 다양성, 설득과 숙의를 통한 생각의 전환,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현대 민주주의를 조선 사대부식 의리에 기초한 충신 대 간신논쟁으로 뒤집어 보겠다는 시대역행적 꼼수다. 경쟁자를 배신자와 간신으로 모는 것은 헌법에 반하는 나쁜 프레임이다.
그렇다면 이런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향’과 ‘변절’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확실한 전향’을 통해 드러나는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를 ‘기회주의자’로부터 구별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전향 표명의 기회를 놓치거나 방법에 서툴러서 변절자가 되거나 기회주의자로 몰리는 사람이 많다.
기회주의자가 되지는 말아야
‘기회주의자’와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생각과 노선이 이전과 달리 바뀌었다거나 바꿀 필요가 있을 때 대응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양쪽은 확연하게 갈린다. 후자인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는 공적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의견표명을 하면서 주변의 반응과 의견을 받는 사람으로 피드백을 수용하던지, 반대로 상대를 설득하든지 하면서 검증과 공감을 통해 정리해 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자인 기회주의자는 후자와 달리 그것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변화된 생각과 노선에 대해 의견표명을 숨긴 채 자신에게 유불리만을 계산하면서 기회를 쫒는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변절자와 변화하는 시기에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확실한 전향표명이 필요하다. 변화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공적 책임자로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한 책임있는 행동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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