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는 금과 흙이 따로 없다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공급부족을 혁신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차량용 반도체 구하기가 어렵다는 호소가 1년간 이어진다. 코로나로 차 구매 감소를 예상한 제작사들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줄이고 자율주행차 전환에 대비하여 첨단 반도체로 비중을 높였다. 전망은 빗나가 소비자들은 코로나의 답답함을 차로 푸는 바람에 생산 공정이 긴 차량용 반도체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뭄, 화재, 정전은 반도체 제조공장을 멈춰 세웠고 미국은 중국으로 반도체 기술 수출을 막았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근로자들은 일을 못해 전 세계적으로 차 판매량도 줄었다. 우리나라도 10월 자동차 산업생산지수가 5% 하락했다. 한국 정부와 백악관이 직접 반도체를 챙겼는데 완성차의 차량용 반도체 주문이 쏟아지자 제조사들은 쉼 없이 차량용 반도체를 찍어대고 있다. 이 추세로 나아가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은 내년 하반기에나 풀릴 듯하다.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5개 회사가 있다. 네덜란드의 NPX, 독일의 인피니온, 일본의 르네사스,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스위스의 ST마이크로가 그들이다. 그런데 생산라인을 깊게 들어다 보면 5개 공급사는 차량용 반도체를 설계하여 일부만 자체 제조하고, 대부분을 대만의 TSMC에 맡긴다. 반도체 설계를 받아 제조만 하는 회사를 파운드리 회사라고 하는데 TSMC는 세계 차량용 반도체 70%를 공급하는 파운드리 회사다. 5개 회사가 있지만 TSMC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을 좌지우지한다고 주장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삼성 SK는 왜 안만드나
우리나라도 반도체 강국이다. 그런데 차량용 반도체는 3% 정도만 공급하므로 차량용 반도체 ‘약국’이다. 왜 차량용 반도체 설계사들은 삼성과 SK 하이닉스에 제작을 맡기지 않을까? 반도체 관계자들은 차량용 반도체 제조 수익률이 낮아 삼성과 하이닉스가 수주를 거부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삼성이 NPX을 인수 합병하려 눈독을 들이지만 NPX가 거금 70조 원을 제시하며 튕기고 있으니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차량용 반도체 설계사는 기술 유출을 우려하여 설계/제작 기술을 모두 지닌 삼성보다 제작 기술만을 지닌 TSMC를 선호할 수 있다.
삼성이나 SK 하이닉스가 차량용 반도체를 제조하지 못하는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의 특성에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기능 못지않게 강인성, 신뢰성을 요구한다. 자동차는 가전제품과 다르게 험한 산길을 다니며 돌멩이와 부딪치고 겨울에 영하 40도의 혹한에 노출되고 도로 웅덩이를 건너다 물에 잠긴다. 압력, 온도, 습기를 견디려면 튼튼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1990년대 대우전자가 전자제품의 ‘탱크주의’를 주장했는데 자동차에야말로 탱크주의가 적용된다. 더구나 1만 원짜리 반도체가 단종되어 1000만 원짜리 차를 교체할 수 없으니 제조사는 단종 후에도 차량용 반도체 여유분을 20년 이상 챙겨 두어야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탱크주의에 입각해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차량용 반도체보다는 가정용 반도체 쪽이다. 가전제품과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온화한’ 환경에서 작동한다. 삼성과 TSMC는 고용량 메모리를 얻기 위해 게이트 회로 두께 경쟁을 해왔다. 15년 전 50나노미터(㎚)였던 게이트 회로가 요즘에는 5 나노미터까지 얇아졌다. 얇은 신식 회로는 용량을 늘리고 전력을 적게 소모하지만 강인성,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극한 환경에서는 신식 반도체가 오작동이 일어나기 쉽고, 오히려 구식 반도체가 내구성이 좋다. TSMC는 50 나노미터로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고, 5 나노미터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철 지난 50 나노미터 기술을 버렸다.

‘혁신적 사고’로 돌파해야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정상화되겠지마는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구식 방식이 아무리 강인하더라도 20년 전 기술과 제품에 회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신식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강인한’ 차량용 반도체가 나타날 수가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혁신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자동차 전자제어 구조가 최적화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차량용 반도체의 대표적 부품이 MCU(Micro Control Unit)인데 이 부품은 현 내연 자동차에 100여 개 들어가고 향후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는 1000여 개 들어간다. MCU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수급도 어렵고 부품의 유지관리도 어렵다.
MCU 종류를 줄이는 방법은 ‘기능의 통합’이다. 중앙에 놓인 서너 개의 통합 MCU가 분산되었던 수백 개 MCU 기능을 흡수할 수 있다. 중앙제어와 분산제어는 차량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며 발전소, 공장, 전력망 등 모든 전자제어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지배권력도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중세의 봉건사회는 지방 분권 시대였다. 그런데 도로가 놓이고 교류가 활발하자 봉건사회는 붕괴되고 중앙집권적 절대군주가 나타났다. 통신기술이 발전하면 분산제어와 중앙제어가 적절한 균형을 찾아간다. 테슬라는 이번 차량 반도체 품귀에도 불구하고 영향을 적게 받았는데 이는 분산 MCU를 통합 MCU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통합 MCU를 개발하기 위해 MCU의 기능을 조금 더 살펴보자. 차량용 MCU는 브레이크, 엔진, 핸들 등에 설치되어 안전운전을 돕는 조그만 칩이다. 후진할 때 물체를 감지하여 경고를 알려주는 기능도 MCU의 기능이다. MCU를 개인용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라고 이해해도 문제없다. 전자공학자들은 조그만 칩을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CPU라고 부르지만 자동차에서는 MCU라고 부른다. 휴대폰에도 비슷한 칩이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AP(Application Processor)로 부른다. CPU는 기능이 강력하지만 전력 소모량 많고, AP는 강력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전력 소모량이 적다. MCU는 기능이 단순하지만 내구성이 있다.
‘고신뢰 MCU’ 개발할 때다
MCU와 AP의 유사성을 감안하면 AP 설계 제작 능력을 지닌 삼성이 MCU를 개발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MCU의 강인성을 생각하면 둘은 결코 통합될 수가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따라서 통합 MCU는 휴대폰 기능을 지닌 ‘고기능 MCU’와 탱크 기능을 지닌 ‘고신뢰 MCU’의 두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고기능 MCU는 차량의 운행경로 등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되고 고신뢰 MCU는 브레이크나 엔진 등을 제어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미래의 차에는 1개의 고성능 MCU와 1개의 고신뢰 MCU가 들어가도록 전자제어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삼성이 고기능 MCU인 엑시노스 오토를 이미 출시했으니 우리나라는 고신뢰 MCU를 개발하는 숙제만 남아 있다. 그것도 이전의 50 나노미터 제작기술로 돌아가지 않고 최신의 5 나노미터 제작기술로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극자외선(EUV)을 통해 얇은 회로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두꺼운 회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2000년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반도체 재질을 변화시키거나 게이트 3차원 형상을 최적화하여 강인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공학에서 ‘강인 설계’는 최첨단 기술이며 결코 구식 기술로 불릴 수가 없다. 고기능 반도체만 금이고 고신뢰 반도체는 흙일 수 없다. 강인 설계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국방, 로봇, 인공위성, 원자력 등에서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5개 설계사 중 하나를 인수하여 고신뢰도 통합 MCU를 생산하려고 하지만 이 시도는 성사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이미 TSMC와 설계와 제작의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독립할 수밖에 없는데 고용량 메모리를 설계했던 저력을 고신뢰 반도체에 다시 한번 발휘하여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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